철광석 산지라는 가스 멀티

in history •  6 years ago 

철광석 산지라는 가스 멀티
 
 
이건 예전에 피지알에서 역사 연재를 하던 분에게 배운 관점인데, 그는 게임 <문명>을 통해 전근대 역사, 특히 전쟁사에서 ‘쌀’과 ‘철’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왜 초기 백제는 마한을 정벌하기도 전에 고구려를 쳤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선배 역사학자들은 밀리터리적 관점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이란 것도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 게임에는 전쟁의 모사가 많다. 그러니 게임세대의 역사적 이해는 선배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리라.
 
 
<문명>은 안해보고 <스타크래프트>에만 심취했던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다. 고전시대의 ‘쌀’은 ‘미네랄’이다. ‘철’은 가스다. 이 관점으로 지도를 보면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니게 된다. ‘미네랄 멀티’가 있다. ‘가스 멀티’가 있다. 그리고 여러 모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이 좋은 땅이 있다. 이를테면 한강 유역은 전형적으로 길목이 좋은 땅이다. 한강 유역이 쌀농사가 잘 되긴 하겠으나, 단지 풍성한 미네랄 멀티이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그걸 두고 그토록 싸워댔던 것은 아니다.
 
 
다시 ‘쌀’과 ‘철’로 돌아오면, 쌀농사가 잘되는 구역(미네랄 멀티)을 확보하면 인구 부양력이 높아진다. 말하자면 로우테크 보병 유닛 생산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철광석 산지(가스 멀티)를 확보하면 하이테크 유닛을 쫙쫙 뽑아낼 수 있다. 그러니 그토록 중요하다.
 
 
다시 돌아와, “왜 초기 백제는 마한을 정벌하기도 전에 고구려를 쳤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 가스 멀티 때문이다. 백제는 미네랄은 충분했다. 하지만 눈앞에 가스 멀티가 있었다. 마한이 점유하고 있던 호남은 정말 비옥한 미네랄 멀티지만 가스 멀티는 아니다. 현대의 지도를 뒤져보면 북한의 철광석 산지는 함경북도 무산과 황해남도 은율/안악에 있다. 고전시대에 백두산 오른편 무산은 호랑이 땅이지 사람 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가스 멀티는 황해남도다.
 
 
황해남도. 지도를 보면 은율과 안악은 개성과 남포(평양 아래) 사이에 있다. 한가유역까지 점유하던 전기 백제 입장에선 바로 치고 올라가서 먹고 싶은 땅이다. 그러니까 위로 올려쳤다. 그 와중에 고국원왕이 전사했다.
 
 
남한의 가스 멀티는 경상남도 창원 부근에 있다. 가야가 철갑기마병으로 유명했던 게 그 때문이었다. 다시 전기 백제의 입장으로 돌아가, 창원 가스 멀티를 먹으려면 일단 마한을 밟고, 마한을 지나 가야와 싸워야 한다. 그거보다는 고구려를 치는 게 낫다. 고구려는 만만치 않은 나라지만 북쪽 방어선과 남쪽 방어선이 모두 있어서 남쪽 방어선은 상대적으로 헐거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딱 떨어지게 설명이 된다.
 
 
물론 태평양 수출길이 열렸다는 지점이 더 크겠지만, 그 고전시대 가스 멀티 지역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요 공단이 즐비하게 서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고전시대에 한민족이 점유하고 경영한 바 있는 가장 거대한 가스멀티는 요동이다. 북방유목민족사 말고 동북방유목민족사를 보면 거란이든 여진이든 요동을 점유하면 갑자기 세력이 팽창하여 끝내 중원을 침탈하곤 했다. 요동은 그렇게 중요한 땅이었다.
 
 
그리고 그 요동을 점유하고도 중원을 침탈하지 않은 유일한 족속이 한민족이었다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요동을 점령하고도 중원으로 향하지 않고 유목민족과 협력하거나 관리하며 자기 구역을 지킨 이들이 고조선과 고구려였다.
 
 
고조선의 경험을 고구려가 계승했는지는 알기 힘들다. 주몽이 남쪽으로 내려와 건국한 이유는 당시 최전선이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 일단은 그들을 몰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고구려 역시 요동을 점유하면서 변방깡패에서 세계구급깡패로 성장했다. 더구나 천혜의 방어선인 요하가 있다. 광개토대왕이 거기서 멈춘 것은 한민족의 존속에 기여한 일이었다.
 
 
고구려 이후 사람들은 그 가스 멀티의 경험을 알았을 것이다. 오늘날 환빠 아저씨들은 만주벌판을 바라보며 민족적 기상에 젖는다지만,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땅을 바라봤을 고전시대 사람들의 관점에선 저 비옥한 가스 멀티 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발해의 강역은 고구려보다 더 커 보인다. 하지만 동쪽으로 늘어진 영토는 쓸데없다. 중원왕조의 관점에서 발해는 고구려가 가졌던 그 가스 멀티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밟을 필요가 없는 변방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려는 왜 기를 쓰고 북상하려고 했던가. 당연히 요동을 먹으면 쇳복이 터지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쇳복이다. 그들은 알고 행동했을 것이다. 서희의 외교는 말로만 이뤄진게 아니라, 현대의 관점에서 번역하면 “어이, 거란, 이렇게 선을 긋고, 이 아래 여진족은 우리가 정리할게. 그 위에 여진족은 니들이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 해” 쯤이 될 것이다. 거란 입장에선 “와~~ 존나 날로 먹으려고 드는데 듣고 나니 우리도 이득만 보지 손해가 하나도 없네? 너님 좀 천재인 듯. 그렇게 하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올라가며 절치부심 상실한 가스 멀티를 노렸다. 고려말 우왕과 최영이 요동에 침을 꿀꺽 삼키고, 그리 해선 안 된다며 그들을 제끼고 등장한 정도전조차 요동!!! 요동!!! 거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주가 아니라 요동이다. 거기만 먹으면 우리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어쩌면 독립국가와 별도의 정체성을 가진 민족으로 살아남는 데엔 이쪽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사례에서 보듯 중원왕조는 요동이라는 가스 멀티까지 먹은 위험한 동방왕조는 반드시 깨부셔야 한단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조청조가 성립한 이후엔 조선과 중원 사이의 점이지대였던 만주조차... 점이지대에서 이탈했다. 조선은 고달파졌다.
 
 
물론 다 고전시대 일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고전시대 땅따먹기와는 상관없는 산업화를 통해 국력을 비축했고 베트남 등과 협력하면 중국과의 사이에 새로운 점이지대를 구축하는 것도 꿈이 아니다.
 
 
그리고 북쪽길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기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될 거란 것은 어쩌면 불운일 수도 있지만, 흥미가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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