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의 세계사] 661년 1월 28일

in hive-196917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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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661, The Rashidun Caliphate was effectively ended with the assassination of Ali, the last caliph.

661년 1월 28일, 라쉬둔 칼리파 – 정통 칼리파 시대 – 가 마지막 칼리파였던 알리의 암살로 실질적으로 끝났다.

오늘은 간만에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서는 정통 칼리파 시대라고 배운 라쉬둔 칼리파 시대 – 아랍어 발음 그대로라고 합니다. 뜻은 정통 칼리파 - 얘기입니다. 무하마드 사후 무하마드를 계승한 4명의 정통 칼리파 – 아부 바르크, 우마르, 우스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가 다스린 이슬람 제국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에 이슬람 세력은 크게 강화되어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이란 고원에서 북아프리카까지 넓은 영역을 관할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4대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암살당하게 되면서 정통 칼리파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후 무아위야 12세가 칼리파가 되어 세습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의 시대가 열리게 되죠 오늘은 정통 칼리파 시대 마지막인 제4대 칼리파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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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초상화

1. 무하마드와의 긴말한 관계

조실부모한 예언자 무하마드를 입양해 키운 무하므다의 삼촌 아부 탈리브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어질어부터 사촌 형인 무하마드와 형제처럼 어울리고 성장했습니다. 무하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 교를 창시할 때, 무하마드의 첫 번재 아내 카디자에 이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첫번째 남자 이슬람교도가 되었습니다. 무하마드와는 굉장히 긴밀한 사이였는데,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망가던 헤지라시기 무하마드의 미끼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당시 메카의 군사적인 압박도 거의 혼자 견뎌내다시피한 인물이 바로 알리입니다. 무하마드도 다음과 같은 말로 알리와 친밀한 사이를 드러냈죠.

“여러분 중 나를 수호자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알리를 당신의 수호자로 여겨야 한다.”

2. 무하마드 사후

하지만 이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음에도 무하마드의 후계자에서 밀려납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알리가 무하마드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동안 후계자를 정하는 회의가 기습적으로 열려 전격적으로 아부 바르크가 후계자로 결정되었다는 설 그리고 알리와 무하마드와의 친밀한 관계가 오히려 특권층의 권력 상속처럼 보인다는 점 또한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 지도자를 뜻하는 “셰이크’라는 단어가 ‘나이 든 남자’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게 일반적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알리를 지지하는 세력과 아부바르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겠죠?? 전자가 수니파 후자가 시아파의 시초가 되었는데 두 파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죠.

3. 아부바르크에 대한 승복과 우마르에 대한 지지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무하마드 사후 아라비아반도 곳곳헤서 무하마드의 후계자를 지칭하는 사람들이 여러 나타나서 각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 이러한 소요사태를 정리부터 하기로 합니다. 이를 릿다전쟁이라고 합니다. 여튼 이렇게 해서 사이비들을 정리하는 와중에 나이가 많았던 아부바르크가 중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후 혹시 모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우마르를 후계자로 지목하는데 여기에 알리가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이러한 알리에 대한 여러 역사가들의 해석이 있지만 알리 스스로가 이슬람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이 칼리파 자리에 올랐을때의 혼란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란 의견이 많이 우세합니다. 실제로 두 파가 힘을 합친지도 얼마되지 않았을 시점이었고, 우마르와 마찬가지로 알리도 세습화에 대해 경계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로마가 사사건건 간섭하고 있을 시기였죠. 다행히도 우마르는 훌륭한 칼리파로써 이슬람 세력을 잘 이끌어 나갑니다.

