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 지나간 줄 알았던 2월 달에 눈이 왔다. 인터넷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지구 온난화를 외쳤고 나 역시 체감되지 않는 재해에 그동안 그 심각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이라 올해에는 눈이 다섯 차례 내외밖에 오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이대로라면 겨울이 정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챙겨 방학 동안 게을러진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섰다.
아파트 주위와 동네를 잠시 돌아다닌 뒤 가까이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눈을 이고 있는 나무와 바닥에 깔린 하얀 카펫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주변 풍경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산 중턱에 다다랐다. 산 중턱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주변에 대충 걸터앉은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뒤에 더 올라갈지 말지 고민을 했다. 눈도 슬슬 그치는 것 같았고 산 정상에 올라가더라도 새로운 장면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서 충분히 찍었다. 그렇게 내려가자고 단념한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가도 새로운 건 볼 수 없을 거라고?
난 항상 그렇게 살아왔다. 그날의 등산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든, 그림에서든, 학업에서든, 글쓰기에서든, 내가 관심을 가졌던 모든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아니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꿈에 좌절감을 느꼈던 것이 아니다. 두려움, 좌절감이라는 핑계로 더 편하고 게으르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얻어온 것들이 반드시 결과를 갈구하여 만들어 낸 것들만은 아니었다. 눈이 쌓이길 의도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꾸준히 내리다 보니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낸 눈처럼, 내게 남은 것들도 그러했다.
그렇게 정상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는 올라오기 잘했다고 느껴졌다. 이것은 비단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봐서도, 정자 처마에 맺힌 고드름을 봐서도, 눈을 쏟아붓는 구름들 틈 사이 푸르른 하늘을 봐서도 아니었다. 그저 올라왔다는 사실에, 그 자체로 좋았다. 산 정상에서 새로운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날은 분명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등산도 한번 가고싶은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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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마음 놓고 나갈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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