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영글어 가는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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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영글어 가는 들판/cjsdns

눈에 선하다.
벼가 익어 가는, 꿈이 영글어 가는 들판이...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서 찍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논득 길을 걸어 보고 있다며 보내온 소식이다.
가급적 자주 걸으라 하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겠다고 한다.
누가...?
사랑스러운 딸 Rina! 가 그런다.

사실 내가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놀란 것이 걷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이 좀 있기는 한데 정말 걷는 사람 보기가 가뭄에 콩 나듯도 아니다.
낮에는 정말 걷는 사람이 없다.
쉬운 말로 3보 이상은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이동을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걷기를 극도로 혐오하듯 멀리 한다.

그래 그런지 한 번은 25킬로 미터를 걸어서 미팅 장소에 갔다.
그랬더니 모두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물론 더위에 묵직한 백을 들러 메고 간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땀이 얼마나 흐르는지 옷은 흥건하게 젖어서 땀으로 빨래를 하는 격이다.
그러나 그곳 기후가 생각처럼 그냥 기분 나쁜 그런 더위는 아니다.
걸으면서 느끼는 건 일종의 상쾌함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나도 아들네 집에서 자고 나면 코코넛 밀림을 지나가면 나오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걷고 걸었다.
우리 동네서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그런 정경이다.
어쩌면 김제 평야 혹은 서산 간척지나 가야 볼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논을 보면서 내가 40대만 같으면 그냥 뛰어들어 벼농사를 원 없이 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쌀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알고 자린 세대다.
산골동네 소작농으로서는 쌀을 쌓아놓고 겨울을 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 해마다 늘어가는 장려쌀에 허리가 휘기만 하는 그런 농사를 나는 안다.
그렇기에 이토록 넓은 뜰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어서 이제는 하루 인건비가 쌀 한가마가 아니라 두 가마가 다 된다.
죽도록 일해도 쌀 한 됫박도 벌기 어려운 그런 세월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고 이제는 어지간한 사람도 하루 일당이 쌀 한 가마니가 되는 세상이 됐다.

딸이 보내준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보니 세월 덧없구나를 느끼게 된다.
저 뜰에 비하면 한쪽 귀퉁이도 안될만한 논에서 어떻게 하면 가난을 물리치나 고민을 하던 열댓 살 소년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열여섯 살에 도저히 희망이 없는 농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서울가 공장에 취직해서 돈 벌어 늘어만 가는 장려쌀 갚겠다고 나선 소년이 지금의 나이다.

그래 그런가 가난을 물리치고자 노력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그냥 돕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미는데 그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을 돕는다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 거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 가득한 마음이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전달이 되는 거 같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한 달간의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다.
어떻게 전개가 될지는 모르나 멀게만 느껴지던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무척 가까이에 다가선 느낌이다.

아직 생각에 머물고 있지먼 내년 봄쯤에는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을 거 같다.
이번에는 간다면 술라웨시 쪽에서 몇 주 정도 머물 생각이다.
물론 지내봐야 알겠지만 아체를 다시 잠깐이라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그곳에는 아들도 딸도 손녀들도 있고 소중한 나의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딸이 보내준 풍광 속에서 마냥 뛰어놀며 이 생각 저 생각해 보니 그냥 마냥 즐겁다. 오늘도 즐거운 날이다.

감사합니다.

2023/12/20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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