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재규입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당시 저는 미리 정해진 일정 때문에 외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근을 나가기 전 사무실 TV로 세월호가 좌초됐고, 다행히 승객들은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고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숙대입구역 근처에서 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갔는데, 식당 뉴스에서 전원 구조 뉴스가 사실 오보였다는 말을 듣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세월호 참사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둘러싼 의견 대립은 식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세월호 참사를 갖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냐, 지겹다"는 의견을 보고 많은 참담함을 느낍니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관련 시민단체를 종북,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아직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진영의 인사들 입에서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한 시민이 방명록을 쓰고 있다.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추모에 기간 제한이 있나?
세월호에는 총 47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이 중 299명이 사망, 5명이 실종됐습니다. 사망자의 상당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었고, 이 외에 일반인 승객, 승무원 희생자들도 많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족을 잃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자 부모, 조카, 친척들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자기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세월호 사망자들을 잊고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유가족들의 지인이나 일가 친척이 "이제는 슬픔을 딛고 삶을 살아가자"라고 충분히 조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월호 참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분들이 타인의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을 넘어서서, 추모 중단을 강요하는지, 인터넷 댓글로 조리돌림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망자에 대한 추모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유가족 중 이제는 과거를 가슴에 묻고 새 삶을 살아가는 분도 있을 수 있고,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해 괴로운 마음을 갖고 사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유가족 각자의 판단을 존중하면 될 일을 아무 관련도 없는 타인이, 특히나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일정 부분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이 강요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난 행동입니다.
‘순수한’ 추모는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광화문 광장에는 한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가 세운 천막 농성장이 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세월호 천막을 보면 참사 당일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천막 농성장이 처음 들어설 때부터 보수단체, 언론 등은 ‘순수한’ 추모가 ‘정치적’ 추모로 변질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들은 어떤 추모가 ‘순수한 추모’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통상적인 경우처럼 삼일장만 하고 일상적으로 복귀하는 것이 ‘순수한 추모’인지, 정부와 사회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이 ‘순수한 추모’인지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순수한 추모’를 외치는 이들이 죄다 보수단체, 정치권인 점도 이상합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세월호 사망자들을 추모한다면 유가족이 추모 기간을 3일로 잡건, 3년으로 잡건 신경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순수성’을 부르짖던 이들은 가장 불순한 의도를 스스럼없이 드러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상대로 종북세력, 반정부 세력으로 매도하는가 하면, ‘세금 도둑’이란 표현도 나왔습니다.
남들에겐 ‘순수함’을 강요했던 분들이 왜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천막농성은 한사코 하지 말라는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들
천막농성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는 국가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에서는 집회도 할 수 없고, 정부를 욕하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에 광화문 광장에 천막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천막과 비슷한 시기에 여러 보수단체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서울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했고, 현재는 청계광장 일대에서 코로나 백신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이 천막농성을 이 시간에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무한정으로 보장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광장을 관리하는 주체인 서울시와 천막농성 단체와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그 기간을 정하면 그만입니다.
세월호 천막이 ‘불법 천막’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습니다. 2019년 6월 YTN의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천막은 대다수 합법적으로 설치된 것이고 다만 3개 천막이 무허가 설치라서 서울시에서 변상금을 부과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천막을 설치했다면, 그 철거 방식 역시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 철거만을 외쳐온 자들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옹호자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설명하는 뉴스타파 영상)
세월호 음모론과 자유민주주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역대 정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사의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특별조사위가 있었고, 문재인 정부 때는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있었습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초기까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참사를 다뤘습니다.
참사 초기에는 이런저런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많았습니다. 세월호가 외부 요인으로 침몰했다든지, 누군가 고의로 침몰시켰다든지, 세월호의 항적이나 CCTV가 조작됐다든지 하는 주장들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고 세 차례의 진상조사를 거치면서 소위 말하는 ‘음모론’은 대부분 그 힘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세월호는 해당 선박이 가진 내부적인 한계 때문에 침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체로 뉴스타파의 2023년 4월 13일 기사의 내용을 신뢰합니다.
비록, 음모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세월호 음모론도 처음에는 하나의 가설이었습니다. 다만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조사가 진행되면서 하나하나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이 되어 공론의 장에서 힘을 잃었을 뿐입니다. 여전히 세월호가 외부 충격에 의해 침몰당했다고 믿는 분들이 있지만, 믿음의 영역까지 과학이 어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음모론을 토대로 영화까지 만들어서 진짜 ‘장사’를 하신 분들도 있긴 합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돈을 들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비판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법적으로 막자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여러 역사적 사건이 있었고, 이에 뒤따르는 다양한 음모론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음모론을 믿지는 않으나, 음모론자들의 표현의 자유까지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