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in hive-196917 •  4 years ago  (edited)

월요일

올해도 브런치 북은 끝이 났다.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비교적 연말에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중 브런치 북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다. 몇 주 안 되는 시간 동안 부랴부랴 썼던 글이 당연히 질이 좋을 리 만무했고 지당한 결과임에도 몇 주 간의 고생을 편하게 보내 주기에는 내가 아직 쿨하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어떠한 욕구 자체가 소실된 상태라 오랜만에 찾아온 이런 감정 자체가 너무 반갑고 애틋하고 여튼간에 오래 묵혀 두고 싶다.

5년 전 중국을 가기 전에 중국어 과외를 받았는데 과외형이 추천해준 어플이 브런치였다. 당시 모델 일과 디자인일을 병행하고 있었고 sns도 활발히 하고 있을 때라 작가 승인은 비교적 쉽게 받았다. 브런치도 신규 모델이었고 질보다는 우선 양적으로 충족이 되어야 하는 시기(개인적 생각)라 등용문은 지금보다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여러 번 올라갔다. 뭐든 진득하게 못하는 고질적인 성향 때문에 금방 권태는 찾아왔고 5년 동안 브런치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수는 100일도 되지 않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 사실상 나에게는 어떠한 자격도 없는 게 맞다. 지성은 드리지 않으면서 감천하길 바라니 이런 언어도단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당선되신 작가님들의 원고를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다. 좋고 나쁨은 오로지 나에게 있듯 고무적으로 읽히는 글도 있는가 하면 읽기 힘들었던 글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하게 시장은 존재하고 업체 입장에서는 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선택된 이유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정말 잘 쓴 글이다. 이제 잘 쓴 글들에게는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취향을 다 떠나서 보더라도 명백하게 하나 통일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정말이지 배일듯하고 예리한 컨셉(컨텐츠) 더 크게는 기획

앞으로 세상에 필요한 물음들이라 던지, 지금 현시대에 필요한 방법론적 힐링이라던지, 다방면으로 앓고 있는 현대인에 마음의 병을 있는 그대로 노출 시긴 글이라던지, 모두 다 필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가 지닌 전문성까지 더 한 브런치 북을 누가 기꺼이 사서 보지 않겠는가. 당장 나 같아도 사서 보고 싶은 글들이 많았는데. 나에게는 흉내 조차 내지 못 하는 글들이다.

우선 방향은 정해졌다. 그렇담 이제 나에게로 돌아와서 나를 객관화해볼 차례다. 내가 가진 스펙(강점)은 무엇이고 나만이 낼 수 있는 율동(필력?)은 무엇일까? 그것들을 양껏 문질러 인고의 망치질 끝에 배일 듯한 명검을 만드는 일이 나에게 가당한가? 이건 지성의 문제다. 그리고 출판사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장치들을 내가 준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나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황금알을 낳아 줄 수 있는 거위라고 증명까지... 방향은 일방통행이지만 생각의 사유는 까마득하게 멀다. 이후에는 감천의 문제이니 내 손을 벗어난 건 고민하지 말자.

사실 지금 당장 뾰족한 기획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떠오를 수도 있지만 영영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항상 그랬듯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카테고리를 생각하며 글을 쌓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필요한 말의 타협점을 생각해 보고 나의 경험을 빗대어 일정한 무드로 이어간다. 그렇게 차근차근 쌓다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뭉쳐 있는 덩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다. 일련의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작은 모래알들이 쌓여 경이로운 사구를 만들어 내듯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이 글은 곧 지워질 글)

[이동진 브런치](https://brunch.co.kr/@ja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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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 진정한 작가님이 계셨군요.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