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새벽이었다. 배정된 방 번호는 22번, 2022년은 부활하기로 예정된 한 해였다. 그때 알았다. 여기서 잊고 있던 영혼의 한 조각이 다시 부활하거나 재생될 거란 걸. 이상하게도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가 자꾸만 맴돌아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18살엔 죽으러 바다에 갔다. 내가 죽을 수 있는 곳은 바다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선 차마 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다에 모조리 삼켜져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별 일 없이 학교를 가듯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었다. 평소처럼 출근하는 아빠는 학교 근처에서 날 내려줬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있으라고 인사했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탔다. 우리 동네엔 없는 지하철을 타고 오랜 시간 천천히 서울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역 한가운데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교복을 버렸다. 교복은 그때 애써 힘겹게 지켜온 평범한 일상의 껍데기였다.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죽겠다는 선언이었다.
만리포에 도착했다. 버스로 갈 수 있는 바다는 거기밖에 몰랐다. 아니다. 3년 전 불행이 시작되기 전 만리포에 가고 싶다 생각했다. 만리포에서 가족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친구에게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들은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죽으러 바다에 갔어야 했고 할 수 없이 그곳이 만리포라 생각했다.
해가 지길 기다렸다. 밤이 돼서 어두워서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리고 바보 같은 나는 몰랐던 것이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 곧 여름이 될 것 같은 날씨에서도 바닷바람은 얼마나 거칠고 차갑고 매서울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다. 바다를 몰랐으니까. 가림막 없는 해변에서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점점 거세지는 파도를 보며 겁이 났다.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바다는 오로지 날 질책하는 듯 거센 바람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죽을 수 없겠다고 단념했다. 근처 가게에서 전화를 빌려 아빠에게 데려와 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스스로 죽기엔 내가 너무 나약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낭패감에 젖었다. 생존 본능, 그것이 사상과 결의를 압도하는 최우선의 가치라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건 사라졌다. 삶을 놓았다. 삶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앞으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공포감과 무력감에 잔뜩 질려 반은 안도하고 반은 질타하는 가족의 시선을 견디며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죽을 만큼 힘들다 생각할 때도 죽어야겠다는 개념은 내 안에서도 한 번도 꺼낸 적 없었다. 그 개념은 그날 거기서 죽었다.
그것이 부끄럽진 않았다. 그 후로 삶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날 이끌며 상상조차 못했던 멋지고 신기한 행운과 선물을 주었고, 그것의 의미는 삶에 충분했다. 그러나 몰랐다. 오랫동안 괴로워 그때의 괴로운 마음을 하나하나 뜯어보거나 조우한 적 없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잊거나 전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대면하기엔 너무 아팠고 흔들릴까 두려웠다. 억누른 마음과 감정은 깊이 가라앉았다. 아주 깊이 가라앉아 그것이 궁금했을 때는 나조차 찾을 수 없이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에는 그 애가 왜 죽기로 했던 건지 잊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만 기억이 났다. 진짜로 그 애가 왜 바다로 갔는지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일은 그저 타인의 이야기처럼 멀고 흐릿해서 더 이상 잡히지 않았다.
17년이 지난 오늘 다시 그 애를 만났다. 바닷가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 애를. 그 애는 자신이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결코 절망적이지 않았다. 감정에 휩싸여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그 애는 담담하고 차분했다. 죽음은 고통을 끊기 위한 수단이었다. 가장 힘겹고 아플 땐 죽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애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맞이해 모두가 안심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인생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으로 태어나 생명을 지닌 이상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것. 태어나서 사는 건 고통이라는 것. 지금 자신의 고통이 결코 외부의 사건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거. 고통을 가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 그런데도 자신이 이 고통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답을 찾아 헤맸다. 지금 그 애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엔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묻을 수도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애에겐 너무나 절실하고 현실적이며 시급한 문제인데 다들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다. 그 애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무시하고 없는 척 사는 건 불가능했다. 고통이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는 데 그것을 다룰 힘이 내게는 없다. 여기서 끝내자. 그것이 그 애가 죽기로 결심한 자연적인 이유였다.
