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하마스에게 가자지대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간 가자사태의 전개과정을 볼 때 이란이 이렇게 발을 빼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하마스가 이란과 긴밀한 소통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할리가 없었다고 추정한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모르지 않았을 것인데 최소한의 보장없이 무모한 공격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이란은 전쟁도 불사할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런 이란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몇가지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란이 아랍및 이슬람국가들의 공동행동을 이루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전에 사우디 리야드에서 아랍 및 이슬람 국가 정상회담이 있었다. 여기에서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의 입장은 확연하게 갈렸다.
이란은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에 석유를 수출하지 않는 등의 공동행동을 촉구했으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일단의 왕정국가들은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회의는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말았으며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에서 문제는 왜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순니파 왕정국가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최근 미국과 관계를 정리하고 중국과 손을 잡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리고 중국의 중재하에 이란과 관계를 정상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우디 아라비아의 행동은 철저하게 자국의 안정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 미국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마스가 이슬람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를 위시한 왕정국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미국도 아니고 이스라엘도 아닌 이란과 같은 이슬람 혁명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수교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했지만 그것은 말뿐이고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근본주의를 왕정에 위협적인 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란은 가자사태로 인해 중동지역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데 실패했다. 앞으로 이란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란이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 이외의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이란의 태도가 변화할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현재 가자시티의 상황은 매우 심각한다. 민간인 피해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피해는 극심하다. 각종 SNS를 통해 전세계로 중계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도 앞으로 2-3주안에 가자시티를 점령하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사태로 히틀러 치하에서 겪었던 홀로코스트의 피해자 자격을 완전하게 상실한 것 같다. 앞으로는 할리우드에서 유태인 박해에 대한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피해자 자격을 상실하고 가해자의 위치에 서버린 것이다.
얼마전에 언급한 적도 있지만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가자시티는 견기디 어렵다. 외부에서 지원없이 고립되어 전투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에서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번에 끝을 보지 않으면 후환이 더 커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휴전이란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렇게 되어 가자시티가 이스라엘군에 점령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사우디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이스라엘과 수교를 하고 미국과 이란사이에서 왕정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은 가자지대에서 하마스가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가 아니다. 아마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몰아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가장 심각한 위협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 주변의 왕정국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소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아랍과 이슬람의 가장 큰 장애물을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왕정국가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정리되든 아랍과 중동의 왕정은 심각한 국내 위기에 빠질 것이고 무슬림 형제단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는 그 위세를 더 떨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렇게 보면 실제로 이번 가자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 주변의 왕정국가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공적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란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차단한다는 전략적인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 이란도 상황을 보아가면서 언제 어떻게 태도와 입장을 바꿀지 알 수 없다. 결국 관건은 하마스가 가자시티에서 얼마나 오래 강력한 저항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 본격적인 시가전은 시작하지 않았다.
하마스의 문제는 식량과 탄약이 아닌가 한다. 특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탄약의 부족은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 고통을 얼마나 오래 이겨낼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하마스가 영웅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그래서 아랍과 이슬람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야 국면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 하마스가 버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