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팅 + 큐레이션 대회 4 ] #2 "영원한 천국", 정유정

in hive-183959 •  18 days ago 

영원한 천국은 정유정작가의 욕망 3부작 중의 2부에 해당한다. 1부인 완벽한 행복과 연결점은 없다. 마지막 3부는 어떤 내용인지 알려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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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작가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읽어봤다. 가장 처음으로 만난 소설은 "7년의 밤"이었다. 댐 건설로 수몰된 동네를 배경으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인데, 글의 흐름이 엄청나게 빨랐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고, 이어서 야생으로 돌아간 개와 인간의 이야기인 "28"을, 그리고 악의 3부작 중 가장 수작인 "종의 기원"을, 진이 지니를, 완전한 행복을 그리고 이제 영원한 천국이다. 정유정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여류소설가라는 것이 놀라웠다. 나의 편견일 수 있겠으나 여성작가로 이렇게 종횡무진으로 글이 이어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책은 현실과 SF를 적절히 섞어 놓은 소설이지만, SF적인 배경만 따왔을 뿐 삼체나 테드 창의 소설처럼 기술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그래서 SF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물론 이 소설은 SF보다는 인간의 욕망, 그 중에 영생이라는 주제를 더 깊이 탐색한다.

예전에 읽었던 동화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동네에 마녀가 찾아온다. 마녀는 사람을 다시 젊은이로 만들 수 있는 바법을 부릴 수 있다. 그런데 하나의 조건이 있다. "다시 젊어질 수 있는데, 그 젊을 때 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젊어지기를 원했다. 딱 한 노파만을 제외하고. 그 노파는 젊어서의 실수를 반복해야 한다면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면서. 이 소설에서 베토벤(가명)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에는 롤라라는 가상세계가 나온다. 인간이 신체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가상의 롤라라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신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만큼의 세상이 다시 만들어지는 거다.

이 세상을 만든 단체는 정확히 어디인지 나오지 않지만, 이 세상 속의 가상세계를 제작하는 설계자로 해상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현실세계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스스로 눈거풀을 움직일 수도 숨을 쉴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스스로 롤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 속에서 수만번 동안 여우로, 늑대로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는 한 번 선택한 삶은 죽어야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삶을 선택한 순간 과거의 기억은 사라진다. 그녀가 다시 인간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물론 롤라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드림시어터라는 개별화된 삶을 제작하는 설계자가 되었다. 그녀의 애인인 제이가 이미 그녀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제이를 아는 경주가 산다. 그는 삼애원이라는 곳에서 만난 베토벤(그의 이름이 나오는지 싶다)으로부터 롤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심을 전달받았다. 베토벤은 영생의 삶이 싫다고 현실에서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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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가상세계인 롤라와 드림시어터의 세상을 번갈아 이야기한다. 물론 드림시어터의 많은 내용은 현실에서 가져왔다. 드림시어터 속의 인물은 롤라에 있는 존재들이 역할을 설정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더더욱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다.

소설에서는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가상인지 정확하지 않다. 롤라가 가상인지 현실인지, 롤라가 만들어낸 드림시어터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소설의 내용으로는 롤라가 현실이고, 드림시어터가 가상인데, 롤라 자체가 가상세상이니...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지금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영생은 여러번의 삶을 다양하게 살아보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현재도 진행형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세상과의 단절이 있다. 죽음 이후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죽으면 레테의 강을 건너고, 삼도천을 건넌다는데, 그 강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은 사라진다고 한다. 그 기억이 사라지만 그 기억의 장소에는 무엇이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이 덧씌워졌던 게 사라지만 원래의 기억으로 되돌아 오는 것일까?

장자의 나비꿈에서는 꿈을 꾸는 것이 장자인가, 나비인가 하는 말이 나온다.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일까, 아니면 나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우주인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존재일까...


  • 4차 포스팅큐레이션 글들

[ 포스팅 + 큐레이션 대회 4 ] #1 "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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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처구니 없음 을 뒤집어 쓴 외계인 일까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ㅎㅎㅎ 어마도요. 어처구니 없음을 뒤집어 쓴 외계인은 어떤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영혼이 되면 과거 모든 기억을 할 수 있고
사람으로 있을 때만 과거 기억을 잊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그러니 영혼의 윤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겠죠.^^
저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요.

저도 제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요.
아내님이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는데 이번에 타고난 사주는 전생의 성적표라는데...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죽고 난 뒤에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죽은 사람들과 재미나게 시간 보내고 싶네요. ^^

그냥 여행갔다온 듯한 느낌이 아닐까요.
또 하나의 추억거리 만들었다 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