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토요일 김흥규 교수가 운영하는 플라자 프로젝트에서 발표를 했다. 필자가 발표한 주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한국의 운명'이었다.
먼저 한국 대외정책을 논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과 상반된 입장을 지니고 있는 필자에게 여러번 강의의 기회를 준 김흥규 교수에게 이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한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여전히 필자의 입장에 대해 불편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필자나름대로 그것이 국가와 인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필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필자에게 발표를 하게 하는 것도 김흥규 교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발표한 내용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원인으로 주도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권한을 한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점,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최근의 국제정세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집단서방의 약화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의 강화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의 패권을 의미하는 분야를 여섯개 정도로 규정하고 각각의 분야가 모두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필자가 규정한 미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여섯개의 분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달러의 기축통화, 둘째, 해군력을 기반으로 한 해상교역로의 통제와 장악, 셋째, 외국 정부의 의사결정과 권력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정보작전능력, 넷째,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의미하는 설득력, 다섯번째, 과학기술의 우위, 여섯번째, 에너지와 식량의 장악이다. 최근의 상황은 미국이 이런 여섯가지 분야에서 영향력이 축소하고 있으며 그 축소의 속도도 가속화 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은 외교 군사적 위기, 경제적 위기, 국내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내정치적 위기로 한국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한국이 처한 외교군사적 위기, 경제적 위기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으며 그런 위기를 헤처나갈 의지와 역량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군사적 위기라고 하면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핵위협만을 의미할지 모르나 사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북핵문제는 이미 한국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정도를 넘었기 때문에 북핵을 위기의 전부로 보는 시각, 북핵문제를 남북관계의 전제로 보는 인식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했다.
필자는 한국이 처한 국제정치질서의 시발점과 해결점을 남북간 모순의 해소라고 생각하고 다가오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그 방법론으로 그동안 주장했던 남북 경제안보동맹과 남북간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전쟁자체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인문지리적 억제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간이 부족하여 인문지리적 억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으나 한국에서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국가급 정치지도자를 꿈꾼다면 반드시 한국이 처한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내적으로 확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표이후 많은 질문이 있었으나 시간의 부족으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발표장 밑의 커피숖에서 문제를 제기한 분과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가하는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위협이라고 한다면 한미일 안보협력 그 중에서도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은 한국으로 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나 한국은 일본의 정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일본의 정보를 얻어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한때 논의되기도 했던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면 전쟁의 성격상 일본의 군수지원도 한국군에게 별 도움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한국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중국은 한국의 첫번째 교역상대국이다. 가장 경제적 교류가 많은 국가를 상대로 적대적 군사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반국가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중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해를 가한다면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중국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해상교통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한국 또한 중국의 해상교통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다. 중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발해만이다. 한국의 서해는 남중국해를 지나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선박을 통제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지역이다. 한국이 서해에서 지대함 미사일을 가지고 견제하고 있다면 중국도 남중국해에서 한국의 해상교통로를 위협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한미일 3자 군사협력은 사실한 한국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나토식 한미일 군사협력을 주장해왔다. 최근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가 한미일의 나토식 군사협력을 주장했으나 한미일 군사협력을 주장했던 미국이 소극적이다. 미국무부 부장관인 캠벨은 올해 4월에 한미일 나토식 안보협력이 시기상조라고 밝혔고, 최근에는 미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다니엘 크리텐브린크(Kritenbrink)는 시기상조(too early)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 국무부가 이런 언급을 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번째는 미국 대선의 향방이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나서의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아시아판 나토를 추진한다고 했는데 트럼프가 이에 반대한다고 해버리면 상황이 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미국이 아시아판 나토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트럼프가 직접 추진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한국내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미일 나토식 군사관계는 한국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윤석열 정권도 자신들은 그동안 사실상 한미일 안보협력을 염두에 둔 것은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일본관련 문제로 인해 수차례에 걸쳐 지지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윤석열이 한국에게 손해가 된다는 논란이 발생할 것이 뻔한 한미일의 아시아 나토와 같은 방식을 추진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협력은 당연히 국회의 통과가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인 상황에서 아시아 나토와 같은 방식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정권이 불가역적인 한미일 안보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추진할 경우에 문제가 생길 것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국회의 비준이 필요한 동맹 수준의 군사관계를 추진하면서 국회의 비준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이 당면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한미일 안보협력을 수용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그런 반대급부도 없이 중국의 보복이 뻔한 행위를 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자해적이라고 하겠다. 그런 이유로 윤석열 정권의 안보정책에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김태효를 간자라 보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를 하면서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대중과 대화의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결국 대중들의 인식수준 제고가 한국 대외정책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외정책이 일부 전문가 혹은 관료들의 손에서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손에서 놀아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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