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대학에서 강의중 학생이 ‘적대적 교전국’관계를 질문했다. 질문의 내용은 북한이 민족을 포기하고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주장하는데 어떻게 남북간 협력이 가능하고 관계개선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였다. 설명을 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충분하지 못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조선이 제시한 ‘적대적 교전국'관계는 상당히 복잡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관계로 선언한 것은 남한을 앞으로 적대적으로 생각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한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선언하고 명시한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인 국가라고 규정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관계라고 규정했다고 해서 앞으로 북한이 남한에 대해 도발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만큼 그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적대적 교전국 관계에서 우리가 고려해야할 것은 이말이 담고 있는 세가지 의미이다. 첫째는 민족에서 상호 국가의 관계라고 규정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교전중인 상태이고 세번째는 적대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 의미가 모두 나름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먼저 남북을 국가관계로 규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민족문제로 규정했을때 남한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남한은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할 수 없는 미제국주의의 괴뢰에 불과하므로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기본입장이었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북한은 남한을 국가로 선언함으로써 상호간의 정상적인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북한이 남한과 민족관계가 아닌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로 규정한 내막은 매우 복잡할 것이니 그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국가간의 관계가 됨으로써 이제는 한국과 조선이 서로 국가간의 관계라는 공식적 지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동등한 수준에서의 교섭이 가능한 상대라고 규정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외교적 교섭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만일 조선이 한국과 외교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통일부가 아닌 외교부를 대화의 상대로 하자고 할 것이다. 통일부는 앞으로 외교부의 예하 부서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라고 규정했다는 것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관한 문제는 미국이 아닌 한국과 직접 대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남한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시도를 통미봉남이라고 해서 이를 북한이 전략적 술책이라고 평가했으나, 사실 이는 북한이 남한을 보았던 인식의 실체를 의미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두번째는 교전국 관계의 함의다.
적대적 교전국이라는 의미에서 교전국이라는 의미는 적대적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무겁고 중대하다. 국가와 국가가 정상적인 관계로 복귀하려면 일단 교전상태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평화협정은 남북간이 아닌 북한과 미국간의 일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도 북한과 미국과의 평화협정 추진을 시도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정전협정의 상대로 인정도 하지 않았으니 평화협정에 끼일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이 남한을 교전국 관계로 인정함에 따라 북한은 교전상태의 해소를 위한 가장 중요한 대화상대를 한국이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제일먼저 남북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조선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선과 미국과의 평화협정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정전협정을 남북한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단계를 지나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 안보의 한국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유엔사의 정전유지역할도 한국군으로 넘어와야 할 것이다. 그 이후 전작권 전환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적대적 관계이다.
남북관계를 국가간의 관계로 규정한 이상 최고의 목표는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고 우호적인 국가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될 것이다. 남북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교전국 관계를 해소하게 되면 남는 과제는 적대적 관계를 우호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통일은 목표가 될 수 없다. 북한이 대남기구를 모두 해체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하겠다.
외형적으로는 한국과 조선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평양과 서울에 각각 대사관을 설치하게 되는 상황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기본관계조약도 체결해야 하고 교역도 정상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아직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정상적인 국가간의 교역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조선이 정상적인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조선과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이 앞으로 어떻게 한반도 문제를 다루어나갈 것인가를 큰 틀에서 충분하게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주도권을 행사하는 측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관계에서는 북한이 항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남한이 미국과 계서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현재의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상황에서 북한이 말한 ‘적대적 교전국’관계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권을 위시한 남한의 반통일세력들은 그동안 통일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다가 북한이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가 되자고 하니 갑자기 북한을 반통일 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보다 안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을 주도할 정치권력이 남북간 안보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