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늦은 저녁 잠이 안 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지인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글과 사진을 보게 돼 그 계정을 팔로우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를 다시 팔로우해 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내가 그간 올렸던 인스타그램 사진과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작년 즈음 올린 글을 보았는데, 우울했던 당시 상황과는 달리 글에 생기가 가득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행복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또 하나, 좋아요를 누르자마자 글을 올린 지인에게 바로 전화가 오는 일도 있었다. 요지는 대체 뭐 하고 사냐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음 주 안으로 보기로 약속을 잡았지만 요란스러운 통화를 끝낸 후엔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왜 만난다고 했을까 하는 익숙한 자책이었다.
그런 한편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 전화까지 걸며 나를 반겨주는 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그가 지난 나의 동네까지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은 후에 근처 공원을 함께 산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맞네 싶었다.
오늘은 내게 선포한 나의 휴일이었다. 밀린 일을 처리하며 집에서 쉬려 했는데, 전날의 두 사건으로 전에 살던 동네와 그 카페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당시 거의 모든 글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동네 카페에서 쓰곤 했는데, 글이 밝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커피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서기 전에는 오후에 레슨을 해야 하는 것, 그래서 집을 치우고 단장을 해야 하는 것,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은 것, 그래서 어제 동생과의 나들이가 무척 힘들었던 것을 이유로 내세우며 버스로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길을 나서기를 주저했다.
고민하며 모니터에 띄워둔 지도만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며 가볍게 짐을 챙겨 전에 살던 동네로, 내게 가장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으로 길을 나섰다.
카페로 가는 버스에서는 책을 읽었다. 인간이 단일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허상인지를 설명하는 글이었다. 근거가 그럴듯해 자유의지가 인생의 전부라 느끼는 내게 가벼운 충격이 왔다. 그 충격마저도 얼마나 반갑던지. 오랜만에 독서로 느낄 수 있는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버스가 익숙한 동네로 들어서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정류장에서 내려 카페로 걸어오는 짧은 시간 동안 혹여나 코로나로 이 가게가 망했으면 어떡하나, 사장님이 안 계시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걱정도 잠시 활짝 열려있는 문을 보며 엄청난 행복을 느꼈다.
그토록 이곳과 이곳의 커피를 좋아하면서도 사장님과 나는 아직 낯을 가리는 사이인데, 그래서 엄청난 반가움을 숨기며 덤덤하게 주문을 했다. 사장님은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걸 아시면서도 괜히 따뜻한 거요? 라고 물으셨다. 커피를 시키고 가장 좋아하던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이 내려주신 커피에는 늘 그렇듯 엄청난 크레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행복이 밀려왔다. 지금 사는 곳으로 쫓기듯 이사하고서야 이 동네가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집 바로 옆에 있는 행복. 이곳에 살 때는 그걸 몰랐다. 어쩌면 지독하게 우울하던 나와 그런 스스로를 집요하게 파고들던 2년간의 세월을 버티게 해준 것은 이 커피와 공간은 아니었을지...
이 커피만으로도 이곳에 머물 이유가 충분했는데, 그때 나는 너무나 허약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이 동네도 그랬다.
또 한 시기가 지나가고, 하나의 장이 열리고 덮인다. 그 둘은 분절되어있는 듯하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
기분 좋은 글이네요ㅎ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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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행복이네요.
정 붙이면 다 고향 같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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