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전투 경과 개요
7월 16일의 정황(부도 제27호 참조)
홍성 방면으로부터 전차를 선두로 장항을 향하여 남하 중인 적 제6사단 제13연대는 대천 방면을 방어중인 아 해병대(1개 중대)의 저항선을 돌파하여 일로 장항으로 박두하였으며 공주 방면으로부터 남침한 적 제4사단 주력 및 제6사단의 일부 병력은 미군이 철수한 뒤를 이어 강경을 중심으로 한 금강 일대에 중압을 가하여 왔으므로 아군은 7월 16일 19:30 관구작명 제1호로써 적을 금강선에서 격멸하고자 군산 일대는 해병대, 용안~웅포리 간은 제7사단, 강경~고산 간은 경찰대, 고산 동부는 청년방위대 등으로 각각 부대 배치를 시키는 동시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포고문을 공시하는 한편 지방 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비상 대책을 토의하여 비상대기 및 검문 개시와 통제 물자 및 금융에 관한 일체에 대하여 만반의 조치를 강구하였다.
7월 17일의 정황
7월 17일 대천서 장항을 경유, 군산으로 철수한 아 해병대는 적의 도하 시도를 좌절시켰으나 강경~용안~웅남리 선에서 방어 중인 아 군경의 정면에서는 심야를 이용하여 도강 내습한 적과 장시간의 교전이 계속되어 다대한 전과를 거두고 적을 격퇴시켰다.
7월 18일의 정황
장항, 강경 방면의 적은 중장비로써 점차 도하중이고 이미 그 선발대는 각 방면에서 침투하고 적 주력은 강경에 집결 중이었으므로 대세가 불리하게 된 아군은 육군본부에 무기 탄약 및 공폭 지원에 관한 의뢰 전문을 발송하였으며 전남사령부에는 경찰대의 시급한 내원을 요구하였다.
19:00 강경 방면의 적은 드디어 대거 남침을 개시하였으므로 육군 준장 원용덕 부사령관은 군경 혼성 2개 대대 병력을 직접 지휘하여 웅포리, 용안 남방까지 남하한 적을 역습하여 강변까지 수복하였다. 24:00 현재 육군본부와 전남지구사령부에 요청한 지원에 대하여는 하등의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7월 19일의 정황
6,25사변 직후 진남포를 출발하여 서해안 용대리 서방 항구에 상륙한 적 유격대 약 50명은 평민으로 변복하고 후방을 교란 중임을 아 영광경찰서가 발견, 이른 아침을 기해 완전히 섬멸하였다. 동북 강경 방면에 진출한 아군은 적의 주력에 압도되어 지연전으로써 후퇴 중이고 적 제4사단 1개 연대 병력은 고산, 삼례 방면으로 지향하여 11:00에 여산~익산선에서 방어 중인 아 청년방위대 및 경찰대와 격전 중이며 적 제6사단 1개 연대 병력도 아군의 퇴로를 따라 이리 방면으로 남하 중이므로 피아 전선에는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아군은 탄약 부족으로 전선에서 막대한 병력의 손실을 냈으며 사기는 저하되어 전면적으로 후퇴 상태에 이르렀음으로 3차례나 육군본부에 탄약 보급 의뢰 전문을 발송하였다. 적의 맹격에 지탱할 수 없는 용안, 웅포리 및 임파 방면의 아 해군 및 경찰대는 지연작전을 하면서 축차 이리로 철수하였다. 14:00 용안 방면으로부터 남하한 적 1개 연대 병력은 이리시에 돌입하자 군경 혼성으로 방어 중인 아군은 적의 우세한 화력으로 말미암아 14:30 철수를 개시, 해병대는 후퇴 도중 목천포 경찰대와 합류하여 김제로 철수하였고, 그 외 각 부대는 삼례로 후퇴하였다. 금강 입구 장항에 집결한 적은 포 지원하에 각 방면으로부터 강행 도하를 감행하여 15:00 군산 부근에 상륙하였으므로 요충지를 고수하던 아 해병 1개 중대는 중과부적 군산으로부터 철수, 만경강을 도하하고 심야 김제에 도착하여 이리에서 철수한 우군과 합류하였다. 이리를 점령한 적의 일부 2개 대대 병력은 김제 방면으로 남하하고 잔여 2개 대대 병력은 계속하여 아군의 후미를 따라 전주 방면으로 남하 중이었다. 19:00 전남으로부터 도착된 경찰대 약 1개 대대를 배속받아 익산 방면으로 지원 출동시켰다. 이때 동부 고산 방면에는 여산으로부터 후퇴한 아 경찰대와 합류하여 청년 경찰 혼성 약 1개 대대 병력으로서 유격전을 감행하였으나 실탄 소진으로 인하여 22:00경 구만리로 철수한 후 만경강 남안에 대비하였고, 적 약 2개 대대와 격전 중이던 전북, 전남 경찰대는 우군기의 오폭을 받아 22:00 익산을 철수, 삼례에서 방어 중인 우군과 합류하였으나, 이리 방면으로부터 추격해 온 적의 압박으로 인하여 동산으로 철수, 동산 북방 일대에서 만경강을 끼고 피아간에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한편 서안의 어항인 남포리에는 장항을 출발한 적의 선발대 약 1개 소대 병력이 상륙하여 김제를 향하여 침투 중이었으며 김제를 방어 중인 아 해병대는 이리 방면으로부터 남하한 적 2개 대대 병력에 포위당하였다. 이 정보에 접한 전남 경찰대는 22:30 전원 김제로 응원 출동하고 동산, 구만리 방면의 아군은 전주로 철수하였다. 24:00경 동산 구만리로부터 추격해 온 적은 전주시 외곽에서 합류되어 2개 연대 병력으로서 전주시를 포위하고 점차 포위망을 축소하였음에 피아간의 공방전은 치열해졌다. 서부 김제 역시 적에게 포위당하였으나 아 경찰대의 급원으로 말미암아 일시 적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심야 재차 포위를 당하여 탄약 소진으로 인하여 속수무책 아군은 육박전으로써 포위망을 돌파하고 정읍으로 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