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생각의 틀로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날 산책을 하면서는 불현듯 내가 엄마 아빠를 용서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엄마 아빠가 나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낯익은 주제는 학창 시절과 20대 초반 시절 나를 지배했다.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고, 이전의 세계로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 주제는 대인관계부터 자아에 대한 이미지에 폭 넓게 영향을 미치고 나를 짓누르고 억눌렀다. 참으로 오래 내게 깊고 진한 그림자를 남긴 엄마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그들을 이해하게 되어도 반대로 날 이해해주지 않는 그들에게 억울함을 느꼈고,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도 개운하게 그 문제에서 해방되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상처에 흉터가 남은 듯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표면적 사건과 도덕적 기준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누가 맞고 틀리냐’는 사건의 본질이 아니었다. 모든 경험은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고, 내가 허용하고 끌어들이고 창조한 일이었다. 한 걸음 뒤로 가 이 사건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되짚어 진짜 본질을 생각해보면 모든 게 과거 내 생각과는 반대였다.
엄마 아빠가 날 상처 입힌 게 아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 엄마 아빠 둘의 관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내게 혐오스러운 감각을 선사했기 때문에 엄마 아빠의 관계를 내 입맛에 맞게 통제하고 바로잡으려고 했다. 그게 실패했기 때문에 상처로 남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그들의 관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었는데 거기 끼어들어서 내 맘대로 통제하려 했다. 나는 아무런 자격도 그럴 만한 권리도 없었는데 단지 속상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앞길을 막고 울면서 내 선택을 강요했다. 엄마 아빠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였고, 어리석고 무지해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도 나였다.
선입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한 집단에 대해 특별한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다. 사람마다 개인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 내게 모든 관계란 개별적인 영역의 각기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겪어 보기 전까지 평판이나 다른 이의 의견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대신 개별적인 선입견을 지닌다. 왜 누군가를 만나면 첫인상으로 그를 단숨에 판단해버리는 걸까? 첫 인상,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말할 때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로 나는 순식간에 친해져도 될 사람, 안전한 사람, 피해야 할 사람,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자동적으로 분류해버렸고, 그 분류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이후 관계의 향방을 정해버렸다.
그가 딱히 내게 해를 주거나 불편을 끼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들을 경계하고 미워하나? 나는 감각을 느끼는 게 빠른 사람이다. 그동안 직관이라고 생각했던 건 사실은 직감에 가까웠다. 직관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난 직감이 빠르고 꽤 정확한 사람이다.
이유는 도통 모르겠지만, 나는 생존에 엄청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그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 어림짐작으로 빠르게 판단하여 내 몸으로 알려주고 그것을 바로 느낀다. 왠지 기분이 좋고 편안하면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왠지 꺼림직하고 맥박이 불안해지면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잡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생존이란 물질적이기보다는 내면적이고 정신적 측면을 반영한다. 물질적인 생존 환경이 다소 불안하더라도 그다지 타격이 크지 않은 반면 신념이나 감정이 다치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 말이나 감정으로 상처를 주지 않을 만한 사람, 나와 원만히 의사소통하며 잘 지낼 수 있는 사람, 나를 오해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만한 사람을 구분하는 데이터가 내겐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한 마디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관계를 맺는 메커니즘으로 자리잡아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내내 깨달은 바도 많고 여전히 아리송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들도 많아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꽤나 평온하고 침착했고 답이 나오지 않고 흐릿한 상태에서도 조급하지 않았다.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서는 구분과 편견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차이를 알고 구분하는 건 나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부여해서 내게 좋고 나쁨을 따지는 편견이 무엇을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의 경계가 미묘하며 누군가는 그 둘이 결국 필연성을 지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주관적인 가정과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둘은 명확히 다르며 편견 없이 그저 무언가를 구분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차이를 아예 없애 버리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중도의 지혜를 쌓고 싶다. 그것 역시 중간의 반으로 딱 나누어지는 간편한 길은 아니다. 어떠한 틀도 보호장구도 없이 자연의 흐름, 균형 있는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사물을, 실체를,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2022년 5월 17일 화요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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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스텔라님 초월해버렷 >_< ㅋㅋㅋ
한 글 한 글이 다 주옥같아요... 어느새 마지막 회차가 다가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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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봐도 이때는 살면서 가장 정신이 명료했던 것 같아요. 하하
초월하고 싶....(언젠간 말이죠 : ) 다른 건 몰라도 카모님이 읽어주실거야란 믿음으로 뿌듯하게 올리고 있어요.
감사드려요. 아직 꽤 남아있어요. 끝나지 않은 명상수행일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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