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름이란 정체성을 의미한다. 남한과 북한, 혹은 남조선과 북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통일의 가능성 그리고 의지를 지니고 있을때 의미가 있었다. 남한의 대중들은 통일의 가능성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으며, 북한도 더 이상 통일문제에 메달리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이미 남북한이 서로 남과 북 혹은 한국과 조선을 서로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국제법적으로 남과 북은 이미 서로 다른 국가다. 각각 유엔에 가입해 있다. 서로 별개의 주권국가임에도 한민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북간에는 민족통일이라는 과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문제는 민족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오히려 남북간 불화와 충돌 그리고 제2의 전쟁가능성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한의 정치권력은 공식적으로 선언은 하지 않았으나 이미 민족통일이라는 과제를 포기한지 오래되었고, 23년 12월 31일 북한은 공식적으로 남북관계를 민족문제가 아닌 국가관계로 선언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했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북한이 더 이상 남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국가과 국가의 관계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북관계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남북간 합의가 필요한 문제가 아니다. 남한이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라고 규정하면 북한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관계가 되는 것이고,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라고 선언하면 남한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선언함에 따라 북한을 조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에 바탕한 것이다.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과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내에서는 조선이 남북관계를 국가대 국가로 선언하고 나서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가 휩싸고 있다. 그동안 통일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조선의 입장과 정책변화에 방향을 상실했다. 조선이 정책을 변화했다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까지의 통일운동은 무의미해지고 만 것이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통일운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동안 북한을 귀찮은 혹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갑자기 남북관계를 민족문제인것 처럼 들고 나오고 있다. 그동안 통일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갑자기 통일에 적극적인 것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그들이 서 있던 정권과 정치세력의 근거가 적대적 남북관계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협력과 대화를 통한 정상적인 관계로서의 조선이 아니라 적대적 공생관계로서의 북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정치세력에게 이용되어 왔다. 조선이 남북을 민족문제가 아닌 국가관계로 규정한 것은 더 이상 한국의 정치세력에게 이용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김대중의 화해협력 정책이후 북한은 남한 국내정치에 이용만 되어왔을 뿐 진정한 관계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이 남북관계를 민족이 아니라 국가관계로 규정한 것은 그동안 남한과의 관계에 대한 총결산의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조선은 한국과 적대적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했다. 조선의 그 이후 행동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조선은 여전히 미사일 능력 제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는 것은 군사분계선상서 그동안 남북간 협력을 위한 통로로 이용되었던 도로를 폐쇄하고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군과 미군의 기계화 부대가 접근 가능한 개활지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조선이 하고 있는 행동은 군사적으로 보면 전적으로 방어적인 행위이다. 조선군의 행위는 전적으로 방어를 위한 축성행위인 것이다. 조선이 남한을 공격하려면 군사분계선에 지뢰를 매설할 것이 아니라 지뢰를 제거해야 하며, 방벽을 쌓은 것이 아니라 방벽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내 언론에서는 묘하게도 조선의 이런 방어적 행동을 오히려 공격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조선이 갑자기 이런 방어적 행동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수차례 한적이 있다. 그동안 러시아를 관찰해 보면 적어도 외무장관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바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공작에 있어서는 미국 CIA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순수한 정보수집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미국의 정보기관보다 유능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통상 궁지에 몰리는 측이 도발을 하거나 모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전히 많은 한국의 대중들은 러시아와 조선이 궁지에 몰려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류라고 하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정세를 조금만 관심있게 살펴보면 러시아와 조선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이 오히려 궁지에 몰려있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지난 총선때부터 윤석열 정권의 모험적 군사행동을 경고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금부터 미국 대선이 있는 연말까지는 미국도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조선은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 합참은 조선이 군사분계선에 방벽을 설치하자, 한미 기계화 부대가 이북으로 반격하기 위해서는 쉽게 격파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조선이 방벽을 설치한 것은 자신들도 지상군으로 한국을 침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지만 미국의 군부가 조선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군사공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방벽을 건설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합참이 반격시 조선의 방벽을 쉽게 파괴할 수 있다는 말은 언제든지 미국이 조선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미국 합참이 의도했든 아니든 이런 발언은 조선이 미국의 침공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하겠다.
한국의 대중들은 조선이 남침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행동은 오히려 미국과 한국이 침공할 것을 두려워하고 이에 대한 대비와 방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고와 판단능력을 상실하면 제대로된 대응방안도 나올 수 없다. 진단이 틀렸는데 어떻게 제대로된 처방이 나올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