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은 죄가 없다

설령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초범은 구속되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법관이 형을 정할 때(이를 "양형"라가 한다)는 죄질의 불량함이 고려되는데, 평생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이나 아버지라던가, 학창 시절 수년 째 자신을 폭행하고 왕따로 만든 친구의 뒷통수를 용감하게 때렸는데 골로 갔다던가, 여하간 사람이 납득할 어떤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것 같은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잔혹 범죄 같은 경우 초범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나오겠지만 실제 발생하는 사건들 대다수는 서로 간 어떤 갈등이 있던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초범도 반드시 구속시키는 사건이 둘 있다. 그건 보이스피싱 범죄와 전세금 사기다. 작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이 일군 재산 전부를 빼앗는다. 가장 악질적인 범죄로, 아무리 우리 법이 "응보"보다는 "교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여도 실은 그 사악함에는 교화가능성마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세상 악랄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을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회 구성원들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는 종전처럼 수사기관을 사칭하거나 가족이 유괴되었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수백, 수천만원의 돈이 필요한데 금융 기관에서 융통해주지 않는 사회적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일단 소액 대출을 받고 즉시 상환하여 신용등급을 높이거나 또는 창업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단 창업을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한다. 특히 이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소액의 금원을 먼저 이체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더 잘 속는다. 이들의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프로필은 유명 금융권 로고이거나 결혼, 아기가 있는 가족 사진, 애완동물을 안고 있는 사진 3개 중 하나인데 이런 사진 역시도 피해자들의 방심을 유도하는데 한목 한다. 그렇게 이들은 대출을 빙자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한다.

그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괴들, 즉 작전을 짜고 피해자들과 직접 연락을 하는 이들은 "전부" 해외에 있고 대부분 사법권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 있다. 현지 경찰과 공조하지 않는 이상 이들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해외에서 보이스피싱 일당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들리곤 하지만 검버섯처럼 국가를 불문하고 계속 자라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일망타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는지 수법만 알면 그냥 아무 나라, 아무 호텔방에서 2, 3명이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안전하게" 현금이 전달되려면 누군가는 계좌를 빌려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직접 피해자들에게 가서 현금을 받아와야 한다. 전자를 대포통장 대여자라 하고 후자를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라 한다. 얼핏 생각하면 가장 사악한 범죄에 동조한 자들이고, 이들 역시 크게 처벌해야 할 것 같지만 후술할 이야기를 들으면 다르다.

일단 대포통장 대여자를 한 번 살펴보자. 요즘 현금 얼마 받고 자기 계좌를 빌려주는 그런 사람은 없다. 당신이 중고나라에 입금 받을 계좌를 올렸는데 어느 날 그 계좌에 수백만원이 입금되어 있다. 그리고 연락이 와 실수로 돈을 잘못 넣었으니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선량한 당신은 그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자기 부모님, 또는 배우자의 계좌라며 당신 계좌에 입금한 것과 다른 계좌를 불러준다. 졸지에 당신은 대포통장을 제공한 사람이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몇 달간 계좌가 잠기는 불편함은 겪겠지만 처벌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현금수거책들의 경우는 또 다르다.

내가 본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가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인줄 알지 못했다(알고 한 단 한 명도, 인터넷으로 알게 된 남성과 서로 음란 영상을 주고받다가 폰이 해킹 당해 외부에 유출한다는 협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 영상 촬영 시 얼굴을 노출하지 않아도 핸드폰 주소록이 해킹되어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이를 보게 된다면 어렵지 않게 누군지 식별할 수 있다. 심지어 이 경우 영상을 지워 달라고 돈까지 지급했는데, 부족하다며 일을 강요한 건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현금수거책들은 자신이 퀵 배송 아르바이트나 채권추심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일단 구직을 하면 인터넷에 멀쩡한 업체의 사업자등록증과 홈페이지가 올라와 있고 밑에 담당자 연락처(그 멀쩡한 업체 담당자가 매일 이걸 검색해서 누군가 자기 명의를 도용해 구인 공고를 올렸다고 항의해준다면 좋겠지만 보통은 그러지 않는다)가 있다. 심지어 구인 사이트 DB에 자기 이력서를 올려놓았는데 그걸 보고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종종 직원 전용 앱이라고 하며 앱 설치를 독려하는 경우도 있는데, 로고와 핸드폰 인증까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들은 자신이 취업에 성공했다고 믿고 수금한 돈에 일절 손 대지 않고 ATM 기계에 송금한다. 일하다가 가끔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다루어 본 보이스피싱 일당은 각 의구심마다 이를 해소시켜 주는 모범 답안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몇일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체포되어 영문도 모르고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는지 묻는다면 이들에게 돈을 빼앗긴 피해자들에게도 어떻게 그게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그렇게 쉽게 돈을 건내줄 수 있었는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이상한 점이 있어도 당시에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똑똑한 동물이 아니다.

