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명적 생채기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삶의 지속성을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다.
거시적 범주에서 팬데믹이 생성해 낸 해악들은 개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 들어 더욱 아픈 상처를 만든다. 이를 통해 우
리네 라이프스타일은 점차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공포, 슬픔, 공황 등이 나를 비롯한 우리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새롭게 규정되는 ‘뉴 노멀(New-Noraml)’의 시대가 도래했다. ‘집에서’라는 명제가 그 규범의 척도가 되었고, ‘집 밖’이라는 포괄적 행위는 현재 새로이 구축 중인 법제적, 관습적 제약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바깥에 나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비단 나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특히 ‘바깥’이라는 명사의 포괄적 범주 속에는 ‘여행’이라는 인간 공통의 버킷 리스트도 포함된다. 그간 우리는 너무 자유롭게 집 밖을 드나들었고, 국경 밖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그건 가장 금기시되는 어떤 행위가 되어 버렸다. 지금 필자는 하와이 출신의 서퍼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잭 존슨의 음악을 듣고 있다. 이걸 듣노라면 와이키키 해변의 출렁이는 파도가 눈에 밟힌다. 그만큼 내게는 여행을 상징하는 아티스트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업무가 끝나면 곧장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무한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니 ‘여행 가고 싶어 미치겠다’는 아쉬움의 토로가 절로 나올 법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작금의 팬데믹이 우여곡절 끝에 종식된다 하더라도 과연 그때 그렇게 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하와이 오아후섬의 찬란한 햇살을, 인도네시아 발리 꾸따 해변의 강렬한 파도를, 일본 도쿄의 분주한 캣스트리트를,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의 장엄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오긴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간의 자유로움이 일정 부분 삭제 혹은 감소된 상황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니, 그렇게라도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우려마저 든다.
근래 미국 방송사 CNN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다. 그들은 제일 먼저 ‘크루즈 여행의 감소’를 논했다. 사실 크루즈 여행은 꽤나 호화로운 여행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발하며 크루즈는 ‘배양 그릇’이라는 최악의 수식어를 받았다. 그래서 럭셔리 트래블의 대명사던 크루즈 여행의 가격은 내려가지만 그것을 찾는 여행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두 번째는 ‘호텔의 청결과 가격 하락’이다. 방역과 소독이라는 대명제가 상시 존재하게 됨으로써 그것을 지켜내는 공간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 이와 동시에 당분간 여행자 수가 현격히 감소할 것이므로 호텔 룸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 경제 서비스의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예측이다. 청결이 우선시 되는 환경이 조성되기에, 에어비앤비가 호텔만큼의 위생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항공 운임’에 관한 이야기다. CNN은 여행 수요가 곧장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비즈니스를 위한 여행이 우선시 될 것이기에 운임이 낮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매경 프리미엄』의 한 기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팬데믹 이후에도 정착되면서 되려 운임이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이코노미 좌석에서도 2m 거리 두기가 일반화되면 항공기 한 대에 수용할 수 있는 승객이 현저히 줄어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항공료는 훨씬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필자의 경우는 후자가 더 무게감 있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CNN이 꼽은 다섯 번째 예측은 ‘항공업계가 비즈니스 수요로 인해 회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업무가 온라인 화상 회의로 대체될 수 없고, 반드시 대면을 통해 성사될 일이 있기에 비즈니스 출장은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이번 코로나19의 발발과 맞물려 발생했던 예약 취소 및 환불 등에 대한 규제가 오히려 완화될 것이라고도 한다.
사실 CNN이 내놓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예측은 항목은 많지만 대부분 호텔과 항공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여행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어 미지의 어딘가로 날아가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도래와 함께 많은 뉴스에서 접할 수 있듯 현재 항공 산업은 존폐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필자는 비행기에서 항공사가 승객을 위해 제작하여 비치해 둔 매거진 보기를 꽤나 좋아한다. 그 역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경을 넘나드는 해외 여행이 금지되다시피 하면서 그걸 읽을 승객이 전무해진 상황이 되었다. 매거진 제작을 업으로 하는 필자의 동료들이 그 책을 만들었다.
