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설마 레이크 토바로 가는 건 아니지?" 파샤가 장난스레 물었다.
"너가 간다면, 그리 지루한 선택은 아닐 듯 한걸." 엔리케가 농담을 받아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나와 수는 전형적인 아시아적 미소를 띄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색함으로 인해 상대방의 신난 감정이 쳐지지 않도록 입꼬리를 인위적으로 올리고 익숙치 않은 사람들과의 교류에 대한 내면적 불안감은 뒤로 숨겼다.
파샤는 엔리케가 웃고 떠드는 동안 나와 수는 서로 눈을 잠깐 마주치면서 어색한 정적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아시아적 미소를 유지하기가 한계에 다다를 때쯤 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시를 쓰고 있다고 들었어."
순간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주변에 내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아는 친구들은 극히 드물었으며, 나는 아무도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지 말았으면 했다.
"그걸 수 너가 어떻게 알았어?" 놀라움과 미소를 대충 섞어 나는 물었다.
"나도 사실 어디서 들은 건 아니고, 그냥 너가 요즘 시 동아리 모임에 자주 찾아가는 걸 봤어." 수가 답했다.
"아.. 맞어. 시 동아리 모임에 몇번 나간 적 있지. 그런데 아직 처음 써보는 거라서, 많이 어색하고 오글거리고 그래. 수 너는 이제 곧 졸업이네. 준비가 잘 된것 같아?"
"음, 글쎄. 일단 대학교때의 삶이 너무나도 그리울 것 같아. 지금은 사실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흘러가는 이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들이 더 큰것 같아."
"그렇구나."
그리고 정적이 또 흘렀다. 이번에는 파샤와 엔리케도 잠시 대화를 멈추었다. 엔리케는 레이크 토바에 몇번 가본 경험을 살려, 메단 공항에 도착하면 레이크 토바까지 가는 택시를 같이 타자고 제안했고, 파샤와 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엔리케는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파샤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어 들뜬 것 같았는데, 나는 조금 걱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리 탐탁치 않았다. 돈도 별로 없었고, 기말고사도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즉흥적이긴 했지만 엔리케와 여행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근래 들어 엔리케가 삶에 대한 막연한 상실감과 원인모를 우울증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엔리케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슬픔들을 떼어내고 오길 바랬었다. 그런데 왠지 파샤는 그 과정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