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을 사용한다.
본문해석에 참고한 여러 자료는 나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先民들은
비록 平壤의 假字(가자)로 「펴라」를 記하나,
「펴라」의 音義(음의)를 잘 앎으로,
「펴라」란 水名인 浿水를 떠나서는
平壤(평양)이라 稱(칭)한 일이 없다.
<출처: 평양패수고>
假字(가자): 빌린글자, 이두를 말한다.
(옮기면)
그러나 우리 선대사람들은
비록 平壤이라는 假字(가자)로 「펴라」를 썼으나,
「펴라」의 소리와 뜻을 잘 알았기 때문에,
「펴라」란 강물이름인 浿水(패수)를 떠나서는
平壤(평양)이라 稱(칭)한 일이 없다.
이를테면
故國原王(고국원왕)이 黃城(황성)에 都(도)하며,
<歷來史家(역래사가)가
「故國原王 十三年 平壤東黃城고국원왕13년평양동황성」의 黃城을
上句(상구)에 連讀(연독)하여 東黃城(동황성)이라 하였지만
이는 大誤(대오)>
平原王(평원왕)이 長安城(장안성)에 都(도)한 바
黃成(황성)과 長安城(장안성)이 다 平壤에 至近(지근)하지만,
다만 浿水(패수)를 挾(협)하지 않은 故(고)로
平壤(평양)이라 稱(칭)하지 않고
黃城 或 長安城(황성 혹 장안성)이라 稱(칭)하여
그 區別(구별)이 이같이 嚴絶(엄절)하지만,
<출처: 평양패수고>
挾(협): 끼고 있다, 거느리다
嚴絶(엄절): 위엄있고 엄격하다
평원왕:고구려 제25대 태왕
長安城(장안성): 당나라의 수도와는 다른 곳이다.
黃城(황성): <고평양>의 위치를 먼저 확정해야 한다.
(옮기면)
이를테면
‘고국원왕’이 黃城(황성)에 도읍을 정하고,
<그 동안의 역사가들이
「 고국원왕13년 平壤東黃城평양동황성」의 ‘黃城(황성)’을
앞구절에 붙여서 읽어 東黃城(동황성)이라 하였지만
이는 큰 잘못이다.>
<평원왕>이 ‘장안성’에 도읍을 정했을때
‘황성’과 '장안성’이 다 평양에 가까이 있지만,
다만 浿水(패수)를 끼고있지 않았기 때문에
‘평양’이라 稱(칭)하지 않고
‘황성 혹은 장안성’이라 稱(칭)하여
그 구별이 이같이 엄격하지만,
中國人은 歷代 以來(역대 이래)에
浿水(패수)의 有無를 不關(불관)하고
樂浪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移置(이치)하였으니,
遼東(요동)의 樂浪도
이미 前述과 같이 固定한 處所(처소)가 없거니와,
<출처: 평양패수고>
移置(이치): 옮겨서 설치함
(옮기면)
중국인은 역대 이래로
浿水(패수)의 유무에 관계없이
낙랑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옮겨서 설치했으니,
遼東(요동)에 있던 낙랑도
이미 앞서 설명한것처럼 고정된 장소가 없거니와,
慕容廆(모용외)가
長統(장통)<前項전항에 보임>의 降(강)을 받아
樂浪太守(낙랑태수)를 삼고
柳城(유성)에 樂浪(낙랑)을 僑設(교설)하였으니,
이는 遼西(요서)의 樂浪이요
拓拔魏(탁발위)의 以後에는
上谷(상곡)에 樂浪(낙랑)을 移置(이치)하였으니,
이는 山西(산서)의 樂浪이니,
이 따위는 다
「펴라」의 물과 關係(관계) 없는 樂浪(낙랑)이라 할 것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慕容廆(모용외): 5호16국시대,<전연>의 초대 황제인 '모용황'의 아버지
고구려를 침략하였다가 패하였다. 재위 기간(285~333년)
僑設(교설): 임시로 설립하다
拓拔魏(탁발 위): 탁발씨가 세운 ‘북위’를 말한다.
386년에 선비족인 탁발규가 화베이(하북+산서성일대)에 세웠다고 나온다.
조조의 ‘위나라’와 구별하기위해 <북위>라고 부른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조(北朝) 최초의 나라.
上谷(상곡): 에 대해 검색해보면
<진나라>내몽골 자치구 연경현(燕京縣)
<수나라> 허베이성(河北省) 중서부 역현(易縣)
라고 나온다. 주류사학계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
역사책에 관련 기록이 나오면
거짓말 또는 오류라고 주장한다.
(단재가 생각하는 '낙랑'의 위치변동)
(옮기면)
慕容廆(모용외)가
'장통'<전항에 보임>의 항복을 받아
'낙랑태수'를 삼고
柳城(유성)에 '낙랑'을 임시로 설치하였으니,
이는 遼西(요서)의 낙랑이요.
拓拔魏(탁발위)의 이후에는
上谷(상곡)에 낙랑을 옮겨 설치했으니,
이는 山西(산서)의 낙랑이니,
이 따위는 다
「펴라」라는 <물과 관계없는 낙랑>이라 할 것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면,
역사기록에 나오는 내용이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요동지역에 있었다가
하북성-> 산시성으로 이전되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요동' 자체가 명나라 이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서 설치되었다는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시기의 낙랑의 위치는 왼쪽으로 이동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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