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의 멋진 보석 하나, 갖고 싶은 사람은 둘이라면,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나눌 수도 없고 둘에게 동시에 줄 수도 없는데... 응당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 아닐까? 기술사업화 세계에도 이런 경우가 간혹 있으니, 이는 행복한 고민일 터 여기에 그 한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 기관에서는 2017년 봄 서울 코엑스에서 사업화 유망기술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행사에 앞서 수요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대략 2~3주 전부터 여기저기 웹사이트와 언론매체를 통해 행사 출품기술을 홍보하는 일은 당연한 일.
첫번째 가망고객
2월 초, 경남에 있는 L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 매출액이 5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인데 코엑스 행사에서 소개될 K박사의 특허기술에 대해 미리 기술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정을 조율한 끝에 며칠 후 우리 기관에서는 나와 K박사, L사측에서는 대표이사와 Y팀장이 참석한 가운데 첫 미팅을 가졌다.
K박사의 기술은 기존 제품에 비해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성능이 우수한 점이 특징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술상담 후 곧바로 기술료 협상에 돌입했다. K박사의 기술은 지난해에 한국특허청으로부터 특허등록을 받았고 또 국제특허(PCT)를 출원 중인 상당히 우수한 특허기술인데다 시장성도 꽤 넓다고 판단하여, 나는 계약일로부터 10년간 통상실시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정액기술료 1.5억원과 경상기술료 3%를 제시했다. 기업 측에서는 특허기술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턱없이 낮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30여 분간의 협상 끝에 정액기술료 1억 원에 경상기술료 1.5%로 합의했다.
당연하면서도 까다로운 조건
이후 코엑스 행사 직전까지 거의 10여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로 기술실시계약서 수정을 거듭했다. 대부분 기업 측에서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사항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계약일로부터 10년간은 제3자에게 통상실시권(발명자 및 다수의 실시권자가 실시 가능)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시켜 달라는 것이다. 통상실시권의 범위를 너무 벗어난, 준 전용실시권(실시권자만 실시 가능)을 달라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제3자에게 통상실시권을 부여하고자 할 경우 선실시권자와 사전에 협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수준에서 합의하려 했다. 그러나 기업 측이 당초 주장을 계속 고집하는 탓에 기술실시계약 체결을 조만간 개최할 코엑스 기술설명회 이후로 미루기로 작정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또 다른 수요기업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다른 고객 등장
2017년 2월 하순, 서울 코엑스에서 기술설명회를 개최했다. K박사의 기술 또한 이날 행사에서 소개되는 여러 기술 중의 하나로, 무려 7개 수요기업과 기술상담을 했다. 이 중 4개 기업이 K박사의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경기도에 소재한 H사가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연 매출액이 50억원쯤 되는 H사는 지금까지 특정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요청을 받아 제품을 제작해서 납품만 해오다보니까 서러운 일도 많고 무척 힘들어서 뭔가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K박사의 기술이 눈에 띄어서 이번 기회에 K박사의 기술을 이용해서 자기 회사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브랜드’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L사와의 기술이전 진행상황을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 기술은 경남에 있는 모기업과 얼마 전 선급금 1억원과 경상료 1.5%에 기술협상을 마쳤고,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 측에서 향후 10년 동안 제3자에게 실시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계약체결을 오늘 행사 이후로 늦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H사 부대표이사가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 아닌가요? 여기저기 경쟁사들한테 실시권을 주면 자기 회사한테는 그만큼 손해일 테니까요.” 이에 내가 말했다. “그 말엔 저 역시 동의합니다. 제가 기업에 있다면 당연히 그리 요구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우리 기관은 특성상 특정 한 기업에만 실시권을 준다면 분명 나중에 이해관계가 있느니 특혜 시비니 등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어서 그건 좀 곤란한 일이지요.”
