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뽑은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뽑혔다. 이로움이 보이자 의로움을 잊었다는 뜻이다. 그다음으로 뽑은 사자성어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그다음은 남우충수(濫竽充數)다. 적반하장은 따로 뜻풀이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남우충수는 피리를 못 부는 사람이 함부로 악사들에 끼어들어 수를 채운다는 뜻이다.
첫 번째 사자성어야 사회 전체와 여야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적반하장과 남우충수가 누굴 지목하는지는 명백하다. 윤석열 정부의 내로남불, 남의 탓, 무능을 지적한 것이다. 원래 대통령이라는 게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 인기가 급락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집권 2년 차에 벌써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가 요동치는 상황에 지도력과 통제력을 잃은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는 독(毒)이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야당의 내홍과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여러 가지 삽질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대통령의 인기가 더 없다. 아마 윤석열 정부는 내년 내내, 어쩌면 임기 말까지 계속 레임덕에 시달릴 것이다.
그 이유는 윤석열이 정치적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여의도와 내각에서 구르며 경험과 인맥을 쌓은 이전 정치인과 달리, 윤석열은 아무 준비 없이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 하나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따라서 기존 정치권과의 접점도 부족하고, 가용할 수 있는 인재도 제한적이다. 정치 지형도 완전히 여소야대다. 태생적으로 취약한 것이 이번 정권의 운명이다.
태생이 취약하다고 허약한 정권이 되라는 법은 없다.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필요한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 알아주는 국민은 반드시 있다. 인기를 못 얻더라도 반드시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이번 정부가 2년간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자잘하게 좌충우돌한 기억밖에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동산과 외교에서 보인 난맥상이다.
한국의 현안을 가장 명확하게 바라보는 씽크탱크가 한국은행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초, 한국의 근본 문제에 대해 재정-통화정책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사회적 타협에 의한 구조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공급자 중심으로 짜인 한국 경제를 개혁하는 것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정말로 시의적절하고 통찰력 있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정부가 한국의 구조개혁이나 공급자 중심(지대추구자 중심) 경제 개혁을 위해 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시도조차 하려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오히려 강력한 지대추구자 측에서 헌신하는 모습은 보였는데 그게 부동산 문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포함한 주거난의 해소'라고 밝혔다. 지금 집값이 정상이 아닌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상식적인 집값은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가장 인상적인 행동은 이런 집값이 내려가는 것을 사생결단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이번 정부의 결단력을 우디르급이다. 조합원들이 X신 짓 하다가 망할뻔한 둔촌주공아파트 분양을 위해 정부는 법과 시행령까지 바꿔주겠다고 약속했다. 시중에 유동성이 떨어질 듯 하면 여러 가지 기발한 대출상품을 개발해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누가 말했듯,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는 정부는 처음이다.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은 것이라는 걸 대부분 사람들은 안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는 이제야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올해 초부터 난리였다. 부실한 PF가 시장원리에 따라 정상화되는 것을 목숨 걸고 막고 있는 게 이번 정부다. PF에 엮인 모든 관계자들은 부동산 활황기에 이른바 돈잔치를 벌였다. 엄청난 성과급을 받으며 흥청거렸다. 이제 문제가 생기니 그 부담은 국민 모두가 나눠 내야 하는 처지다. 물론 PF가 부실해지면서 금융권으로 충격이 전달되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 것이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가망 없는 모든 PF의 워크아웃까지 모조리 막을 이유가 있나? 이는 건설사와 그 주변 압력단체의 이익에 완전히 복무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경기 위축을 조율하는 어려운 일을 하느니, 차라리 마약과 같은 유동성을 최소한 내년 총선 전까지는 공급하겠다는 지극히 자기이익에 충실한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좇은 것이다.
아픈 환자에게 근치적 치료가 아니라 진통제만 먹였으니 결국 환자의 몸은 더 악화할 것이 자명하다. 이미 부동산 경매물건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PF도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 총선 이후에 아마 뻥 하고 터질 것이다. 나는 내년과 내후년까지 부동산 시장의 버블붕괴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아마 일본 버블붕괴의 미니 버전일 것이다. 부동산만 붕괴되고 주식 및 다른 자산시장은 멀쩡할 리 없다. 내년은 IMF급 위기가 시작되는 해일 수도 있다. 그 붕괴가 내부에서 자연히 일어날지, 국외 충격에 의해서 일어날지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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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실책은 한국의 미래에 더욱 심각하다. 윤석열은 미국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한국의 대통령이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완전히 같지 않은 이상, 이는 한국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우리는 윤석열을 미합중국 한국주(州)의 주지사로 뽑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국익을 철저히 관철하지 못한 것, 분열되는 세상에서 미국의 편을 더 확실하게 든 것은 그렇다고 치자. 윤석열의 가장 심각한 실책은 국가 핵(核) 안보 자주권을 너무나 쉽게, 아무것도 받지 않고 포기했다는 점이다.