가끔은 데이팅앱으로 만난 상대에게 자신을 해외에 거주하는 성공한 사업가 등으로 소개한 뒤 호감을 쌓고 자기 회사 일이라며 부탁하기도 하는데, 아마 기사로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기사로만 읽으면 어떻게 그걸 속을 수 있는지 생각될 수 있지만, 작업에 포섭하기 위해 현금수거책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간은 보통 2주에서 길면 한 달도 넘는다. 그 기간 동안 매일 같이 자신과 대화하며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상대. 대화도 잘 통하고 또 사랑을 속삭이던 그 사람이 보이스피싱 악당이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다.

형법은 이론적으로 “과실치사” 같이 “과실”로 인한 것도 처벌한다고 법전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죄는, "과실범"은 처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라면 현금수거책들은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법은 이론이 아니다. 저 해외 오지에서 이 범죄를 끊임 없이 저지르는 악당들을 싹 잡는 것은 불가능한데 보이스피싱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결국 사법정책은 현금수거를 하는 사람들을 애매하다 싶어도 싹 잡아가둠으로서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널리 부여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과실"을 "미필적 고의"로 승화시켜 아무 것도 모른 젊은이들을 전과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법률 용어로 "미필적 고의"란 무엇인가? 그렇게 될지 정확히 몰랐다고 해도 그걸 감수했다는 의미다. 건장한 격투기 선수가 어린 소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난타했다면 꼭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죽어도 상관 없다는 인식, 즉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미필적 고의다. 현금수거책들에게 이 논리를 적용한다면, 비록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들이 정확히 자기 행위가 보이스피싱인줄 몰랐다고 해도, 설령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해도 그걸 감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상식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 걸 감수할 정도로 나쁜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는데 그걸 들고 도망을 가지 얌전하게 그것을 ATM기기에서 남의 계좌로 입금할 리가 없지 않은가? ATM기기 뿐 아니라 현장에 가기까지 수 많은 CCTV에 자기 얼굴을 그대로 노출할 뿐 아니라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면 근방에서 자기 카드로 음료수나 밥도 사먹고, 심지어 차량 번호가 그대로 노출되는 자기 차를 끌고 다니며 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한국 같은 좁은 나라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체포될 가능성이 100%인데 고작 몇십만원 몇백만원을 벌자고 이 일이 보이스피싱 범죄일 가능성을 감수하고 이 일을 했다고? 특히 이런 현금수거책들 중에는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개중에는 공무원 준비생도 있었다. 공무원의 경우 벌금만 나와도 임용되기 어렵다. 아마 이 친구가 공무원 준비한다고 학원비로 쓴 돈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일을 하며 받은 돈보다 10배는 많을 것이다. 현금수거책들의 경우 대부분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 그래도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나름 자립심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절대다수는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많은 경우 이들을 범죄자로 본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모르고 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며, 만약 운이 나빠 폰을 분실하거나 그렇게 되어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면 자기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유죄가 나오게 된다. 설령 자신이 모르고 했다는 증거를 제출해도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는 힐난성 질문을 한 번 조사 때마다 수 시간,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기까지 수 년을 견뎌내야 한다. 몰랐다고 답하자 원래 그렇게 생각 없이 사냐는 폭언도 들어보았다. 또 검사가 구속 영장 청구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되면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치장에는 일단 들어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한 번도 이런 걸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이 단계에서 벌써 가족과 본인 모두 멘탈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맡은 사건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나는 그래도 불기소처분(혐의 없음) 등이 나올 때마다 사법정책 상 엄격하게 수사하는 것과 별도로, 그 처분 자체는 합리적인 법 이론에 근거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주변 변호사들과 이 이이갸를 나누며 실은 불기소나 무죄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려운 사건이었더라...... 처음에는 어떻게 이것을 처벌할 수 있을지라는 의문과 분노로, 좀 더 시간이 지나 좋은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 적도 있다. 다만 솔직히 말해 결과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은 젊은 현금수거책이 아니었고 국내 굴지 은행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고 은퇴한 분이었다. 참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더라. 요즘 기준으로는, 결혼정보업체에서 어지간한 전문직보다도 그 은행 신입 행원 점수를 높게 쳐줄 곳이다. 거기서 부장까지 하고 나왔다. 그때는 얼마나 유능한 가장이고, 또 잘나가는 친구였을까. 두둑한 퇴직금을 들고 나온 그는 평소 자신이 구상했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또 돈도 벌 수 있는 사업을 했다. 잘 풀리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에 봉착하더니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대로 치명타를 맞았다. 홍보로도 돈을 많이 썼고 영업이 좀 된다 싶었을 때 뽑아 놓은 사람들 인건비도 나갈 만큼 나간 상황이라 퇴직금은 다 소진되었고 집에서 놀기에는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이니, 건강 관리도 할 겸 몸으로 여기 저기 움직이는 일을 찾다가 하게 된 것이 퀵 배송 아르바이트였고, 그렇게 딱 일주일을 일한 이 분은, 평생 자랑이었을 은행권 경력이 도리어 주홍글씨처럼 죄수복에 박히어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재판부의 논리는, 어떻게 금융권에서 오랜 기간 을을 한 사람이 이게 범죄인줄 몰랐냐는 것이다. 자신은 대환대출(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아 신용도를 높이는 제도)인 줄 알았다는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속될 수도 있다고 말하자 괜찮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 포승줄을 하고 온 그는 결국 펑펑 울고야 말았다. 정말 재판부의 논리처럼, 금융기관에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불법이라는 걸 알아야 하는 것일까? 검사라고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에 반갑게 답변한 검사도 있다고 들었다.

