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한지 10일가까이 되었다. 트럼프는 등장이후보다 그 이전이 더 요란했던 것 같다. 극장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면 과거와 상당히 다른 변화의 가능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아직 내각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평가한다는 것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처지의 국가는 주변의 강대국 중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발생한 미국같은 나라의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평가를 해야 한다. 시간이 가고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평가의 내용은 계속 바뀔 것이다. 그러나 한국같은 국가는 지속적인 상황평가와 판단을 통해 무엇이 우리에게 최상의 선택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트럼프의 마음속을 파악해야 하는데, 문제는 트럼프의 생각도 계속바뀐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후 상황을 보면서 바이든 행정부와 가장 다르다고 보았던 것은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측면보다는 경제적 측면에 주안을 두고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정치적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군사적 정치적 방법보다는 직접적으로 경제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을 보인다. 이제까지 필자의 글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여기에서 정치적 방법이란 해당국가의 국내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정치공작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것이다.
국제정치는 크게 보아 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문으로서의 국제정치학은 경제적 측면은 배제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군사적인 측면의 영향을 배제한다. 국제정치학에서 행위의 동기로서 자본의 이익추구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군사와 경제중 어느 하나를 도외시하면 절대 성공하기 어렵다.
국제정치에서 가치와 이념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군사적 경제적 이익추구를 위장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져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체제 그것도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을 가급적으로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 필자가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국가체제라고 하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도 다양한 형태가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을 가급적 감추려고 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군사적 접근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접근방식에 비교적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의 접근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검토결과를 반영한 것이기도 할 것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미국이 다른 국가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방법으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겠다.
문제는 미국이 군사적인 접근에서 경제적인 방식으로 국제정치를 다루는 방법을 바꾼다고 해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국제정치적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과 가장 강력한 군사적 대결을 하고 있는 러시아는 현재의 군사적 접근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러시아는 전쟁으로 유럽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완전하게 바꾸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나토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지만, 유럽은 미국이 나토에서 물러나는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비로 하고 있는 듯하다. 유럽으로서는 미국이 물러나면 러시아와 국제정치적 관계를 재정립하면 된다. 최근 영국을 제외한 유럽은 마치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말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한 국방비 인상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별로 대비하지도 않고 있다. 트럼프가 유럽국가들에게 군사비를 GDP 5%인상을 주장하지만, 유럽 국가들 중에서 실질적인 국방비 증액을 고려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앞에서 미국에 대하는 태도와 뒤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하겠다. 독일 AuF처럼 노골적으로 러시아와 관계강화를 주장하는 정당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어느 한 국가 그리고 그 지도자의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트럼프가 관세인상을 앞세운 경제전쟁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적 수단을 들고 나오는 것도, 그동안의 전통적인 수단인 정치공작과 군사적 압박이 더 이상 제대로 먹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과 경쟁국 가리지 않고 관세를 이용하여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접근은 기존의 국제경제적 패러다임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거의 정점에 도달한 신자유주의체제에서 급작스런 보호무역주의체제로 돌아서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아마도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형성을 강요할 것이다. 그로 인한 새로운 국제정치질서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독일,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은 산업국가들의 생산능력을 자국으로 옮겨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압력을 강력하게 우리를 압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이 탄핵되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윤석열은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고, 미국에 한국기업이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독려하는 한편, 미국의 요구대로 미국 무기를 더 많이 사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증액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윤석열이 탄핵되고 감방에 갖힌 요즘, 이상하게도 나의 정신은 매우 평온하다. 그동안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무슨짓을 저지를지 몰라 전전긍긍했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그칠 수 없다. 이런 기간이 가급적 오래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