북한 핵의 억지력은 우리의 핵 외에는 없다. 이를 명제를 부인하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인간이다. 다만 우리가 핵을 가질 때 치러야 할 대가를 저울질할 뿐이다. 내 생각에 이 시점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안 하는 것은 대단히 안이한 생각이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우리의 핵무장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가 올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조용히 제반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면 된다.
윤석열은 이런 모든 움직임을 원천 봉쇄했다. 미국이 확장 억제를 고도화하여 "사실상의 핵 공유(?)"를 해주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을 믿고 말이다. 이런 우리측 발표가 나오자마자 미국은 핵 공유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했다. 우리가 받은 것은 핵잠수함 입항 쇼뿐이다. 위치가 절대 비밀이어야 하는 핵잠수함을 대놓고 항구에 입항시키는 것이 대북 억지력이 될 리 없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보여주는 쇼일 뿐이다. 이런 요구를 받은 미국도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윤석열은 너무나 가벼운 언사로 중국, 러시아와 불필요한 외교 갈등을 일으켰고, 외교 원칙을 망각하고 미국에 굽신거리고 있고, 쓸데없이 외국으로 나돌고 있다. 우리가 미, 중, 러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는 못하더라도, 사활적 국익 문제에 관하여 최소한의 침묵만 지켰어도 얻을 것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내년에는 윤석열의 이런 대(對)미 정책이 큰 반발을 일으킬 일이 일어난다. 이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의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한반도 정책을 보면 한국인은 그제서야 뭘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내년은 외교적 각성의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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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할까 말까 망설였다. 영부인 김건희 문제다. 한국인 모두는 특정인, 특히 여성을 악마화하는 정치 공작에 놀아난 적 있다. 따라서 개인의 신상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건희 모친, 대통령의 장모가 사기죄로 유죄를 받아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그럴 수 있다. 모친의 죄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연좌제다.
김건희 일가 땅 쪽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이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나는 이게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양평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도 양평 시민이 어떤 노선을 선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해외 순방에서 명품샵에 들렀다는 게 뉴스에 나왔다. 뭐 일반 시민도 갈 수 있는 걸 영부인이 했다고 욕하는 것은 좀 좀스럽다. 별 트집을 다 잡는다고 생각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뉴진스를 흉내 낸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왔다고 빈축을 샀다. 남의 헤어스타일 가지고 난리인가 싶다.
이렇듯 김건희는 윤석열의 아킬레스건 취급을 받았다. 주가조작부터 장모 문제까지, 이번 영부인은 정치적으로 쟁점화하기 좋은 소재였다. 대통령이 영부인에게 조종당한다는 프레임은 비열하지만 폭발력 있는 소재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 정치 쟁점을 삼는 것은 네거티브 정치 전략 중 제일 저열한 것이다. 명백한 이유 없이 이런 공격을 하는 쪽이 오히려 정치적 피로를 일으켜 욕을 먹기 십상이다.
단, 영부인이 자택에서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뇌물로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작정하고 함정을 판 것일지라도, 영부인이 공관에서 수백 만원 짜리 선물을 받는 건 선을 넘었다. 대통령 영부인은 공무원이 아니며,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 없이 받은 선물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법적 구성요건을 따져 빠져나가기에 이 사안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
문제는 또 있다. 선물의 이유는 '당선 축하'였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에 대한 '제삼자 뇌물공여'가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었던 그 죄목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최순실이 법인 형태로 누린 특권을 당시 특검은 대통령에게 이익이 돌아간 '제삼자 뇌물공여'로 판단했다. 지금 이 사안과 다른가?
김건희가 이번 일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충동을 조절 못하고 조심성도 없는 불안정하고 어리석은 여자라는 판단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남편이자 대통령을 이런 여자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에 걸리게 했다. 그냥 무능력한 대통령과 마누라에 휘둘리는 무능력한 대통령은 다르다. 국민이 느끼는 혐오감의 강도가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 할 일은 한 가지다. 국민은 영부인을 선거로 뽑지 않았다. 마누라 관리를 잘해야 한다.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에 이혼하는 방법도 있다. 어리석은 영부인은 대통령을 늪에 빠뜨린다. 늪에 빠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보수도 늪에 같이 빠져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내년 한국은 부동산발(發) 경제위기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당선은 지금 정권의 안보와 외교정책에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올 것이다. 총선은 여소야대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고, 이건희 문제, 기타 문제로 윤석열 정권의 레임덕은 더 심해질 것이다.
위 글과 다른 글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