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3 단상] 어떻게 뚫었을까?

in hive-101145 •  4 years ago 

연어입니다.


중1 때 일이다. 모 과학관에 1학년 단체 관람을 간 적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단체 인원 수를 세고 있는데 과학관 관계자 한 명이 부랴부랴 나오더니 선생님들과 무슨 얘기인가를 나눴다. 곧바로 소지품 검사가 시작되었고 800명의 가방을 하나씩 까 뒤집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 시간 가까이 붙잡힌 채 쪼그려 앉아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듣게 되었다. 전시관에 있던 CD 한 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광 CD, 광디스크'로 불리던 신세계를 열 제품으로 두터운 통유리 안에 딸랑 한 장 전시되어 있던걸 우리 학생 중 누군가가 슬쩍 했다는 의심을 받은 것이었다.

CD 한 장 그까이꺼 뭐냐 싶겠지만 5.25 플로피디스크와 카세트테이프로 보조저장장치를 쓰던 시절이었기에 반짝 거리는 디스크 한 장이 제법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도 했던 것이다.

한참 소지품을 뒤적이던 상황이 갑자기 종료되었다. 누군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쑥덕거렸던 것은 왜 그런걸 훔쳤느냐가 아니라 대체 '어떻게' 그걸 빼낼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그 정도 실력(?)이면 모르긴 몰라도 경주 박물관에서 금관이라도 빼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학생을 다그치고 몰아세웠으면 절도죄롤 무기니 유기니 정학도 안될건 없었겠지만 그냥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관계자 분이 도난품을 찾은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을거고, 대체 어떻게 전시품을 빼낼 수 있었는지 비결을 듣는 차원에서 마무리 했을 것이다.


군대시절, 그것도 인터넷 망이 깔리기 전 일이다. 하루는 못보던 장교 세 명이 왔다갔다 한다. 뭔 일인가 물어보니 우리 부대쪽 상병 한 명이 기지 전산망을 해킹했다는 것이다.

이런... 영창이라도 가는건가? 했는데... 우리 부대로 찾아온 세 명은 전산 장교이고 어떻게 전산 보안망을 뚫었는지 한 수 배우러 왔다는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그 친구가 복무하는 사무실을 들여다보니 이것저것 설명을 하며 시연을 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장교 세명이 '이야~~' 하고 감탄을 하며 쑥덕거린다. 장교들이 되려 희희낙락거린다. 비유하자면 임요한의 리플레이를 지켜보며 감탄하는 모습이 딱 그러했을거다.

상병인 그 친구에게 중대장이 뭔가를 시켰고, 자료가 필요해서 전산망에 접근했는데 자료를 막아놨다 한다. 그래서 그냥 어찌어찌하여 자료를 가져왔고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지 전산부대가 발칵 뒤집힌 것이었다.


'사회적 아량이란게 있다. 장발장 이야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광디스크 분실을 발견한 사람이... 부대 전산망이 뚫린걸 알아차린 사람이... 작정하고 용의자를 범죄자로 몰고갔다면 내 중학교 동기는 소년원에 갔었을지도 모르고 부대 후임 녀석은 영창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것은 군대 영창은 국방부 시계를 멈추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분들은 청소년의 호기심과 부대원의 기발한 재주를 이해하고 넉넉한 아량으로 웃어넘겼다. 그리고 '어떻게 뚫었는지, 왜 뚫렸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팁을 얻어갔다.

덕분에 누군지 모를 중학교 동창의 쓰리슬쩍 사고에 히히더거리며 집으로 왔고, 군대 후임의 경례를 받을 때마다 '어이~ 장교들 물먹인 해커 상병!'이라고 놀리며 재밌는 군생활 이야기를 얻을 수 있었다.

요즘은 이런 '사회적 아량'이 적어진 듯 하다. 좀 각박하다고나 할까.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우리 스티미에도 이런 뭔가가 절실함...

그럼에도...

늘 반복적인 이기주의만 팽배... 에혀...

긍정의 힘이 절실한뎅...

!shop

침몰하는데 지들 보따리만 챙기는...

@jack8831 transfered 20 KRWP to @krwp.burn. voting percent : 100.00%, voting power : 61.45%, steem power : 1937553.30, STU KRW : 1200.
@jack8831 staking status : 5419.242 KRWP
@jack8831 limit for KRWP voting service : 10.838 KRWP (rate : 0.002)
What you sent : 20 KRWP (Voting Percent over 100 %)
Refund balance : 9.617 KRWP [47667315 - b89489f9c74317bcc82bfc6e5f85bc7a14f24e51]

이상한

wow fine Art

  ·  4 years ago 

Hi~ jack8831!
@bluengel has gifted you 1 SHOP!

Currently you have: 13 SHOP

View or Exchange SHOP Please go to steem-engine.com.

Are you bored? Play Rock,Paper,Scissors game with me!

심하게 각박합니다.

naha님이 jack8831님의 이 포스팅에 따봉(10 SCT)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