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아파트에 갇혀 살며
인간 꼬락서니 돼보려고
밥그릇마다 꿀 발라 주는 대로 먹고
비싼 옷 입고 폼 꽤 잡았는데
슬슬 하품 나고 다 별로다
외제차, 핸드폰, 카드, 핸드백
명품 차고, 걸고, 입고, 바르며
끌려간 곳마다 재주 부려봤자 별로다
돈 쓰는 재미로 인간답게 살자고 아무리 꿀 발라도
곰은 이제 겨울잠을 자는 동굴이 더 그립다
돈 버는 재주가 별로이자 곰 주인은
죽여서 고기와 기름, 웅담으로 쓰려고
옷부터 벗겨 세탁기에 넣는다
곰은
세탁기 나사 풀고 이음새를 죄 뜯어서
발로 밟아 찌그리고 구겨서 한입에 넣고
부셔 먹는다
이제 발바닥 땅에 붙이고 떠나면 된다
가다가 먹고, 자고 일어나 먹고
자꾸자꾸 가다 보면 동굴에 갈 것이다
쿨쿨 잠자러 조용한 곳 찾아가는 것뿐이다
어느 날부터 자고 나면 뉴스에는
세탁기가 자꾸 없어진다고 한다
곰이 동굴로 가면서 먹고 있는 거다
하라는 대로 돈만 벌어오라고 한 곰들이
마지막 재주로 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여야 후보 앞다투어 내세워
곰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약을 내걸고
곰이 부셔 먹을 수 없는
세계 최고 세탁기를 생산하겠다고
들썩거린다
곰은 그저 잠자러 동굴로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