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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죽은 엄마가 돌아왔다.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되어.
환생을 다룬 콘텐츠는 넘치고 넘치지만, 이 드라마는 뭔가 특별하다.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 말이다. 환생, 그건 뭔가 믿기지 않는 거라, 드라마여도 등장인물들이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꽤나 애를 쓰는데 말이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웠으니까.
환생은, 믿거나 말거나이고 그래서 있거나 없거나 일 텐데. 어느 세계에서는 그걸 현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티벳밀교의 창시자인 파드마 삼바바는 그 스스로가 부처의 환생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죽기 전 까지 삶의 비의가 담긴 책 100권을 히말라야 동굴 여기저기에 숨겨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테르톤(보물을 찾아내는 자)'이라 불리는 그의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 환생하여 그중 65권을 찾아냈는데, 그중의 하나가 그 유명한 <티벳 사자의 서>라고. 어째서 스승은 비밀을 동굴에 숨겼으며 제자들은 환생해서까지 그 책을 찾아내려고 했을까? 분명한 것은 기록한 스승은 물론 제자들 역시 생은 연속되고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삶.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삶을 받아들이면 중요한 것은 인연뿐이다. 억만금을 벌어도 다음 생으로 가져갈 수 없지만 인연은 계속되니까.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벗어날 수 없는 그것 바로 가족이다. 혈연.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야
이제 그냥 사라져 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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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엄마의 새엄마는 10살짜리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 잘 듣는 딸은 엄마의 말을 따라 슬퍼하며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환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10살짜리 딸이 사라져 버린 몸속으로 죽은 엄마가 빙의해 들어간 것이다. 남겨진 가족들을, 생의 의지를 잃고 산송장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슬픈 인연은 엄마의 새엄마와 그녀의 열 살짜리 딸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엄마의 친엄마는 딸의 장례식에조차 오지 않았다. 의존적이고 예민한 엄마의 친엄마는 매번 신경질을 내고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나 엄마는 무슨 팔자인지 가족은 물론 자신의 친엄마에게도, 배다른 동생에게도, 그리고 새로운 생의 새엄마에게도, 엄마가 되어주어야 했다.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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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가족이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 제대로 된 가족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라고 물으면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보았나 싶기도 할 거다.
비루하고 곤고한 마법사의 생이었지만 반백 년을 구르다 문득 깨달은 사실은, 마법사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이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재벌이었냐고? 생부, 생모를 찾게 되었냐고 물으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나의 부모가, 자식이, 내 선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그 관계가, 그간의 어느 관계보다 가장 안정적이고 합이 잘 맞는 멋진 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말을 수 십 년만에 돌아온 집에서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물론 성장한 자녀가 자신의 세계를 찾아 세상을 향해 떠나가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도전의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또한 돌아올 집, 가족이기도 하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던가, 왜 그렇게 공동체를 추구했던가. 그건 성공의 기억 때문이었다고, 안정적이고 더없이 성숙한 원가족 속에 태어났던 거라고. 그래서 그걸 확장하고 복제하고 싶었던 거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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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의 합이라는 거, 궁합이라는 게 그렇게나 랜덤일 줄이야. 세상의 수많은 가족사를 듣고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향은 유전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운 후로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나의 출생에 대해 말이다. 이 시점에 나로서는 연속되는 다음 생의 팀으로 기꺼이 이번의 가족을 다시 선택할 생각이다. 그들만큼 나를 잘 이해하고 잘 맞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없었거나, 백 퍼센트 합이 잘 맞는 가족이었냐고 물으면, 꽤나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나도 있었노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흙수저로 태어났다 자조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도 갈등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갈등의 경중과 종류가 아니라 갈등을 대하는 자세와 합을 맞추려는 의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마법사는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외부의 감정과 문제를 집으로 가져가지 말자. 