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전투 경과의 개요
제1항 국련군의 대전, 김천 간의 철수 개요
7월 20일 여명(黎明)을 기하여 적은 전차 부대를 선두로 대규모의 대전시 공격을 개시하고 아군의 보병 및 포병 진지를 유린(蹂躪)하였다.
미 제24사단은 예하 각 연대 및 포병부대에 대하여 7월 20일 이른 아침 철수 후퇴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제19연대와 제34연대는 이 돌변한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방어진지를 설정할 지점의 결정도 없이 막연히 주저항선으로부터 이탈하여 대전시로부터 이동을 개시하였다.
미 제19연대는 사단 작명에 의거 제2대대를 미 제34연대에 배속시켜 해 연대를 지원하게 하고 기타 부대는 영동으로 철수한 후 철로와 자동차로서 김천 북방 약 5마일 지점에 횡좌(橫座)한 천연적 방어진지로 향하여 일대의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였고, 제34연대는 7월 20일 일몰시 미 제21연대장으로부터 대전을 포위한 적을 분쇄하고 아군의 혈로 타개를 위한 특수임무부대 및 전차 1개 소대의 지원을 얻어 포위망을 돌파하고 대전~세천 간의 터널(1047~1494)를 통과하자 대전시를 포위하고 있던 적은 대전시로부터 통하는 모든 도로에 장애물을 이미 설정하고 아군의 철수로를 봉쇄 차단하였으며 이 터널에서 아군을 대기하였으므로 미 제34연대 및 제19연대 일부는 적으로부터 기습을 당하여 대혼란을 일으켜 그 일부의 부대는 부득이 단절 당하고 말았다.
7월 20일 일몰 후 미 제21연대에서도 전초부대의 철수를 명령하고 야음을 이용하여 철수작전을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7월 21일 이른 아침 미 제24사단은 아군이 철수 연후의 도로와 철도 및 터널은 적에게 주는 이용 가치가 지대함으로 폭파할 것을 명령하였다.
계속 남침하는 적은 아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증강하여 강습해 왔으며 아군은 지연전을 감행하면서 축차 영동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한편 미 제21연대 제1대대는 영동의 서남방(1069~1469)에 도로 장애물을 설정하여 적의 추격을 지연시켰다. 이때 미 제19, 제34연대의 장병 300명이 영동 남방 약 15마일 지점에 있다는 보고에 접하였다.
7월 21일 일몰 전 미 제21연대는 야간을 이용하여 미 제8기갑연대와 교대할 것을 명령 받았으나 22일 12:00까지 제8기갑연대와 더불어 현진지를 고수한 후 철도 혹은 자동차로서 영동으로 향하였다.
한편 미 제34연대는 각 대대를 영동의 낙오자 수집처에서 재편성한 후 (1070~1469)선으로부터 동북방 (1068~1474)선까지를 방어할 것을 명령받아 7월 21일 17:00에 김천 동북방 6마일 지점에 철수 이동하였다.
또한 사단 포병대는 7월 22일 15:00 대전시를 이탈하여 철수를 개시하였으나 각 도로에 구축한 장애물과 적의 소화기 및 기관총의 사격에 다대한 손실을 보았다. 즉 미 포병대 예하 제13 및 제63포병대대는 성공리에 이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제11포병대대는 모든 장비와 탄약을 유기하였다. 7월 21일 포병대 본부 및 동부 중대는 영동 동방 4~5마일 지점으로 이동하여 제63 야포대대와 합류하고 제13 야포대대는 영동 서방의 신 진지로 이동하였다.
7월 23일 13:00 미 제24사단 포병대는 제11 야포대대 B 중대를 제외하고 전부 미 제1기갑사단 제8기갑연대에 배속되어 동일 20:00 왜관 부근의 새로운 진지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