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선비족이면서 한족의것을 추앙한 나머지
자신들의 성씨를 중국식으로 바꾸고 수도를 옮긴후에
50년만에 멸망한 북위라는 나라가 있었다.
북위 5대 황제는 탁발준 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부인은 중국의 여걸중 하나였던
'문명황후 '풍馮'씨였다.
북위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가,
손자대에 이르러서는 '태황태후'가 되었다.
이사람이 불법을 좋아해서,
말년에 탑을 세웠다.
그 탑의 이름이
'사연불도思燕佛圖' 라는것이다.
여기서 佛圖(불도)라는 것은 '탑'을 말한다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중 하나가
요녕성에 있는 조양시라는 곳인데.
이유는 그곳이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땅이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오래된 유적이 있으면 어떻게든
역사를 늘려서 원래부터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양시에 朝陽北塔(조양북탑)이라는 탑이 있나보다.
그 탑을 가지고 역사를 조작한다.
이런 모습을하고 있는 탑인데. 모양은 그럴듯 하다.
이 탑을 이용해서 지나족들이 어떻게
가짜역사를 창조해내는지 본다.
조양 북탑의 두 번째 모습은 북위 시기의 "사연불도"로 추정된다.
북위 효문제 태화년간(485-490)에 문성문명황후 풍씨가
삼연 용성 화룡궁 옛터에 7층 목탑인 "사연불도"를 건설하였다.
《위서·황후열전》에 따르면,
문성황후 풍씨는 북연왕 풍홍의 아들 낭의 딸로,
조정을 다스릴 때 효문제 태화년간(480)에 선조를 기리고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용성에 사연불도를 세우고,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북위 왕조가 동북 지역에 건설한 유일한 왕실 불사였으며, 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출처: 요녕성 조양일보 기사>
그럴듯해 보이는 기사인데, 거짓말이 군데군데 들어가고
없는 내용을 끼워 넣었다.
- "사연불도"로 추정된다.(= 사연불도면 좋겠다라는 소리다.)
- '삼연三燕'의 영역을 현재의 요령성에 갖다놓으려고 애쓴다.
- 풍씨는 북연왕 풍홍의 손녀다.
그 손녀가 자신의 출신인 '연燕'을 생각하며
탑을 세웠다라는 내용인데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 권13 황후열전 원문을 보면,
馮氏,長樂信都人也。(중략)后生於長安..
"풍씨馮氏는 장락長樂 신도信都 사람이다.
(중략)황후는 장안長安에서 태어났으며.."
장안은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일대다
장안(시안시)에서 조양시까지는 1300km거리다.
정말 애쓴다. 모르는 사람이 조양시에 가서 불탑의 설명만 들으면
"아! 그런가보구나!"하고 믿게된다.
'용성龍城'이라는 아주 중요한 지명 하나가 어디에 있었는가에 따라
동북아의 고대사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음 내용을 본다.
"용성에 사연불도를 세우고,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라고 기사에 썼다.
원문을 읽어본다.
太后立文宣王廟於長安,又立思燕佛圖於龍城,皆刊石立碑。
태후는 장안長安에 문선왕묘를 세우고,
'용성龍城'에 사연불도思燕佛圖를 세웠으며,
모두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신문기사에서는 교묘하게 원문의 앞부분을 제외시켰다.
장안에 왕묘를 세웠다는 내용과
용성에 조상을 기리는 불탑을 세운것은 따로노는 내용이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것은,
풍태후가 출생한 장소가 바로
현재의 시안시인 '장안長安'이었다는 점이다.
장안에서 태어났으면, 아버지도 거기에 있었을것이고
할아버지인 풍발도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풍태후가 조상을 생각하며 탑을 세우는데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서 1300km 떨어진 곳에
세웠을까?
그리고,
불탑을 세우려면, 영토분쟁이 없는
자신들의 확실한 영역권에 있는 장소가 아닐까?
용성龍城은 당시 북위의 영역권이었던
산서성 중부지역 일대일수밖에 없다.
가장 교활한 거짓말은
절반의 진실과 거짓말을 섞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부주의하면 속이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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