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피는 힘──────────────
함께 사는 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태생적으로 마르고 근육이 없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 바로 우리 엄마 이야기다. 지금의 엄마는 폐기능이 일반인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숨이 가쁜 등산이나 과한 운동은 하실 수가 없고, 운동 자체가 불편하다 보니 소화 기관이 죄다 약해져 있다.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야한다'는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작은 물통을 들고 팔 운동을 하다가 근육에 무리가 오시고는 몇 달 동안 침을 맞으러 다니시기도 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으시고는 3개월 동안 식도와 폐 부위에 열감이 떨어지지 않아 또 몇 달을 고생하셨다.
2021년의 마지막 주 월요일.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었지만 오늘 하루 집중에서 업무를 잘 끝내고 저녁 먹고 쉴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힘차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딸랑구 왔나 ~ 오늘 엄청 추웠제? 엄마는 오늘 추워서 꼼짝도 안했다."
거실로 들어가니 이불을 둘둘 말아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했지만 오늘 하루 더 안 움직이고 경직되었을 엄마의 몸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꿈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이 살아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고, 작은 노력들이 모인다면 언젠가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더 심각한 질환이 없음을 감사히 여기고자 한다.
각자의 호흡으로 함께 운동하기
언젠가 가정을 꾸리게 될 때 나의 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서로의 '배움'과 '건강'을 응원하는 관계. 배움은 각자의 꿈에 연결되어 있을 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이 찬란해야 할 테니, 건강을 위하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관계라면 그것만큼 본질적인 축복이 있을까 싶다.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의 형태다. 미래의 자녀에게도 배울 수 있는 능력(언어 능력, 독서 능력, 집중력 등)과 건강할 수 있는 능력(기초 체력 만들기, 자기에게 필요한 운동 찾아서 하기 등)을 가장 먼저 체득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결혼은 연습하기가 곤란하니 이미 존재하는 가족에게 사랑을 마음껏 표현해보기로 했다.
요즘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와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혼자 바닷가와 숲을 돌며 가장 빠른 걸음으로 운동할 때 빼고는 엄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을 함께 한다. 필라테스와 요가. 엄마는 엄마가 가능한 만큼, 나는 내가 가능한 만큼 무리하지 않으며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식사가 무리가 되어 위가 좋지 않을 때에는 소화에 좋은 요가, 예민해져 잠을 푹 못 주무시는 날이 있으면 숙면에 좋은 요가를 함께 한다. 귀찮아하실 줄 알았지만 내가 운동 시간을 마련하면 잘 따라와 주셔서 참 감사하다.
가치관 갈등으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게 10년이 넘었었다. 20대 마지막 모험을 기점으로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높고 두꺼운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딸이 곁에서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하고, 장난치고 하는 게 엄마의 행복이야. 아빠가 언젠가 전화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요즘 딸이 엄마랑 잘 지내고 여행도 함께 해서 아빠는 너무 행복해. 내가 삶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엄마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장 멀어졌던 시간에도 응원을 보내주셨던 아빠는 지금 나와 엄마의 시간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신다.
내가 홀로 서려고 노력한 딱 그만큼 엄마를 이해하고 다가설 수 있었다. 뜻이 있다면 자기 길을 걸어 가보는 경험이 인생에서 풀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에 가족들을 동반하는 것. 커다란 대립과 거친 파도를 품더라도 가족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직접 맞서야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엄마의 건강을 함께 돌볼 여유와 의지가 생겼다. 세상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향할 수록 여분의 힘을 내어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더 견고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주위의 생명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힘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