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Calendarium
Roman consul Agrippa Menenius Lanatus celebrated a triumph for a military victory over the Sabines.
로마 집정관이 아그리파 메네니우스 라나투스가 사빈족들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다.
아그리파 메네니우스 라나투스의 그림
원래 아우구스투스의 절친이었던 그 아그리파인지 알았습니다. 근데 그 아그리파는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이고 이 사람은 그 한참전에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사람이었네요 아그리파에 대한 정리를 어떻게 할까 골머리 아프다가 이 아그리파인것으로 알고 정리할게 없겠다 싶었는데….. 이 사람은 사빈족에 대한 승리 말고는 기록이 없습니다. ㅠㅠ 그래도 영문위키디피아에는 어느정도 내용이 있어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사빈의 위치와 풍경
1. 생애
기원전 503년이면 있던 기록도 다 없어질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한 기록도 딱히 있지는 않습니다. 우선은 이 사람의 출신에 대한 의문이 존재 합니다. 그 출신이 귀족인지 평민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아그리파에 대해 기록한 리비는 그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며, 그들 자신이 타고난 것으로 평민들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원로원 대표로 평의원들에게 파견된 적이 있고 또 집정관직을 맡았습니다. 이때가 아직은 초기 로마 시대라 이러한 행보는 어디까지나 엄격하게 귀족들을 위해 제한되어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고대로마 시대는 역사가들이 편향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확실하다고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귀족의 코스를 탔지만 출생에 대한 기록들이 거의 없어 명확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집정관으로써
이 당시 로마는 평민과 귀족계급 사이에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리비에 다르면 메네니우스는 평민에대한 차별을 없앴다고 합니다. 이에대한 우화가 있다고 합니다. 메네니우스는 로마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 신체 구조가 있는데 위가 아무런 역할을 안한다고 생각한 여러 신체구조들이 위에 영양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럼 위에 영양이 없으니 곧 다른기관에 악영향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위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이론 우화들로 인해 평민들에 대한 차별을 끝을 내었다고 하는데…. 현대 역사가들은 과연 귀족계급과 평민들의 차별이 과연 사실일까??에 대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먼 평민 계급과 귀족 계급들의 단합이 너무나 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3. 사망
메네니우스는 493년에 세상을 뜹니다. 특히 귀족과 평민들의 모두에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재산이 장례식을 치를만큼 많지 않아서 장례식 비용을 평민들이 일부 부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티투스가 기원전 477년에 집정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