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하나의 산을 힘겹게 넘었건만,
또 넘어야 될 산이 계속 있다면 누구라도 지치기 않을까? 첫 미팅부터 숱한 조율과정을 거쳐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기까지 걸린 기간만도 무려 6개월. 넘어야 될 산이 많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련만, 꾸역꾸역 넘다보니 되돌아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넘고 또 넘어 기어코 성공한 사례이다.
2016년 9월 경남에 위치한 B사의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 기술설명회 행사장에서 기술상담한 결과, 상담일지에 “방문상담 희망”에 체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나는 B사에서 관심을 갖고있는 특허기술의 발명자인 P박사와 기술보증기금 H팀장 등 4명을 우리 기관에서 만났다.
B사의 대표이사는 회사 소개 후 회사가 현재 안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P박사의 특허기술과 노하우로 해결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P박사는 자신의 특허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특정 환경 하에서 몇 가지만 테스트해보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1시간가량 기술적인 얘기가 오고간 후 기술이전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정액기술료 1억원, 경상기술료 매출액 대비 2%, 그리고 기술실시기간은 계약일로부터 10년을 제시하자, 대표이사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추후 결정키로 하였다. 이후 기술보증기금의 지원방안까지 제시하여 첫 미팅은 순조롭게 끝났다. 기술이전이 비교적 쉽게 성사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첫번째 산을 만나다.
얼마 후, 기술보증기금의 H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B사에 대한 자체 실사 및 평가 결과, B사는 자산 대비 부채가 많고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은행대출을 받은 적도 있는데 아직 상환해야할 부채가 많이 남아 있어서 이번 기술보증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만난 커다란 산
이었다.
지역 센터 차원에서는 더 이상 보증을 해줄 수가 없음에 따라 H팀장에게 대안을 찾아달라고 전화로 수차례 요청했다. 그 결과, B사에 대한 보증 건을 지역 센터나 본부 차원에서는 불가능해서 서울본점 심사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H팀장의 말에, 나는 특허기술의 우수성과 회사의 성장가능성 그리고 대표이사의 강한 추진의지 등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꼭 통과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11월 말경 H팀장로부터 B사의 기술보증 건이 심사위원회에서 간신히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휴~~ 참내, 근데 내 회사도 아닌데 내가 왜 기뻐하지?”
두번째 산을 만나다.
2017년 1월. 나는 P박사와 기술보증기금의 L부지점장, H팀장과 함께 경남의 B사를 방문했다. 그런데 B사로 가는 도중 H팀장으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을 해주겠다는데도 B사의 주거래은행에서는 대출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을 해주면 무조건 대출해주는 걸로 알고 있었기에 꽤 황당했다. 예기치 않게 두 번째 산
이 생긴 것이다. 나는 H팀장의 일처리 능력을 보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기술보증기금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서라도 주거래은행을 설득하든지 아니면 대출이 가능한 다른 은행을 빨리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B사가 아무리 기술이전을 받고 싶어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면 기술이전을 받지 않을 것이 뻔해보였기 때문이다.
세번째 산을 만나다.
대출은행이 없다는 말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두 번째 미팅을 가졌다. 대표이사와 P박사 간에 특허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깊이 있는 얘기가 오갔다. 그러다가 문득 대표이사가 전수받을 노하우 기술들을 빼곡하게 정리한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대표이사가 말했다. “P박사님, 사실 저는 박사님의 특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제품을 개량해서 상용화하려고 하는데, 이때 P박사님의 노하우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소 황당했다. P박사는 서류의 내용을 죽 보더니, “이건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는 제가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상당 부분은 예전에 함께 일했던 연구자들이 개입되어야 합니다.”라며 각 항목별로 조목조목 얘기했다. “엥? 이건 또 뭔 소리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연구자들이 많이 개입되어야만 기술이전이 된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닐 터, 두 번째 산
도 넘지 못했는데 또다시 세 번째 산
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 관련 연구자들을 함께 만나기로 하고 공장시설을 잠시 둘러본 후 두 번째 미팅을 마쳤다.
2017년 1월 중순 오후 3시, 어느 커피숍에서 세 번째 미팅을 가졌다. 우리 기관에서는 관련 프로젝트 책임자인 K박사와 연구자인 L박사 등 2명이 추가로 참석했다. 두 번째 미팅 때 B사에서 정리한 노하우 설명자료를 토대로 수차례 피드백을 거쳐 재작성한 자료를 펼쳐놓고 얘기가 시작됐다. 거의 2시간에 걸쳐 기술적인 얘기를 주고받은 끝에 기술이전할 노하우 영역이 대략 정해졌다. 그에 따라 노하우를 누가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제공할 것인지도 결정했다. 즉 제공할 자료유형의 경우 노하우 기술에 따라 엑셀 데이터나 보고서 형태 또는 컴퓨터프로그램으로 제공하거나 직접 맨투맨으로 전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술이전이 성사될 경우 기술료 배분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특허와 노하우 간의 비중도 정했다. 25% 대 75%. 결국 특허보다는 노하우에 큰 비중을 둔 것이다. 아무튼 연구자들의 소속부서가 서로 달라 다소 난항을 겪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다행히도 비교적 무난하게 두 번째 미팅이 끝났다.
2017년 2월 초. 기술보증기금의 L부지점장으로부터 B사에 대한 대출금융기관이 확정되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B사의 주거래은행을 비롯한 3군데 은행으로부터 대출거절을 받자, 결국 기술보증기금 지점장이 S은행 지점장을 직접 만나 설득한 끝에 7.8억원을 대출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거의 내가 1~2주 단위로 전화해서 대출여부 상황을 체크한 것 때문에 부담이 커서 기술보증기금 지점장까지 직접 나섰다는 얘기에 어찌나 고마웠던지...
