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관료제 ; 루트비히 폰 미제스

in hive-196917 •  4 years ago  (edited)



관료제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당신은 너무 관료적이다'라고 말해도 해당 관료는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런 편견은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관료제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우선 관료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관료제란 문서화된 법이 부여한 권한을 바탕으로, 계층화된 위계질서하에서, 관할권에 따라 세분된 업무를, 인맥 아닌 규칙과 절차를 따라 수행하는 방식이다. 관료제는 정부조직의 다른 말이 아니라 조직을 운영하는 체제이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정부와 사회 분위기에 의해 강요되는 상황이 강조되고 있다.

관료(Bureaucrat)는 중세 유럽에서 왕의 궁정에서 복무하던 하위귀족으로, 왕권의 강화되고 지방 귀족이 몰락하던 유럽 절대왕권기에 중앙정부의 업무뿐 아니라 지방 관리까지 떠 맡아 영향력을 키웠던 신분에서 기원한다. 역사를 따지자면 근대를 만들었던 부르주아 못지않게 독립적이고 유구한 기원을 가진 집단이다.

왕이던 현대적 민주정권이던 중앙과 지방의 행정업무를 수행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자율권이 완전히 보장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지방 호족이 되거나 강대한 권력을 지닌 권신이 된다. 이를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행정업무를 세분화하고, 이를 수행하는 세세한 규칙을 만들어 독립적인 권한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근대 이후 지속해서 이루어졌고 광범위한 업무를 서투르게 처리하던 왕의 신하는 분업화되고 체계화된 관료집단으로 바뀌었다.

 

 

이 관료제에 대해 사상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두 경제학 그룹이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사회주의 옹호론자)는 고도화한 관료제는 자본주의를 종결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넘어가는데 필수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경제 옹호의 최선봉에 서 있는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위 책의 저자)는 관료화의 확대가 시장의 이윤 동기를 질식시켜 전체주의 계획경제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즉 양극단의 경제학자들이 관료제에 관해 두 가지를 확고하게 동의한 것이다. 

  • 관료제는 시장원리를 위축시킨다.
  • 관료제의 확대와 고도화는 계획경제의 전 단계, 혹은 전제조건이다. 

계획경제가 민주주의와 양립을 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관료제의 확대에 비판적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관료제에 관한 미제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계획경제를 주장하는 어떤 진지한 이론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조차 없는 체제가 인간의 기본권과 양립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이를 믿는 건 망상일 뿐이다.

 

 

이런 면에서 미제스가 관료제의 폐해를 낱낱이 지적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제스는 관료제가 사악하거나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나 사회를 운영하는 데에는 관료제 외에 다른 수단을 쓸 수 없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 경찰관의 50%를 해고해 인건비를 줄인다면 국가가 제공하는 치안 서비스 제공 비용이 줄어서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가?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잠재적 치안 문제는 시장의 화폐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시장의 화폐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서비스가 존재한다. 국방과 치안 분야가 그렇다. 미제스가 비판하는 것은 관료제 자체가 아니라 관료제의 무분별한 확대를 불러오는 자기 강화적 사회 분위기이다. 직접 미제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많은 사람이 오늘날 해악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관료제 그 자체가 아니고 관료적 관리가 적용되는 영역의 팽창이다.p.87

 

  

관료제는 시장의 화폐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특정 공공 서비스 분야에 한정되어야 한다. 권력자의 의도, 유권자의 나태와 무지, 관료제 자체의 확대 관성, 이런 이유로 확대하는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이윤 동기를 파괴한다.

혹자는 사람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하지 못하게 하면 어떤 가치나 이타심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시도에는 단 두 가지 결과만 나왔을 뿐이다.

  • 강압과 처벌, 지속적인 선전, 등의 수단을 써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 뛰어난 인재는 권력기관에서의 권력을 추구한다.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관료제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당신은 너무 관료적이다'라고 말해도 해당 관료는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왜 그런가? 관료적인 일 처리 방식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이유는 무엇인가?

관료적 일 처리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불필요한 절차를 나에게 강요하여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 처리 방식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서류의 탑을 쌓고 자신의 필요성을 강요하는 관료들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일 처리 방식에서 의미 있는 개선이나 혁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관료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상적인 어느 사회에서나 관료는 그 나라의 평균적인 국민의 능력을 상회하기 마련이다. 관료제가 불필요하거나 해를 끼치는 분야에서 자꾸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절차를 강요하고, 서류화된 증거를 요구하고, 권한의 소지를 꼼꼼히 따지고, 비효율적이더라도 방식을 개선하는 것에 느리고,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관료제는 높은 법치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면 국가의 권력을 세분화하고 법과 규칙의 지배를 통해 자의적인 권력자의 힘의 행사를 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는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 미제스의 의견이 아니다.) 

관료제가 점점 확대되는 이유는 계획과 사회주의적 정책에 호의적인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런 확대의 최종적인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관료제식 계획과 사회주의적 정책에 특히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미제스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야 한다.

계획과 사회주의에 대한 이 모든 광적인 옹호의 밑바탕에는 다름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열등과 비효율에 관한 내심의 의식이 종종 존재한다. 자기가 경쟁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미친놈의 경쟁 체제'를 조롱한다.p.170...... 그는 영원히 다른 사람들에 의해 돌봐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진정한 사람이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p.175

 

  

미제스의 명언처럼, 관공서에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는 게 그 관공서가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관공서가 사람 하나하나의 생활과 중요한 문제들에 간섭한다고 있다는 뜻이다. 관료제는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행사를 조밀한 법적 근거와 절차로 구속하여 권력의 남용을 막는 장치로만 존재할 때 제 사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요약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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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가 참 불편하고 꺼려지는 체계인데 점점 더 강화되는 느낌이네요.

코로나 사태 이후, 안타깝지만 그게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미제스가 거론되니 갑자기 김재익이 떠오릅니다.

경험과 지식이 모자라 김재익이라는 분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찾아보고 깜짝 놀랐네요. 이렇게 혜안과 곧은 성품을 가진 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한국이 있었나 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김재익 평전을 주문해 읽어보려고 합니다. 읽은 다음에 글을 꼭 써 보겠습니다.

한국에 그런분이 있었던 것 행운이었죠. 복지국가 만드는게 꿈이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