그건 가족을 보호하고 싶고, 우선순위를 흩트리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를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지나가는 개를 발로 찰지언정. 그게 유전이었는지 가풍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가족들 간에는 그러한 암묵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리고 그걸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합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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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르고, 그러니 합을 맞추려면 많은 배려와 관찰,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가장 못하는 관계가 가족이기도 하다. '당연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러나 가족만큼 그게 당연하지 않은 관계가 없다.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숙명적일 뿐이다. 그래서 신경질이 나고 함부로 굴게 되지만, 인연의 법칙을 따르자면 안타깝게도 벗어날 수 없는 이 관계는 지난 생에도,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생의 꿈 따위, 수많은 인생의 목적 따위를 모두 제껴놓고, 일단 해놓고 보아야 할 가장 큰 인생의 숙제는 '인연' 그것인 것을. 또 태어나고 또 만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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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어느 시점에 동생과의 왕래를 끊고 연락도 없이 지내오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얼마 전까지는 가족 누구도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십수 년 만에 만나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너의 방식이니까.' 우리는 합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생의 관계 방식임을, 선택이 이루어진 이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여전히 '사랑'을 유지하고 있다. 기괴해 보여도. 합을 맞춘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서로의 톱니를 존중하며, 벗어날 수 없는 궤도 속에서 속도와 방식을 매우 면밀하고 조심스럽게. 입사 면접을 보듯이 만남의 날짜와 장소, 방식을 정하고, 면접관에게 자기소개를 하듯 대화에 신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생의 인연을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다. 그게 생의 과업 전부니까. 피곤해서 어떻게 사냐고, 세상 편한 게 가족이고 내 편이어야 할 이들이 가족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대는 인연을 개 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그들도 너도 개가 아니니까. 파드마 삼바바의 가르침대로 내 마음이 비친 다른 나이니까.
물론 마법사의 그러한 관계 방식에는 '이번 생은 여기까지'도 있단다. 그래야 다음 생에 다시 기회를 이어갈 테니까. 아니면 진을 다 빼버린 관계는 악연으로나 만나게 되겠지. 원망과 원한만 가득 남아. 다시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봐버렸으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인연의 법칙을 따라 다시 널 봐야 한다. 그러니 상처를 쌓기보다 그리운 존재로 남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수미산처럼 쌓여버린 다음 생으로 이월된 관계들이 숙제로 남아버렸지만, 나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다음 생을 또 기다린다. 환생할 제자들을 위해 기록을 남긴 파드마 삼바바의 마음으로, 마법사는 소중한 이생의 인연들과 다음 생으로 이월된 관계들에게 기록을 남긴다. 30세기의 [스팀시티] 도서관에서 발견한 <스팀시티 영웅전>의 역사를 읽다가, 바로 내가 [스팀시티]의 총수를 찾던 그 마법사 멀린이라는 미래기억을 떠올리고는 21세기로 환생하여, 가장 안정적인 팀 속에서 자란 덕에 자신감 충만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고는, 그 끝에 [스팀시티]라고, 그게 30세기에 있다고, 그러기 위해 21세기에 시작되어야 한다고! 총수를, 시민들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그 도시의 레이스는 소리 소문도 없이 7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미래기억을 떠올린 이들이 환생하여 동굴에서 스승의 책을 찾듯이 찾아들고 찾아들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인연의 법칙을 따라 앞으로도 천년을 더 만나게 될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가? 나는 너에게 무엇인가?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그게 무엇이든 마법사는 우리들을 위해 오므라이스를 준비할 거야. 사랑하니까. 그게 내가 배우고 경험한 패밀리니까.
*8세기경 티베트 왕의 초청으로 티베트에 간 파드마 삼바바는 인도에서 가지고 온 경전들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인간을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모두 100 여권이 넘는 책을 남긴 그는 아직 비밀의 가르침들을 세상에 알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책을 여제자 예세 초걀을 시켜 동굴에 숨겨 두었다. 이 책들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그의 다섯 번째 환생자로 알려진 릭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발견되었고, 티베트 인접 국가를 떠돌다가 1927년 옥스퍼드대학 종교학 교수인 에반스 웬츠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_ 현대불교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97.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