이 범죄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서민들의 삶을 좀먹는, 근절되지 않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사법기관의 사법정책에도 귀 기울일 여지가 있다. 그래도 다시 묻는다. 정말 이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인줄 알았을까? 죄가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의뢰인이 감옥에 가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이 변호인이다. 이 사람이 구속된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 다시 일어나 이 사람 기록을 전부 다시 읽어보았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 사람은 이 일을 알고 하지 않았다.

오래 전 나는 법학이란 쓸모 없는 이론을 가지고 다수설과 소수설이 싸우는 이상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실무에 몸 담고 있던 법조인들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과연 사람의 죄를 몇 마디 문장으로 다 규율할 수 있는가? 결국 각 학설의 수많은 담론은, 매번 법을 새로 만들고 고칠 수 없는 그 현실에서 반드시 나올 수 밖에 없는 억울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차선책인 것이다. 법조인으로 이제 실무에서 10년 가까이 있어본 지금은 조심스럽게, 무능한 것은 법조인이지 법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제대로된 정책은 엉뚱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지문처럼 목소리에 대한 성문을 수집해 출입국 심사에 적용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는 전과자가 되어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데, 거기에 개인정보보호법과 인격권을 외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심난함으로, 그리고 법조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이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언젠가 해외에 있는 그 모든 보이스피싱 본범들에게 죄값이 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어, 한쪽은 평생 일군 재산을 잃게 하고 다른 한쪽은 범죄자로 만드는 그들의 악행이, 옥졸이 가죽을 벗기고 쇠꼬챙이로 산적을 만든 뒤 이를 불에 태우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억겁으로 그 죄값을 치루기를. 반드시 꼭.

법과 사람 1화 - 어떤 의처증 의뢰인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