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영국 파운드화의 정교한 위폐를 만들어냈다. 그 규모가 1942~1945년 파운드화 유통량의 대략 13%에 육박했다고 한다. 대량의 파운드를 몰래 유통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영국의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한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작전이었다. 이른바 베른하르트 작전이라고 불리던 계획이다. 이 작전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계획대로 위폐가 유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단 9개월 동안 미국의 M2 증가량은 19.7%이다. 위 사건과 다른 점은 적대국이 미국을 망치기 위해 돈을 위조한 게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화폐제도의 비현실성과 비상식성의 예를 드는 것도 이제는 진부한 일이다.
아주 천천히 상식선에서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은 어떨까? 25살 젊은이가 취직 후 6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해 보자. 인플레이션은 40년 동안 2%를 유지한다고 해도 40년 후에는 구매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실제 근대 이후 인플레이션은 2%를 훨씬 상회했으며, 때때로 정치적 격변을 동반한 화폐가치의 급등과 자의적인 화폐개혁도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독점하는 신용 화폐시스템 하에서 온건하게 일어나는 인플레이션도 이렇게 위험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플레이션은 프리드먼의 말처럼 언제나 화폐적인 현상일 뿐 아니다. 정치적인 현상이다. 화폐 과잉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화폐를 권력자가 독점하면서 일어난다. 화폐를 독점하면 이 세상 모든 가치를 저장-교환-측정-계산하는 권한을 독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1000만 원의 빚이 있고 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장 1000만 원을 만들어 빚을 갚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돈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돈을 만들어낼 것이다. 금이나 상품의 가치로 보장되지 않는 신용화폐 시스템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역사상 처음은 아니지만 지금 일어나는 규모와 영향력은 이전 어떤 인플레이션과도 다를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조세징수 행위이다. 그것도 급여생활자와 노동자같이 고정된 급여에 기초해 생활하는 소박한 소시민들에게 가장 잔인한 세금이다. 제한된 급여를 아껴 쓰고 남은 돈을 무위험 자산에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몰래 털어가는 비겁한 행위이다. 소시민에게는 유가증권도, 부동산도, 금 현물도 없거나 거의 없다. 인플레이션을 연계매매로 위험을 분산할 수단이 제한된 것이다. 현금만 조금 있을 뿐이다.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에서 이런 현금의 가치도 모두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꼭 필요하고 화폐 공급에 의한 고용 창출 효과로 실업을 잡고 경기를 북돋을 수 있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다. 이른바 케인스의 망령이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이른바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논리이다. 인플레이션과 고용률이 반대로 움직이는 필립스 곡선이 이런 논리를 보여주는 예로 쓰인다.
케인스의 유효수요의 논리와 필립스 곡선은 한 가지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의해 늘어난 화폐에 의해 기업의 이익은 늘어난 반면, 아직 노동자의 임금은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만 경제성장과 고용증가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에 의해 풀려난 돈은 국가-->국가기관-->기업-->가계와 노동자 순으로 전달되며 화폐가치 하락을 일으킨다. 화폐가치가 하락한 것을 노동자가 아직 몰라서 임금상승 압력을 일으키기 전까지만 고용증가와 경기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화폐 공급에 의한 유효수요 창출은 정보 불균형에 의한 착각에 의존한 정책이다. 실제 노동자가 인플레이션에 맞먹거나 넘어서는 임금상승 압력을 일으킨 1930년대 프랑스의 경우에는 돈을 푸는 팽창정책에도 인플레이션 외에 어떤 경제효과도 없었다.
케인스의 논리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정치인의 필요와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부터 이런 논리의 허구성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실업률은 높고, 경제성장률도 낮지만, 인플레이션만 높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은 2차 세계화라고 불리는 국제분업체계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고서야 서서히 바로잡혔다. 돈을 독점하여 마음대로 찍어내고 싶다는 정치의 논리가 싼 똥을 자유무역에 의한 시장의 힘이 바로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모든 나라가 막대한 돈을 풀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왜 초인플레이션이나 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이유 외에 저자는 금융상품(자본재)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막대하게 공급된 화폐가 상품시장이 아니라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07년 경제위기 이후에 경기의 뚜렷한 상승과 상관없이 금융상품의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는 점과 상품시장에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
이 책이 쓰인 2016년에는 앞으로 금리가 제로가 되고 양적 완화가 지속하리라 판단할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저자는 앞으로 금리가 제로에 근접할 것이고 통화량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저자는 제로금리와 유동성 과잉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에 대해 조언한다. 그 비법은 마법의 삼각형으로 부르는 수익성, 안정성, 유동성이다.
부동산: 인플레이션을 해지하기는 하지만 거품이 꺼질 때 큰 자산가격 하락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점, 큰 레버리지를 쓰면 실제 수익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과 세금, 세입자 리스크 같은 운영상에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주식: 장기간 보유하면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연계매매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거품 붕괴 시에 부화뇌동하여 자산을 팔아버리면 안 된다.
금: 인플레이션을 연계매매로 위험을 분산하고 위기 시에 빛을 발하는 자산이지만 투자로서의 매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대안으로 금 펀드나 금광주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하고 있다.
채권: 국채나 우량채권이 아니면 위기 시에 원금을 잃을 수 있다. 금리가 내릴수록 큰 이익을 보지만 제로금리에서 더 내려갈 금리가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이외에도 자기 계발부터 봉사활동, 사모펀드까지 다양한 예를 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본질을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일독할만한 책이지만 후반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법은 그냥 평범한 투자지침서와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장기간 분산투자하라는 말이야 누가 못 하겠는가. 앞으로 인플레이션과 거품 붕괴, 화폐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 깊게 볼만한 책이다.
세계가 인류사에서 처음 겪는 제로금리가 많은것을 바꾸었네요~
다행스럽게도 다수가 예상한 주가폭락은 일어나지않아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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