너의 말이 맞아. 태어난 이상 우리는 고통을 받지. 그것은 감각을 느끼는 생명체의 필연적인 운명과도 같지. 그렇지만 바보야. 왜 이렇게 급해. 왜 벌써 끝내려고 해. 방법이 없지 않아. 너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아니 너니까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아니 해결되지 못한 걸 구하는 사람은 없어. 의문은 네가 지니고 있기 때문에 태어나는 거야.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아이는 순수하고 솔직하고 어리석고 경솔했다. 그 애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도와 달라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도 자신밖에 몰랐다.
그리고 알았다. 그 아이가 찾던 사람이 지금 바로 나라는 걸. 그 아이에게 바람을 보낸 사람이 나라는 걸. 그 아이를 바다로 보낸 사람이 지금 나라는 걸. 바다로 들어가려는 아이를 향해 나는 목이 터지도록 외치며 신호를 보냈다.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나를 두고 가지 마. 사라지지 마.’
지금 목이 터지도록 온 힘을 다해 부르지 않으면 그 아이가 죽어버릴 거란 걸 알았다. 그 아이를 붙잡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모든 게 끝이 나. 온 마음 다해 전력으로 모든 에너지를 모아 바람이 불길 기원했다. 거센 바람을 일으킨 건 그 애가 죽길 바라지 않은 건 지금의 나였다.
'넌 있잖아. 시간이 지나 알게 돼. 바람이 불면 우주가 널 사랑한다는 걸. 바람이 불면 람타가 널 사랑한다는 걸. 바람이 불면 내가 사랑한다는 걸. 첫 여정을 나를 만나기 위한 기나긴 기다림이라는 걸. 우린 언젠가 반드시 꼭 만난다는 걸. 네가 찾는 그 사랑을 꼭 하게 될 거고. 그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그 사랑만은 영원할 거야. 바람이 불면 알게 돼. 그러니 가지마.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제발 기다려줘.'
마스크 사이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며 오열했다. 그 애를 부르고 또 불렀다.
18살 죽으러 바다에 갔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살려고 다시 살려고 앞으로 살기만 하려고 바다에 간 거였다. 영원히 살기 위해 생명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갈 곳은 바다 하나였다.
라라라라라라
너의 손을 꼭 잡고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라라라라라라
사라지지마
흐려지지마
영원히 영원히
여기 있어 줘
-자우림, 영원히 영원히 중
p.s. 이 글만큼은 그 아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제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이상하게 행복하고 평온한데도 아침부터 눈물이 났어요. 성시경의 태양계와 박봄의 You and I를 듣고 눈물을 쏟았어요. 이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명상 일지는 준비가 되면 올릴게요. 싱겁게도 이 글은 명상일지의 클라이맥스네요 :) 현충일 잘 보내세요.
2022년 6월 6일, by Stella
그 때는 찾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이
이렇게 아린 글을 쓰고 있네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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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보이지 않는 것 아주 많이 기다려야 할 것들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어요.
raah님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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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하고 보팅하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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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goonyoung님 : )!
응원 받고 두 배로 보내드릴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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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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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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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Please check my new project, STEEM.NFT.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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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쓰리네요...
태양계도 You and I 도 아닌 다른 곡을 듣고 있는데 흐음... 그냥 쓰려요.. 그 아인 잘 갔을거에요. 잘 가고 싶었을거고요. 그리고 행복을 빌어주었겠죠.
... 세상은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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헿 ... 이건 기쁨의 글인데 슬픔이 묻어나왔군요.
그 아이는 여기 지금 저와 함께 춤추고 있답니다. 그저 제가 몰랐을 뿐이죠 ^_^ 그렇지만 아이가 감사하데요. 그 아인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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