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셨군요

무려 320분의 '지식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과 '국가 수호'를 위한 선언에 나섰단다.

우선 저 인사들이 무슨 지식을 그리 알차게 습득하고 그것을 전파하셨는지부터가 궁금하다. 설사 그 내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분들이 모종의 지식을 쌓아 오셨다 치자. 과연 '지식인은 지식을 지닌자'라는 정의는 가능하고 합당한가.
게다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칭하는 행위(이거야말로 어느 전직 판사가 최근 결연한 표정으로 비난한 '참칭'에 가깝지 않은가)는 이를 것도 없겠지만 측근에서 그리 불러주는 걸 손사래 한 번, 최소한의 물림도 없이 태연히 허락하는 무지와 뻔뻔함이 제대로 된 지식인의 모습인가.

지식의 유무, 그 축적의 부피가 지식인의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설사 그 필요조건은 될 수도 있음을 가까스로 인정한다 해도. '지식인'에서의 '지식'은 어느 분야의 한정된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록 매우 넓은 영역에 걸친 깊은 지식을 지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쉽사리 지식인으로 부르기도 어렵다. 그래서 저 320분 가운데 상당한 비율을 점하는 변호사들께도 마구 지식인의 계관을 씌워드려서는 곤란하다. 물론 저 명단과는 별도로 매우 지식인에 가까웠던 변호사들이 현대사의 그늘 속에 여럿 있기는 했다.

한 20년 전, 서울대 병원의 새 원장이 취임해 기자들을 점심 자리에 불렀다. 의례적인 소감 발표와 덕담이 오가던 자리에서 원장은 의사가 지식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말이 음식이 담긴 접시들과 그릇들 사이를 미처 통과하기도 전에 어느 기자가 잘라 말했다. "원장님, 의사라고 해서 곧 지식인은 아닙니다. 의사이면서 지식인인 예가 아주 드물게 있을 뿐이지요. 종양이 모두 암이 아닌 것처럼요."

의사답지 않은 유연함을 과시하며 원장이 물었다. "지식인이 아니라면 뭐라 불러야 옳을까요?"
"전문 기능인 정도가 합당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기자도 물론 지식인 아닙니다. 매우 가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학자, 대학교수는 지식인인가.
이분들이 지식인 되기는 변호사나 의사의 경우보다 좀 더 어렵다. '지식인 사회'를 일컬을 때 으레 맨 앞줄에 놓이는 과한 대접을 받기에 그들은 자신이 지식인의 종신 자격증을 획득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태도가, 이분들을 지식인이 되기 어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젠장, 지식인 그따위 것, 난 안 할란다."며 자리를 박차야 되는 것 아닌가.
역설적으로, 그래야만 지식인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어느 인물의 '지식인 됨'은 세상을 향한 그의 태도가 결정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예민한 안테나로 현실을 직시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그 응시와 이해에 나름 최선의 판단을 첨부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던진다. 세상의 반향을 부지런히 감지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견해에도 정직하고 과감한 광정(匡正)을 가할 줄 안다. 무엇보다 그는 담대하다. 오만하기까지 하다. 무지와 폭력 앞에서는 .

어느 시점에 명백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였다 해서 평생 그가 지식인인 것도 아니다.
그는 지식인으로 오래도록 남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지식인의 페르소나를 하찮게 여겨야 지식인이 된다.

저 320분 뜨르르한 '자칭 지식인님'들을 한 분 한 분 호명하며 '지식인이십니다, 아니십니다' 할 필요는 없겠다.

'사람에 가까운 짐승'과 '짐승에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한 쪽을 고르듯 '지식인에 가까운 야만인'과 '야만인에 가까운 지식인'
중 하나를 택하라는 비교적 덜 어려운 선택지를 저들에게 던져는 줘봐야 할 것 같다. 던져는 드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