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카메리노의 성 베난티우스(또는 베난시오)의 생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프레네스테의 아가피투스(Agapitus von Praeneste)가 쓴 “수난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책을 통해 그의 출생과 순교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수난기”에 의하면 성 베난티우스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 부근 카메리노에서 15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의 명령으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아드리아해(Adriatic Sea) 달마티아(Dalmatia)의 살로나(Salona, 오늘날의 스플리트 Split) 출신인 같은 이름의 한 순교자(4월 1일)와 동일인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살로나의 초대주교였다.
매우 젊은 주교였던 그는 신앙 때문에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박해자에게 끌려가서 불과 연기에 그을리는 형벌을 비롯하여 이가 모두 빠지고 턱이 부서지는 등 갖가지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끝내는 참수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자마자 그를 재판했던 두 명의 재판관이 급사하였고, 지진이 일어나 사람들은 모두 베난티우스를 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641년 다른 순교자들의 유해와 함께 교황 요한 4세(Joannes IV)에 의해 로마(Roma)로 옮겨져 라테라노(Laterano) 대성전 근처의 한 경당에 모셔졌다고 하며, 그에 대한 공경 예식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어 카메리노로 전해졌다고 한다.
카메리노에서 성 베난티우스는 그 지역의 주보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는데, 은판으로 장식된 성해함과 그곳에만 있는 그의 순교 모습을 담은 그림 등은 카메리노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일찍부터 이루어졌음을 시사해준다. 14세기경의 한 시(詩)에는 그의 유해가 약탈되었으나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의 중재로 카메리노로 반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전에 카메리노의 주교였던 교황 클레멘스 10세(1670-1676년 재위)는 성 베난티우스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축일을 격상시키고 또 성인의 축일 성무일도에 적합한 찬미가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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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5권 - '베난시오, 카메리노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3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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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n't understand the written lang here...but Thanks for sharing in the memory of great soul💖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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