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단재 신채호>
이전 글에는
예종과 윤관의 노력으로 북방 영토를 개척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본다.
九城(9성)은 『高麗史고려사』에 據(거)하면
舊史(구사)에는 英·雄·福·吉·咸·宜 六州(영,웅,복,길,함,선 6주)와
公嶮·通泰·平戎·三鎭(공험, 통태, 평융 3진)이다가
撤還(철환)할 때 宜州(선주)와 公嶮·平戎 二鎭(공험, 평융 2진)이 없어지고
崇寧·眞化·宣化 三鎭(숭녕, 진화, 선화 3진)이 突現(돌현)함이 可疑(가의)며,
또 宜州城(선주성)은 定州[정주, 今 定平 (금 정평)] 以南에 있은즉
女眞(여진)을 擊逐(격축)하기 以前에도 築(축)한 者라 하여
九城의 數目을 疑(9성의 수목을 의)하였으며,
咸州(함주)는 今 咸興(금, 함흥)이요,
英州·雄州(영주, 웅주)는 吉州(길주)에 合倂한 者(합병한 자)요,
福州(복주)는 今 端川(금, 단천)이요,
宜州(선주)는 今 德源(금 덕원)이라 하고,
公嶮鎭·通泰鎭·平戎鎭 等(공험진,통태진,평융진 등)의 地界를 明記(명기)치 못하여
九城 距離(9성거리)의 遠近을 模糊(원근을 모호)히 하여
지금껏 史家의 爭訟(사가의 쟁송)하는 바가 되었으나,
이러한 區區한 問題(구구한 문제)는 아직 且置(차치)하고
九城의 建設(9성의 건설)과
撤還한 事實(철환한 사실)의 顚末이나 略論(전말이나 상론)코자 한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독립기념관>
撤還(철환): 철수하다
突現(돌현): 갑자기 나타남
可疑(가의): 의심할만 하다.
擊逐(격축): 마구 쳐서 쫓아냄
築(축): (성등을) 쌓다
數目(수목): 각각의 숫자
明記(명기): 분명하게 기록함
且置(차치): 나중으로 미루어 둠
顚末(전말); 처음부터 끝까지의 진행과정
(옮기면)
九城(9성)은 『高麗史고려사』에 따르면
구고려사에는 英·雄·福·吉·咸·宜 六州(영,웅,복,길,함,선 6주)와
公嶮·通泰·平戎·三鎭(공험,통진,평융 3진)이다가
철수할 때 ‘선주’와 <공험,평융> 2개진이 없어지고
<숭녕, 진화, 선화 3개진> 이 갑자기 출현한것이 의심스럽고,
또 ‘선주성’은 ‘정주’( 현재의 定平정평) 남쪽에 있으니
여진을 공격해서 쫓아내기 전에도 이미 쌓았던 성이라 하여
九城의 숫자를 의심하였으며,
咸州(함주)는 현재의 함흥이요,
英州·雄州(영주, 웅주)는 吉州(길주)에 합쳐진 지명이요,
福州(복주)는 현재의 ‘단천’이요,
宜州(선주)는 현재의 ‘덕원’이라 하고,
<공험진,통태진,평융진 등의 경계를 분명히 기록하지 못하여
9성간의 거리가 어느정도인지가 불분명하게 되어
지금껏 역사가들이 논쟁하는 주제가 되었으나,
이러한 작은 문제는 아직 나중으로 미루어두고
九城(9성)의 건설과
철수했던 사실의 전후과정이나 상론코자 한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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