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에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주곤 했던 카쉬미리 친구 이쉬팍을 12년 만에 스리나가르에서 만났다. 놀래켜 주려고 연락도 안 하고 친구네 가게로 찾아갔는데 라다크에서 장사하는 이쉬팍 동생이 그새를 못 참고 우리의 방문 계획을 누설하는 바람에 김이 새버렸다. 구글맵 상의 위치에 가게가 보이지 않아 살짝 헤매는 중에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서 깜짝 방문의 맛을 조금이나마 낼 수 있었다. 이야! 너 똑같네! 하나도 안 늙었다! 반가운 해후. 친구네 집에 가니 그의 어머니와 아름다운 아내, 세 살 아들이 반겨주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얼굴로 우릴 안으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5년 전에 지었다는 친구네 집은 궁궐처럼 크고 화려했다. 차 마시며 친구 결혼식 앨범 구경했다. 너 왕자네! 와이프 진짜 이쁘네! 공주다 공주! 한참 떠들다가 아내가 고종사촌이라는 말에 충격. 모르는 여자랑 결혼하는 것보다 잘 아는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이슬람 사회에서는 아직도 사촌끼리 결혼 많이들 한다고 한다.
친구 스쿠터 타고 달레이크로 나갔다. 연꽃밭이 펼쳐진 달레이크는 비구름이 내려앉아 더욱 운치 있었다. 호객꾼도, 관광객도, 하우스보트도 보이지 않아 좋았다. 라다크에서 건조한 모래바람만 맞다가 스리나가르에서 빗방울 머금은 초록의 공기를 들이마시니 뼛속까지 촉촉해지는 기분.
이번 귀국길도 어지간히 고생스러웠는데 중간에 친구네 집에서 쉬고 와서 그런가 푹 자고 움직이니 가뿐하다. 아직은 임시 귀국이니 몸도 마음도 짐을 풀지 않은 상태로, 서울 여행하는 마음으로 지내려고 한다. 한국 덥다 덥다 해서 겁먹고 있었는데 라다크보다 시원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