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다. 그런데 당신이 빌린 돈의 이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치자. 당신은 이자를 얼마로 하겠는가? 0%로 하는 것이 당신에게 가장 이득이 된다. 당신이 더 뻔뻔하다면 이자를 마이너스로 할 수도 있겠다. 돈을 빌리면서 돈을 받는 것이다.
미국의 국가채무가 올해 1월 4일에 34조 달러를 돌파했다. 불과 110일 만에 1조 달러가 증가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국가채무가 증가하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연장하는 방법은 국채 발행량 한도를 늘리는 것이다. 이는 다중채무자가 제2 금융권에서 빚을 내서 제1금융권 빚을 갚는 것과 유사하다. 빚의 총량을 늘려 당장 상환이 부도가 나지는 않겠지만 늘어나는 이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 2023년 9월까지 미 재무부가 국채 이자로 지급한 돈(8,793억 달러)이 같은 기간 국방비 예산(7,759억 달러)에 지급한 돈을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2033년에 미 재무부는 1조 4,590억 달려를 국채 이자를 지불하는 데 써야 한다. 2조 달러가 훌쩍 넘을 것이라 추계하는 곳도 있다.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하듯, 이런 일은 지속될 수 없다.
자, 세계 최대 채무자가 미국 정부다. 미국 정부 점점 정부의 꼭두각시화 하는 연준을 통해 사실상 미국의 모든 금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원하는 기준금리는 얼마겠는가?
이게 인플레이션이 되살아나게 분명해 보여도 미국 연준이 더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는 이유다. 미국 정부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지금도 연방 수입의 14%를 국채 이자를 갚는데 쓰고 있다. 만약 부채 상환을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국채를 찍어내야 한다면 미국 국채 가격은 폭락할 것이다.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 국채 이율은 폭등한다. 미국이 갚아야 할 이자가 더 높아진다는 말이다. 이를 지급하기 위해 또 막대한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모든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는 시나리오다.
즉 연준과 미국 정부는 지금 선에서 기준금리를 유지하다 인플레이션이 기적적으로 완화되면 금리를 따라 내리고 싶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전처럼 0%까지...
반면, 미국 경제 사정은 복잡하다. 미국 고용은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2월 미국 CPI는 3.9% 상승했다. 예상치를 웃돌 뿐 아니라 명목상 내려가던 지표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초근원 물가지수(supercore) 예상치를 더 벗어나며 올랐다. 살짝 신호만 주면 금리를 내릴 준비를 하던 연준도 더는 금리 인하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됐다.
인플레이션은 미꾸라지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최악의 연준의장으로 역사에 기록된 아서 번즈가 바보라서 인플레이션을 몇 번이나 손아귀에서 놓친 게 아니다. 미꾸라지 같던 인플레이션은 폴 볼커가 정치적 위협이 아니라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 올린 이후에나 잡혔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유약한 아서 번즈, 총까지 차고 다니며 인플레이션을 잡은 무대뽀의 폴 볼커, 지금 연준의장인 제롬 파월은 누굴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인플레이션 기미가 뚜렷할 때도 "이건 일시적 현상"이라고 일갈하며 금리 인상을 피했던 인물이 제롬 파월이다. 사소한 기미만 있어도 시장의 기대대로 올해 금리를 인하하려고 벼르고 있는 게 제롬 파월이다. 이자는 돌아가신 아서 번즈의 환생과 같은 인물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쓸 의지도 능력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글을 쓰는 순간(2024, 03, 08) "멀지 않은 시점에 확신이 들면 긴축 완화 시작이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살짝 잡힌듯 보이는 물가는 연준이 미꾸라지를 잡았다고 선언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순간 솟아오를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이런 예측이 주는 신호는 분명하다. 미국 국채가격은 장기적으로 크게 떨어지고(금리가 오르고), 달러의 가치도 꽤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한번 시작한다. 물론 단기적 경제적 충격이 있다면 일시적으로 달러 가치는 폭등할 수도 있다. 그러니 미국이 막대한 부채를 탕감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채를 찍어내고, 돈을 푼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위 흐름은 바꿀 수 없다.