4. 우스만의 시대

하지만 우마르가 암살당한 직후 차기계승자가 우마르가 창설한 슈라 위원들에의해 선출이 되게 되는데 이슬람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알리는 그만 우스만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우스만은 재정 문제를 합리화 하고 이슬람 세력을 축재를 막는 조항들을 폐지해 버림으로써 제국의 부는 증가했을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세금 부담이 서민들에게 지워졌습니다. 또한 자신의 가문인 우마이야 친족들에게만 특권을 부여하고 있었죠. 계속된 세금부담에 대한 문제로 인해 우스만이 암살당하게 되고 이제 알리가 칼리파에 등극하게 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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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의 칼리파 등극

5. 이슬람의 분열과 내전 그리고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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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내전도

1) 쿠라이시 가문의 알리 반대 운동

알리가 칼리파에 등극했지만 여러 반대세력들의 반란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선은 우스만 시대때 각종 우대를 받던 쿠라이시 부족의 세력이었습니다. 당연히 각종 우대혜택을 내려놓기 싫어서 였죠. 메디나를 장악하고 있던 쿠라이시 부족이기 때문에 알리는 이러한 난국을 타계할 어떠한 행동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알리는 이러한 난국을 타계하고자 수도를 메디나에서 쿠파로 천도하여 개혁을 진행하고자 했지만 여기서도 기득권들은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쿠라이시 부족을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죠.

2) 아이샤와의 갈등

알리는 우스만이 임명한 부패한 총독들을 모두 해임했지만 예맨 총독을 제외한 모든 총독들이 반발하면서 이슬람의 내전 즉 제1차 피트나가 시작됩니다. 예맨 총독도 순순히 물러는 났지만 모든 재산을 빼돌렸으며 무하마드의 아내 아이샤에게 접근하여 반란을 선동하고 반란 자금을 지원해줌으로써 아이샤는 전면적인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알리는 지하드를 선언하고 아이샤를 처단하고자 합니다. 아이샤도 지하드를 선언했으니 참 모양새가 빠지는 형태가 됩니다. 근데 군대를 마주친 두 사람은 싸움은 하지 않고 공적인 정신에 입각하여 협상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동이 이슬람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며, 우스만을 암살하고 이슬람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진짜 악인들이 도피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라는 합의를 도출해 상호간의 협력을 통하여 지금의 혼란을 해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단순히 두사람의 합의를 통해 이러한 분란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세력의 이해집산이 뒤섞여 있었으므로 각각의 세력들은 서로의 적을 향해 돌격해 버려서 낙타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합의를 조율하던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여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결국 알리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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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전투

3)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피얀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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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위야와의 전투 - 시핀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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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위야의 동전

어떻게 보면 알리의 운명을 가른 반란입니다. 시리야 총족이었던 무아위야는 우스만이 암살당한 그 시점부터 자신의 연지내에서 우스만이 암살당할 때 입은 피 묻은 옷과 이야기꾼들을 대동하고 우스만이 당한 억울함을 끊임없이 주장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군사력과 자금력을 강화하며 동시에 우마이야 친족 세력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알리에 대한 반대 운동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이때 알리가 낙타전투에서 승리하자마자 바로 자신을 칼리파라고 선언하면서 다시 내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전황은 알리에게 유리했는데 그만 협상을 잘못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무아위야가 시리아와 이집트를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알리는 그 나머지를 보유하게 되었죠. 여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이탈하여 카와리지파가 되었으며 결국 이러한 카와리지파에 암살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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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의 암살장소 - 이라크 쿠파의 대사원

6. 이후

알리의 장남인 하산 이븐 알리가 아버지를 뒤이어 5대 정통 칼리파에 취임하지만 무아위야 1세가 거액의 보수를 제시하며 하야를 권유했고, 이것을 이븐 알리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 이슬람은 세습 제국인 우마이야 왕조 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알리의 추종자들은 시아파, 기존 권위를 따르는 사람이 수니파가 되면서 결정적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리의 후손들은 대다수 이슬람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 굉장히 많게 됩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도 나옵니다. 무하마드와 함께 사기 지옥에서 생전에 분열을 조장했던 자들이 받는 형벌인 악마들에게 썰리고 재생하기를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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