대한항공의 경우는 올 연말까지 『모닝캄』이라는 기내 매거진 제작을 중단한다고 했다. 별책처럼 함께 비치되던 기내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비욘드』는 심지어 폐간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 잡지는 외주 제작사를 통해 만드는데, 그곳의 편집장은 “비행편이 없어 잡지에 수록되는 광고 수가 거의 없다. 제작 손익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이는 비단 국내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교부의 4월28일자 업데이트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입국 절차 강화 국가는 총 183개국이라고 한다. 또 비자라 불리는 사증 면제 협정 잠정 정지 국가는 56개국에 달한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183이라는 수보다 56이라는 수가 더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꽤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해 왔다. 무비자 협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들에 입국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꽤나 까다로웠던 미국만 하더라도 ‘이스타(ESTA)’라는 간소화된 협정으로 온라인상에서 신청만 하면 쉽게 입국할 수 있었다. 매거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필자 역시 연 수차례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느끼는 편리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유럽을 가도 그랬고, 아시아 지역을 가도 그랬다. 굳이 비자가 필요하더라도 현지에서 입국료를 내면 사증을 찍어 주는 동남아시아 국가도 있다. 그러니 여권 하나로 큰 제약 없이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오갈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56’이라는 숫자는 이런 ‘간편 입국 절차의 강화’를 의미한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분명 여행의 기회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강화된 절차는 해외 여행을 죽도록 가고 싶어하는 많은 개인의 발목을 잡게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교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우리 정부의 사증 면제 협정 잠정 정지에 따라 4.13 이후 관광 등 단기 체류 목적으로 해당국 방문을 희망하는 우리 국민은 향후 해당국이 입국 금지를 해제하여 입국이 가능하더라도 협정이 재개될 때까지는 출국 전 반드시 해당국 사증를 취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말은 질병의 유행이 종식된다 할지라도 국가 간 협정이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는 가고자 하는 국가에 쉽게 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여행의 기회는 단시일 내에 완전히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광화문 소재의 미국 대사관에 들러 인터뷰를 하고, 여행자의 재정 상태까지 확인한 후 여권에 비자를 붙여 주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약 20년 전의 기억이지만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이었다. 당시 필자는 기자 초년생이었다. 미국 출장 때문에 비자를 취득해야만 했고, 그걸 위해 인터뷰에 응했다. 내 통장에는 남은 돈이 별로 없었고, 가족의 보증까지도 필요했다. 꽤 까다롭다고 생각했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10년 유효 기간의 비자를 여권에 부착해 준다. 그 이후로부터 얼마 전까지 우리는 온라인 사전 신청을 통해 25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이스타라는 2년 유효의 전자 비자를 쉽게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여행은 굉장히 풍요로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국가가 전자 비자 또는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면서 한국의 해외 여행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은 가고 싶어 죽겠는데, 언제 가게 될지 오리무중이다. 또 제한이 풀린다고 할지라도 쉽게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들이 여전히 남은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전쟁과 기근은 인류를 지탱하는 모든 규범과 관습을 새롭게 재편해 온 대표적 원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대부분 이 두 단어와 거리가 멀다. 아니, 역으로 풍요의 시대를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우리는 전쟁보다 무섭고 기근보다 두려운 새로운 공포와 마주했다. 인류는 수많은 질병과의 전투에서 결국 승리해 왔다. 동시에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인류가 마주한 코로나19는 다스려지지 않는, 날뛰는 종마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처럼 활개를 치고 있다. 인류는 무릎을 꿇었다. 기존 시스템은 붕괴되었다. 애초부터 인간은 ‘접촉(Contact)’을 통해 문명을 구축해 왔다. 많은 일이 직접적 만남으로 인해 성사되었고, 소통을 통해 수많은 체제가 구축되었다. 여행 역시 인류의 문명과 사유를 확장시킨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동시에 여행은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행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도래한 팬데믹은 다시금 많은 관계를 무너트리고 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여행 기회의 박탈 역시 관계 붕괴의 단면이기도 하다.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말자. 그 욕망에 괜히 돌을 던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여행으로 국내 여행 산업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코로나19가 재점화되기 전 한적한 충청북도 단양으로 당일 드라이브를 감행해 봤다. 최대한 거리 두기를 실천했고, 가급적 한산한 곳만을 찾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