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예쁘다, 그 이름처럼

in hive-102798 •  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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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 첫 후배를 맞는다는 생각에 한창 설레던 늦겨울이었다. 나와 동기들은 신입생 명단을 받아 들고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조 편성을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때 우리는 새내기들 이름을 살펴보며 '멋있을 것 같은 남자 후배'를 몇 명 골랐다. 만화 속 남자 주인공의 이름처럼 어쩐지 멋짐이 묻어나는 이름을 찾고, 그 이름의 주인공이 이름처럼 멋진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귀엽기도 하지...

여행할 때도 지명이 근사하다고 느껴지면 막연한 환상을 품곤 했다. 터키의 트라브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스페인의 안달루시아가 그랬고, 불가리아의 소피아도 그중 하나였다. 소피아, 어쩜 도시의 이름이 소피아일 수가 있을까. 소피아는 나의 해외 스타벅스용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아하고 아름다울 나의 도시 소피아를 경험할 기회가 왔다. 이스탄불에서부터 긴 버스 여행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여행자가 추천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한참을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수위의 포르노가 자그마한 화면 속을 가득 채웠다. 음, 굉장하네. 그것이 지혜의 도시 소피아가 내게 준 첫인상이었다.

소피아 시내는 엄청난 몸집의 거인이 도시 곳곳에 커다란 발자국을 꽝꽝 찍어놓은 것 같았다. 도시가 여백으로 채워져 있달까. 날씨는 어찌나 우중충한지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언제 비를 뿌릴지 몰라 시내 곳곳을 걷는 내내 불안했고, 사람들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 보였다. 한 교회 앞에는 오랜 세월 거리에서 생활한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앉아 교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가 피켓에 써놓은 문구를 보니 아주아주 비관적인 무정부주의자인 모양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를 하던 이스탄불 사람들이 금세 그리워졌다. 길에서 불가리아를 여행 중이라는 인도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엄청나게 싸고 맛있는 피자집을 안다며 데려가 놓고는 돈이 부족하다며 동전을 빌려달라고 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지만, 싫다고 할 수도 없어 그의 손바닥에 동전을 쥐여주었다. 거대한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두꺼운 도우에서는 밀가루맛이 났다. 몇 입 먹고 배가 불러 결국에는 남겨버렸다. 비토샤 거리를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 마셨던 맥주에서는 쇠맛이 났다. 아, 젠장. 기분 탓인가. 쇠맛이 나는 맥주라면 더 볼 것이 없다. 나는 이곳과 도무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틀 뒤 도망치듯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갔다. 소피아는 나에게 '우울한 날씨와 우울한 사람들, 그리고 쇠맛 맥주'로 기억되었고, 그 이후로 소피아를 다시 찾을 일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6년 만에 소피아를 다시 찾았다. 발칸 여행을 소피아에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대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하루 이틀 쉬었다가 바로 버스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한밤중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소피아 공항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두침침한 형광등 조명 아래 입국장은 낡은 병원 수술방 같은 느낌을 풍겼고, 급하게 뛰어 들어간 화장실은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소피아, 너는 여전히 이름만 예쁜 것 같구나.

마음을 비우고 택시를 잡아탔다. 예약해 둔 숙소가 없어 일단 중앙역까지 가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택시비가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역 앞 건널목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또 다른 택시기사 아저씨가 다가와 호텔을 찾느냐고 물었고, 근처에 괜찮은 곳을 소개해 준다기에 따라가 봤는데 아저씨가 소개해준 호텔은 훌륭했다.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에 나가보니 주택가의 한산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구름 뒤로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고, 집마다 널려있는 빨래가 정겨웠다. 대충 씻고 나와 호텔 근처를 두리번거리며 아침 먹을 곳을 찾았다. 쇼윈도에 투박하게 생긴 큼지막한 빵이 잔뜩 진열된 가게에 들어가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빵을 고르고 커피도 시켰다. 커피 두 잔, 빵 하나를 시켰는데 2.3레바, 그러니까 1.15유로. 6년 전 소피아 물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충격을 받았다. 무표정한 주인아주머니는 표정과 몸짓으로 먹고 가겠냐고 물었다. 나도 표정과 몸짓으로 먹고 가겠다고 답했다. 이때쯤 불가리아 말로 '예스'가 '다'라는 것을 알았다. 빵을 사 들고 바삐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쩐지 소피아가 좋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플라스틱 컵에 코를 박고 뜨거운 커피를 한참이나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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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톤 색깔이 묻어나는 소피아의 거리는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트에 들어가 과일을 종류별로 열심히 골라 담았다. 양손 가득 무거운 과일 봉지를 하나씩 비워내며 내딛는 걸음걸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곁에 두고 가꾸던 꽃과 풀을 잠시 한국에 남겨두고 떠나온 내게 소피아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다. 소피아는 어여쁜 꽃순이들의 도시였던 것이다. 길거리에 앉아 직접 정원에서 가꾼 것이 분명한 소담스러운 꽃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과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안에 꽃을 송이송이 꽂아둔 신발 가게 주인이 사랑스러워서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노래를 불렀다. 노천카페의 테이블에 놓인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꽃들을 사진 속에 담으며 소피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비토샤 거리를 걷다 한 노천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시켰다. 평일인데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맥주도 시켰다. 맛있다. 분명히. 인도 영감탱이가 6년 전 데려갔던 그 피자집에 다시 갔다. 여전히 싸고 거대하다. 그리고 맛있다. 분명히. 욕심을 부려 한 조각을 더 사서 포장해왔다.

그러자 이렇게 소피아를 떠날 수는 없었다. 며칠 더 머무르기로 하고 옷부터 샀다. 인도에서 한 달 넘게 지내며 꼬질꼬질해진 옷들을 어여쁜 소피아에서는 입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녕, 소피아. 이름처럼 이렇게나 예쁜 널 몰라봐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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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순이들의 도시....! 이리도 덤덤한 글 속에서 너무 따뜻해지고 말았네요. :) 지혜님 글 읽고 있으니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휴!!!

하루에도 몇 번씩 엉덩이가 들썩이고 심장이 벌렁거려요. 그런 저와 같을 채린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쓰겠어요!

Is this Alexander Nevsky Cathedral?

Yes, i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