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in hive-196917 •  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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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자본주의 외에 지금의 부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체제가 있는가?
  • 자본주의 외에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있는가?

슘페터는 이 책으로 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낭비와 비효율 없이 부와 혁신을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와도 양립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답이다.

단,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화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듯 자본주의 체제가 필연적인 내부결함에 의해 붕괴하면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큰 성공이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여러 보호장치를 파괴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자본주의 체제의 고도화는 기업가가 하는 업무를 관료들이 할 수 있는 단순 관리업무로 격하시키고,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집단의생활터전을 파괴하며, 포용적인 작동방식 때문에 자본주의의 적대적인 지식인이나 다른 세력의 억압하는 수단이 제한적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고 발전시킨 부르주아들은 합리주의적이고 평화적인 본성 때문에 종교나 이념같이 초-합리주의적인 신념과 감정적인 공감을 유발하지 못한다. 부르주아들은 지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 방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준열하고 반박하기 힘든 주장이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분석은 통찰력이 넘친다.

슘페터는 완전 성숙단계의 자본주의에서 마찰이 거의 없이 사회주의로 이행이 일어날 것이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 번영을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부터 슘페터의 주장이 비현실적이 되기 시작한다.



우선 수요/공급 때문에 조절되는 자본주의적 시장을 배제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교환하는 경제체제를 제시해야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책을 읽어보거나 아래에 첨부한 책 요약을 참조하기 바란다.

  • 자원과 서비스를 고정된 가격에 무한히 공급할 수 있는 중앙청이 존재한다.
  • 생산기관은 중앙청에서 자원과 서비스를 공급받아 이윤을 붙이지 않고 시장에 공급하면 시장의 수요가 얼마나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결정한다.
  • 예상보다 수요가 많으면 생산기관은 중앙청에서 더 많은 자원과 서비스를 공급받는다. 예상보다 수요가 적으면 중앙청은 자원과 서비스를 다른 곳에 할당한다.

한마디로 공급가격을 중앙 경제계획/통제기관이 고정하고 수요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면 자본주의적 시장의 비효율을 제거하여 오히려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다. 뇌내망상이다. 볼펜 하나만 해도 수십 종류인데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의 종류와 양을 어떻게 중앙당이 다 통제를 하겠다는 말인가. 원자재와 서비스를 고정된 가격에 무한히 공급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위 과정에서 직업선택 및 노동시간의 자유는 없는 것으로 가정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같은 방식은 아니나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소련이 경제적으로 어떤 파국을 맞았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소련 말기에 중앙기관은 다양하고 뛰어난 상품을 생산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곡식을 제 때에 도시로 운송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경제적 번영과 혁신에 인간의 '동기'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슘페터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경제적 동기 이외에 인간의 동기를 자극할만한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가 볼 때, 이런 동기를 자극할 수 있는 첫 번째 것은 '사회적 평가와 명성'이다. 예를 들면 '성공적인 업적을 올린 사람에게 바지에 간단한 표지를 달 수 있는' 명예 같은 것 말이다. 두 번째 성과보수는 성취에 걸맞게 부여하는 '요트나 별장, 접대비' 같은 특권이다. 슘페터가 꿈꾸는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바지에 간단한 표지를 달고 다니면서 요트나 별장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다. 예전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볼법한 광경이다. 어떤 게 성과인지 가치 판단은 누가 하고 특권은 누가 부여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중앙화된 기관에서 할 것이다.

슘페터가 꿈꾸는 사회주의 체제가 작동하냐 안 하냐를 떠나서 에서는 필연적으로 중앙기관에 엄청난 의사결정권이 집중될 것이다. 이는 슘페터 본인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체제가 비효율을 유발하지 않고, 권위주의적이고 비대한 권력기관도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약점을 분석할 때 보였던 객관성과 통찰력은 어디 갔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다음 슘페터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현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가 창조한 것이며 이 둘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한다. 먼저 민주주의를 어떤 가치를 대변하고 추구하는 고전적 민주주의 해석을 배격하고 '유권자의 투표를 얻기 위해 지도자 후보들 사이에 자유경쟁이 존재하는 체제'로 좁게 해석한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좁게 해석해도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정치인과 이런 정치인을 배양하는 수준 높은 국민의 수준, 효율적이고 독립적인 관료제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한 후기 자본주의 체제를 인수한 사회주의는 이런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을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갈등 영역을 중앙기관이 모두 관리하기 때문에 소모적인 갈등마저 줄어든다는 게 슘페터의 주장이다.

'단,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개인적 자유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p423'

민주주의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은 일견 타당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수단이지 자체로 추구하는 게 합리화되는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잔혹하거나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장기적이고 훌륭한 결정이 나오기도 한다. 단, 민주주의가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고안된 수단도 아닌 보통 기술적 정치 제도의 한 종류라는 주장은 기만적이다. 내 생각에 민주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막고 권력 행사에 법적-제도적 절차를 강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한다. 인간의 존엄성의 핵심은 자유이다. 개인적 자유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인가? 중앙기관이 정치영역 대부분을 관장하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이 사라지는 민주주의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슘페터를 포함해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부르주아적 자본주의가 주입한 관념으로 끊임없이 착각한다. 따라서 사회가 바뀌면 개인이 자유도 덜 추구하고 경제적 이익 없이도 동기부여가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슘페터는 이런 변화를 인간의 "제조건 화에 따른 변화"라고 표현한다. 사회주의 체제에 맞춰 사회 구성원의 욕구와 가치관, 행동방식을 변화가 필요하단 말이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사회를 마음속에 아무리 그려보고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해 봤자 허망한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시도를 했던 사회가 어떤 처참한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다.

이윤(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개발한 이념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의 일부이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으면 인간은 '바지에 붙이는 표식이나 남이 상으로 주는 별장, 요트'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에게 별장을 배정하고 표식을 붙여줄 수 있는 권력을 추구한다.

자유(특히 경제적 자유와 자기 결정권) 또한 자본주의가 필요 때문에 주입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유치원생도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원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슘페터라는 인물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력이 번뜩인다. 단, 민주주의적인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라는 그의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취약함은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민주주의는 어떤 근본 가치(자유)와 상관없는 정치 운영 도구로 좁게 해석한다.




처칠은 민주주의를 가장 덜 나쁜 제도(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e others)라고 했다. 내 생각에 자본주의에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사회주의, 즉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과 의사결정에 바탕을 둔 시장을 배제하고 이를 인간의 계획으로 대체하려 한 제도는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안타깝고 장엄한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의 바닥을 치는 처참한 실패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때문에 새롭고 작동할 수 있으면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체제를 폄훼하거나 오해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책 행간 하나하나까지 공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책을 덮고 나서 한가지 확신이 강해졌다.

만약 자본주의가 어떤 모순 때문에 끝난다면 그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슘페터가 주장하듯 잘 작동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간 문명의 몰락일 것이다.

위 글 이외에 책의 요약본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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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려운 책이네요.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모할지 생각은 해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