네번째 산을 만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에 명시된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뿐.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전혀 예기치 않은 문제가 등장했다. 노하우 전수를 누가 주도해야 할지 주체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필자는 응당 해당 특허기술의 발명자인 P박사가 주도적으로 할 줄 알았는데, 프로젝트 책임자인 K박사가 특허보다는 노하우의 비중이 크고 관련 연구자도 P박사 외에는 모두 자신의 프로젝트 소속 연구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주도해야 노하우가 제대로 전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P박사는 특허출원 시에는 K박사의 프로젝트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사실상 협업하여 노하우를 전수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 또다시 넘어야 될 네 번째 산
이 나타난 것이다.
무려 2주간에 걸친 조율 끝에 노하우 전수 책임을 K박사가 맡기로 했다. 이 기술이전은 비록 P박사의 특허기술로부터 출발을 했지만, 특허보다 노하우의 비중이 더 크고 K박사 소속 프로젝트의 연구자 상당수가 노하우 전수에 참여하기 때문이었다. P박사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개인을 떠나 기관 차원에서 볼 때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P박사도 결국에는 비교적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다섯번째 산을 만나다.
“이젠 기술이전의 장애물이 다 사라졌겠지”라고 생각하며 기술실시계약서 초안을 작성하는 도중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 B사에서 요구하는 노하우 수준과 우리 기관에서 제공하는 노하우 간에 차이가 생기면 어떻게 되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또 넘어야할 다섯번째 산
을 내 스스로 만든 셈이다.
B사의 대표이사에게 이러한 상황을 얘기한 후 우리 기관으로부터 전수받을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이튿날, B사로부터 정리된 자료를 받자마자 K박사 연구실로 찾아갔다. 5명의 관련 연구자와 함께 각 항목별로 조목조목 검토하기 시작했다. 노하우 전수가 가능한지 아닌지, 가능한 것은 누가 언제까지 전수해줄 것인지 등을 일일이 체크했다. 대략 50% 정도만 노하우 전수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유인 즉, B사에서는 가능한 한 모든 소재를 대상으로 다양한 조건에 대해 노하우 전수를 요구한 반면, 우리 기관에서는 특정 소재만을 대상으로 특정 조건에서만 실험했기 때문이다. 답답했다. “이 기술이전 건은 왜 이렇게 힘들지? 어떤 식으로든 빨리 매듭을 짓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B사 대표이사와 K박사에게 각각 전화해서 기술실시계약 체결까지의 단계별 일정을 제시한 후 서둘러 최종 미팅을 갖기로 했다. 계약체결일을 3월 특정 일자로 미리 정해놓고 그때까지 계약체결이 안되면 이 기술이전 건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너무 지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언제쯤 그 끝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린 불가피한 조치였다.
여섯번째 산을 만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산을 정복하다.
2017년 3월 초, K박사 연구동 회의실에서 최종 미팅을 가졌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 미팅 결과에 따라 기술이전 여부가 최종 결정되며, 더 이상의 미팅은 없습니다. 참고로, 기술이전 시 노하우 제공은 우리 기관에 현재 있는 그대로의 데이터와 보고서, 소프트웨어 및 노하우를 토대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우리 기관에서는 현재 상황에서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제공하되, 추가적인 연구개발이나 테스트가 필요한 것은 제공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B사에서도 꽤 까다로운 노하우 조건을 너무 많이 요구한 것 같은데, 꼭 전수받아야 할 것은 받되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해서 적정한 수준에서 잘 타협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양자 간에 쟁점사항으로 부각된 내용을 중심으로 대화가 오갔다. 몇 가지 사항은 비교적 무난하게 매듭이 지어진 반면, 특정 ‘소재’와 ‘실험조건’에 대해서는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긴 침묵으로까지 이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 건을 이쯤에서 멈춰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자칫 기술이전을 잘 해놓고도 나중에 기업측에서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K박사에게 물었다. “B사에서 요구하는 소재와 실험조건에 대해 우리 기관에서 테스트할 여건은 되나요?” K박사가 즉각 답변했다. “안됩니다. 그걸 테스트하려면 별도의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그 비용만도 수억 원이 들고, 상당한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여건상 쉽지 않습니다.” 대표이사에게 말했다. “이 소재와 실험조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만큼 이번 기술이전 건에서는 제외시키는 게 좋겠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면 이 기술이전 건은 여기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숙고 끝에 대표이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후 나머지 항목들은 별 어려움 없이 합의가 이루어졌다. “휴~ 이제야 넘어야 할 모든 산을 넘었구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몇 차례 피드백을 거쳐 작성한 기술실시계약서를 각자에게 나눠준 후 핵심 사항 위주로 계약서 내용을 검토했다. 기술실시기간은 계약일로부터 10년. 기술료의 경우 연초 B사 방문 시 합의한 대로 정액기술료 8,000만원에, 경상기술료는 매출액 대비 1%로 하되 추정된 손익분기점이 3년임을 고려하여 3년 후부터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계약서 검토를 마치고나서 나는 3월 특정 일자 계약을 전제로 각자에게 단계별 일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이 기술이전은 기술이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번 기술이전을 통해 B사가 세계적인 개량제품을 개발해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줄 것을 강조한 후 마지막 미팅을 마쳤다.
2017년 3월 특정일 오후 4시, 예정대로 필자가 임의로 정한 그 날짜에 어김없이 기술실시계약이 체결됐다.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나마 계약이 체결됐으니 다행이지, 그러지도 못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다.
가입인사: 똑.똑.똑. 처음 인사드려요~
기술-기업 만남의 설렘과 두려움
기술이전협상 성공사례 #1: 2개 기술을 묶으면 기술료도 2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