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청송 부근 전투
제1항 전투 경과(부도 제24호 참조)
7월 19일 안동에서 재편한 강원도 경찰비상 경비사령부 제1, 제2, 제3, 제4, 제5, 제6 각 대대는 아 제3사단에 배속되고 그 중 제5대대는 제3사단 작명에 의하여 청송 지구를 중심으로 영덕, 안동, 영양 간의 주보급로 경비에 임하고 있었다. 울진에서 영양으로 우회 남하한 적 제5사단의 일부 병력은 적 제766부대의 일부 병력과 합세한 약 1개 연대 병력을 영양에 침입시킨 후 7월 19일 12:00 적 약 1개 대대의 병력은 신촌동(영양 남방 17㎞)을 경유, 고흥동(신촌 남방 17㎞)에 도착한 다음 동일 18:40분경 월외동(청송 동방 14㎞)에 계속하여 침입해 왔다. 7일 야음을 이용하여 적은 청송 습격을 기도하였고, 청송에는 이 적에 대비한 아 경찰 약 2개 중대가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7월 20일 02:45 적 1개 대대는 청송에 침입하자 03:00 청송에 포진하고 있던 아 경찰 2개 중대는 중과부적으로 의성 부근으로 일단 철수하였다가 동일 18:30 재공격하여 21일 새벽 청송을 재탈환하고 동일 08:30 적은 청송 남방 상평동으로 도주하였다. 동일 육군본부 작명 제57호의 의하여(부록 제11 참조) 독립기갑연대가 제3사단에 배속되고 경찰 제5대대는 제3사단 작명에 의하여 다시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동 대대는 지휘소를 진보리에 설치하는 한편 영양에서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고자 대대 전 병력을 영양 부근까지 진출시켰으나, 적은 동부 산악을 이용하여 축차 우회 공격을 기도하였으므로 경찰 제5대대는 적과의 접전을 회피하면서 477고지로 철수, 동 고지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점차 남하 공격하여 오는 적에 대비하였다. 동일 야간에 이르러 적은 약 1개 대대 이상의 병력으로써 477고지의 아 경찰대 진지에 포위공격을 감행하여 왔으므로 아군은 동 적과 치열한 전투 끝에 혈로를 타개하여 같은 날 밤 406고지에 철수, 계속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고 있었다.
7월 22일 09:00 월외동으로부터 이전동에 집결한 적은 지방 폭도를 포함한 약 1,400명으로써 송생동을 경유, 점차 청송에 공격을 가하고 한편 14:00에는 그 선발대 약 2개 중대가 청송에 침입하였다. 23일 아 기갑연대 장갑차의 포격으로 적은 이전동 부근으로 분산 도주하고 청송은 아 경찰대로써 계속 확보되고 있었다. 406고지 일대에 아 경찰 제5대대는 계속 진지를 확보하고 피아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바 적은 아 진지 돌파를 기도하여 청송 외곽선 일대에 산재한 병력과 합류하여 아 진지를 돌파하였으므로 24일 새벽 아 경찰 제5대대는 동 고지 일대에서 철수, 청송 외곽선인 영양~청송~영덕~안동을 연하는 작전상 중요한 요지인 석보면을 중심으로 배치하였다. 제1, 제2중대를 석보면(ER170~370)에 배치하여 영덕 부근에서 침입하는 적을 저지하게 하였다. 25일 이전동에 근거를 둔 적은 송생동을 경유, 계속 청송 침입을 기도하였으나 포진 중인 아 경찰 2개 중대는 기갑연대 장갑차대와 경찰 합동작전으로써 이를 격퇴하고 청송을 확보하고 있었다. 26일 406고지를 돌파한 적은 약 1개 연대 병력으로써 석보면 아 경찰대 제1, 제2중대 정면에 공격을 가하고 기타 일부 병력은 원전리 제3중대 진지에 접근해 왔다. 각 지구에서 방어 중이던 아 경찰 제5대대는 동일 11:00를 기하여 기습전을 감행함으로써 적의 전진을 일시 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