무리한 조건 제시
그러다가 무심코 나는 H사에 다소 무리한 제안조건을 툭 던져보았다. “저는 H사에서 얘기한 브랜드화 제품 개발이라는 말에 솔깃해집니다. 발명자 역시 자기 기술이 브랜드화가 되어 팔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이미 협상 중에 있는 경남 소재 기업과 계약을 안하는 대신, 귀사하고만 계약할 경우 선급금 2억원에 경상료 1.5%를 제안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어차피 경남 소재 기업은 또 다른 기업에게도 통상실시권을 부여한다고 하면 분명 계약하지 않을 것이기에, H사에게 무심코 기술료를 2배로 올려서 제안한 것이다. 그러자 H사에서 말했다. “기술료를 2배로 올려서 계약하면 우리 회사에는 어떤 혜택이 있습니까? 다른 기업에게는 실시권을 주지 않고 우리 회사에만 실시권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H사에 단지 통상실시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제3자에게도 통상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남 소재 기업에게도 얘기한 것처럼, 제3자에게 실시권을 부여하고자 할 경우 선실시권자와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삽입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내가 답했다. H사는 일단 알았다면서 대표이사에게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이에 나는 L사와의 계약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했기에, “내일까지 계약조건 수용여부를 회신해 주십시오. 만일 연락이 없으면 경남 소재 기업과 먼저 계약체결을 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번째 가망고객
이튿날, 반갑게도 H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술이전을 꼭 받고 싶다면서 조만간 우리 기관을 방문해서 발명 시제품을 직접 본 후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K박사 실험실에서 기업 측과 만났다. H사에서는 대표이사와 기술전문가 등 3명이 왔다. 1시간여에 걸쳐 시제품의 원리와 성능에 대한 K박사의 설명과 H사의 질의응답이 원만하게 끝나자, 곧바로 기술이전 조건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계약조건은 이미 코엑스 행사에서 제시해서인지 의외로 별 문제가 없었고, L사와는 달리 제3자에게 실시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았다. 이에 아직 L사와의 계약도 진행 중인 터라 필자는 2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안은 L사와 H사 둘 다 동시에 계약할 경우 선급금 1.5억원에 경상료 1.5%를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고, 둘째 안은 L사가 계약을 포기하고 H사와만 계약할 경우 선급금 2억원에 경상료 1.5%로 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안의 경우 두 기업에서의 희망가격이 각각 1억원과 2억원이므로 적정가격을 1.5억원으로 간주하여, H사는 5,000만원을 덜 내는 반면 L사는 5,000만원을 더 내도록 한 것이다. 이에 H사에서는 “어차피 경쟁사가 있으면 사업이 더 잘 될 수도 있지요.”하면서 흔쾌히 동의했다. 수일 내로 L사와의 계약여부를 결론짓고 최종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이날 미팅을 마쳤다.
고객 선택의 시간
L사의 담당자인 Y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H사와의 진행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후 1주일 내로 회사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했다. Y팀장은 굉장히 놀라워하면서 선급금 1.5억원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지난번에 말씀드린 10년 대신 3년 동안만 제3자에게 실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서 우리 회사랑 계약하면 안될까요?”라며 한발 물러섰다. 아마도 대표이사로부터 어떻게든 이 계약을 성사시키라는 특명을 받았던 것 같다. 이에 나는 “지금 상황에선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저는 두 회사가 제가 제시한 조건대로 계약을 체결해서 함께 시장을 열어 가면 어떨까 싶네요.”라고 대답했다. Y팀장이 잠시 머뭇거리자, 나는 H사와는 3월 특정일자로 계약체결을 할 예정이니, L사에서는 그 며칠 전까지 계약체결 여부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마쳤다. 정한 날자의 퇴근 때까지 Y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자 내가 전화했다. 그 결과, L사에서는 경영진 회의결과 타사에서 제품을 출시해서 성공한 걸 보고나서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단 L사와의 계약체결은 무산된 것이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최종 선택
이튿날, H사에 연락해서 L사와의 진행상황을 그대로 설명한 후 3월 특정일자로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L사와의 계약이 일단 무산되고 H사만 남아 있는 터라 사람 마음이 어찌 변할지 몰라서 일정을 좀 빠르게 가져간 것이다.
기술실시계약서 검토는 단 하나의 문구수정도 없이 끝났다. 이미 L사와 수차례의 피드백을 거쳐서 수정·보완했던 계약서를 토대로 회사명과 기술료 정도만 수정해서 보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2017년 3월 특정일 오후 4시, 우리 기관과 기업 측의 관계자 10여명을 모시고 기술실시 계약체결 행사를 가졌다.
돌이켜보면, H사와 L사의 조율과정은 아슬아슬했던 것 같다. 내 손안에 2개의 달걀이 있지만, 자칫 세게 쥐면 둘 다 깨질 것 같고, 느슨하게 쥐어 땅에 떨어져도 둘 다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에 내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개 기업 모두 계약을 체결하면 좋겠지만, 자칫 1개 기업과의 계약이 무산되면 다른 기업도 덩달아 무산될 수도 있고, 기술료를 깎아달라거나 선실시권자로서의 뭔가 혜택을 달라는 등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 계약서에 기재된 정액기술료는 1.8억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계약체결 직전에 부가세를 포함하면 2억원이 넘는다고 푸념하면서 선급금을 좀 낮춰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에 30여 분간의 의견교환 끝에 어쩔 수 없이 기술료를 소폭 내려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던 것이다.
가입인사: 똑.똑.똑. 처음 인사드려요~
기술-기업 만남의 설렘과 두려움
기술이전협상 성공사례 #1: 2개 기술을 묶으면 기술료도 2배!
기술이전협상 성공사례 #2: 산 넘어 또 산이 있을 수도 있다
기술이전협상 실패사례 #1: 기술이전 협상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