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여행과 늙음의 상관관계

in hive-102798 •  11 months ago 

나이가 들면 여행이 힘들어진다는 말을 지난 여행에서 실감했다. 단순히 노화에 따른 체력 문제가 아니다. 모든 신체적 기능이 여행을 ‘잘’하는데 요구되는 능력의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겁도 많아진다. 무대포로 부딪히는 것에 자신이 없다. 고려하는 것도 많아진다. 살면서 봐온 것도 많아 쉽게 감동하지 않고 무덤덤하고, 맛있는 술, 맛있는 음식의 경험치도 높아 웬만해선 감격하기 힘들고 까다롭다. 소화 능력과 느끼함을 견디는 한도는 현저히 떨어져 두 끼 정도 양식을 먹으면 매콤한 국물이 땡긴다. 한식을 오래 먹지 못하면 극도로 컨디션이 떨어진다. 긴 인생의 경험으로 인한 각종 트라우마로 겁도 많아지고 불안함도 커진다. 내겐 여권, 퍽치기, 공항 삼종 트라우마가 있다. 여권을 두번 잃어버려 임시여권을 두번이나 발급받은 게 첫 번째 사건이고 마르세유에서 내 크로스백을 낚아채 날 몇미터나 바닥에 질질 끌고간 소매치기가 두번째 사건이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큰 타격을 준 사건은 세번째로 미리 온라인으로 인도 e비자를 신청했지만 나오지 않았고 그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공항에 갔다 비행기를 타지 못한 일이다. 이 사건 이후 공항에만 가면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거세게 뛴다. 거기에 세계의 정 반대편인 부에노스에서 비행기를 놓친 일이 더해져 나는 한동안 공항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고작 2개월의 여행이었지만 그 시작부터 끝까지 지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나이 든 사람의 여행이었다.

"대체 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떠나는거야? 크리스마스에는 파티를 해야지!"

마지막 호스텔에서 만난 이스라엘 애들은 굳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행기를 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무 지쳤어. 늙어서 그런가봐."

나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마. 너의 여정은 정말 대단한 걸, 넌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맞다. 그랬다. 늙어서 쉽게 지치고 여행을 하기 힘든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여정을 여행하는 나 스스로 자긍심을 가져야 했다. 스쳐가듯 던진 그의 말은 현판처럼 내 안에 새겨져 매일 스쳐가듯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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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젠젠님이시당 올만이에요. 🙌
젠젠님의 트라우마는 전장의 상처이자 훈장같아요
그럼에도 여행, 다음 이야기 기다릴게요😛

미뤄둔 여행 얘기 이제 슬슬 쓰려고요. 오랜만에 스팀잇 왔으니 스텔라님이 부지런히 써서 올린 연재글도 읽어야겠어요. 여행 중에 맛보기만 조금 읽고 몰아보려고 멈췄거든요 :)

제 얘긴 뒤로 미루고 여행 보따리 꺼내주세요 핳핳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