명목화폐의 대장인 달러가 이런 흐름이라면, 다른 나라의 명목화폐라고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즉, 전 세계적으로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 가속화할 인플레이션을 이겨낼 명목화폐가 있을까? 그런 명목화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다. 급격히 가치가 하락하는 달러보더 조금 덜 하락하는 화폐는 있을 수 있다. 그나마 재정이 건전하고, 경제규모가 크고, 비교적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의 화폐다. 그래도 도찐개찐이다.
인플레이션은 세금이다. 이건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 진실이다. 발권력을 기반으로 개인에게서 부를 압수하는 방법이 바로 통화 팽창을 통한 인플레이션이다. 지금 모든 나라의 정부가 하는 일이고, 앞으로 더 심해질 일이다. 통.화.팽.창. 당신이 부를 유지하려면 통화팽창을 무력화해야 한다. 즉, 당신 집 앞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이라는 악덕 세금 징수원을 쫓아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플레이션에 따라 가치가 우상향할 수 있는 자산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다. 그림, 부동산, 주식, 등이다. 그림은 그들만의 리그다. 현금화하기 힘들고 보관하기 어렵고,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부동산은 막대한 세금을 뜯기지만 경우에 따라서 재산을 잘 보존할 수도, 사용 가치도 있다. 한국 주식이 복마전인 건 다 아는 사실이고, 외국 주식도 원금을 손실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즉, 명목화폐로 평가되는 자산은 다 그에 따르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암호화폐와 금과 같은 귀금속이다.
금과 같은 귀금속, 암호화폐는 명목화폐로 평가된 게 아니다. 정확하게는 명목화폐와 비교된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여기에는 의미가 있다. 명목화폐의 발행 시스템과 그 결과에 좌지우지되는 다른 자산과 달리, 화폐적 성질로 독립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상품이라는 점이다.
즉, 명목화폐를 진정으로 헷지할 수 있는 자산은 암호화폐와 귀금속 뿐이다. 이제 명목화폐 전체를 헷지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비트코인이 1억에 근접하자 여기저기 들썩인다. 그러다 갑자기 8% 정도 하락하자 떡락무새가 비트코인이 망했다고 좋아한다. 장기간 비트코인에 투자하면서 느낀 사실은, 떡락무새는 정말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다. 아니면 어디선가 새롭게 공급된다. 하여간 소란스럽다.
이번 상승장에서, 언제든 심각한 가격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별개로, 비트코인 가격은 전인미답의 경지를 보게 될 것이다. 내 예상은 그렇다. 이는 달러를 포함한 모든 명목화폐의 타락 과정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아무도 섣불리 비트코인의 장기적 고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 2017~8년 단기 고점이 2, 700만 원, 2020년 단기 고점이 8,200만 원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단기 고점이 2억 아래는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볼 뿐이다.
그럼, 장기적으로 비트코인 가치가 안정화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반감기 전후로 5~10배씩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선에서 급격한 가치 상승은 없어지는 시기 말이다. 내 생각에 각국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지급 준비금으로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시기, 혹은 중앙은행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화폐가 완전히 시장화된 시기다. 이때 비트코인 한 개 가격은 강남 건물 하나의 가치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본다. 이게 언제쯤일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그 사이에 지정학적 혼돈과 파괴, 경제공황, 기타 기존 질서가 재편되면서 일어나는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혼돈은 낡은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산통이다. 최종적으로 다시 설 질서는 국제분업, 자유로운 인적-물적 자원의 교류, 견실한 화폐제도를 재건할 것이라 확신한다. 어떤 나라나 세력도 이를 외면하고 국제질서를 재편할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증기기관 시대로 돌아가서 현대의 산업 생산력을 유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시도하는 나라는 패권을 쟁취하기는 커녕 국제질서에서 도태된다.
이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은 낡은 시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나타나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위 글과 다른 글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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