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여섯시다.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모두들 잠자리를 정리하고 있어 차마 더 꾸물거릴 수는 없었다. 사실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밤새 창과 매운 소스의 합작으로 왕복 오분이 걸리는 화장실을 두번이나 다녀오기도 했고 몸이 쑤셔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번 라다크 살이에서는 유독 몸이 많이 아프다. 기침으로 인한 갈비뼈부터 시작해서 어깨, 허리, 다리까지, 이번 라다크에서 난 "죽스뽀 주모락"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죽스뽀는 몸, 주모락은 아프다는 라다크말로 "아이고고 내 몸아" 정도의 의미겠다. 모두들 이 이상 현상에 대해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춘자는 오라클에게 다녀온 뒤 귀신이 씌어 무병이 아니냐고 했고, 초모는 콘크리트집과 높은 고도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단정지어 말했다. 오라클에게 다녀오기 전부터 몸은 아팠고, 콘크리트집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둘다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는 호수를 보러 나섰다. 돔카르에는 7개의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하이킹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이킹이라는 말에 근육통과 복통으로 몸 안팍이 성치 않은 나는 잔뜩 쫄았다. 다행히 차로 움직일 수 있는 만큼 한참 들어 갈 수 있었다. 사방은 하얀 슈가 파우더를 산머리에 뿌린 황량한 흙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무런 차도, 그 어떤 사람도 없이 우리 뿐이었다. 지프는 길이 있을리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길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들이었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작은 흙산을 두개 쯤 넘었다. 싱게와 초모를 식물학자라도 되는 냥 손톱보다 작은 꽃과 색색의 이끼를 탐구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남들보다 뒤쳐져 호수를 찾는 행렬의 아주 끝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약간의 하이킹 끝에 마주한 호수는 말라있었다. 일곱개의 호수 중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호수라고 했다. 호수 바닥에는 호수였다는 흔적만을 간신히 보여주는 카키색의 물이 조금 남아있었다. 싱게가 호수 바닥에 입맞춤하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호수는 온전하지 않았지만 호수를 보기위해 오른 곳은 정작 호수는 상관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갑자기 밀려온 안개에 둘러쌓인 설산은 금방이라도 닿을듯 가까웠고 신비로웠다.
우리는 또 마치 짠듯이 전날 처럼 따로따로 앉아 명상이라고 하면 명상일거고 멍때리기라고 하면 멍때리기일거고, 기도하고 하면 기도일 그런 시간을 각각 보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는데 모두 거대한 자연 안에 하나의 점일 뿐이었다.
다시 차로 돌아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불닭볶음면을 끓였다. 대자연 안에서 불을 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준비물은 캐로신과 야크 말린똥, 돌, 라이터. 바람을 막아 불이 꺼지는 걸 방지하면서 냄비를 고정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크고 판판한 돌이 필요하다. 삼각형으로 큰 돌을 설치한 후 그 가운데에 연료와 캐로신을 넣고 불을 붙인다. 그러고는 냄비를 올리고 물을 끓이면 된다. 물을 끓이는 시간은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말린 야크똥 외에도 각종 쓰레기를 연료로 넣어 불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참을 기다리고 물이 끓고 불닭볶음면을 넣었다. 대자연에 쪼그려 앉아 불닭볶음면을 만드는 우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난민의 모습이었다. 돔카르 가는 길의 작은 마을에서 산 불닭볶음면은 보통맛이 부족해 핵매운 x2가 섞인 바람에 1.5단계 수준이었다. 가장 맵부심이 강한 나조차도 매워서 습습거릴 정도였으니 맵찔이들에게는 고통에 가까운 맛이었을 거다. 불닭볶음면을 전부 헤치우고 얼마 남지 않은 음료로 입을 헹구는데도 매운 기가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온 몸에 스며든 매운 기를 빼기 위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이 먼저였는지 매운 맛을 참을 수 없던 몸부림이 먼저였는지 사실 모르겠다. 매운 맛과 희박한 산소로 몇몇은 트랜스 상태에 도달했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만큼 맵지 않아서 트랜스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 아무도 없는 광할한 우주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우리 여섯 뿐, 저 멀리서 잘 보이지도 않을 작은 몸으로 열심히 춤을 추는 우리가, 가련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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