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기와 깨어나기
잠들기의 중요성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하 <밤의 해변...>)는 두 편의 에피소드영화들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다.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나타나는 것은 반복되는 평행세계들을 상기시키면서 그들 상호간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서 신비한 기시감(데자부)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두 에피소드속의 이야기들은 거의 판박이처럼 반복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느 쪽 사건이 맞는 것이고 틀린 것인지의 문제가 아닌 상이한 경우들이 둘다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차에 생기는 차이라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실제의 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홍상수는 앞서 말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첫 에피소드에서 보여진 사건을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다시 반복한다. 홍상수 영화에서 둘 이상의 에피소드들의 분절된 구조를 갖는 형태는 드물지 않은데 이러한 구조는사건들이 갖는 모호한 성격들을 대비시켜 나란히 붙여놓고 보기에 적합한 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영희(김민희)는 얼마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고독감에 빠진 여인이다. 이 영화에서 홍상수는 영희의 심리상태에 대해 무의식적인 상징들로 묘사한다. 무의식은 그의 언어, 행동 등과 같은 것으로 드러나거나 두 에피소드들의 관계, 즉, 이야기 구조 자체를 통해서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영희는 첫 번째 에피소드 결말에서 해변가에 누워 잠든 상태다. 그는 강한 죽음 충동을 느끼는 듯 보이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잠에서 깨어나서 일어나 자신의 두 발로 해변가를 걸어가간다. 이 차이는 결국 이 영화에서 홍상수가 만든 반복되는 사건들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들에서 매번 새롭게 변주, 반복적인 사건들의 차이를 이야기구조를 통해 나타낸다. 관객은 사건 자체보다도 그 구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싶어진다. 의미는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무엇보다 두차례 걸쳐 나타나는 해변가에서 잠이 들다 깨어난 영희의 모습들은 잠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잠과 꿈의 비밀에 대해서 영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의식의 공간, 바닷가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희는 바닷가에 누워 잠 든 모습으로 두 번 나온다. 고독한 심리와 상실감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풍경쇼트는 넘실대는 호수와 바다의 물의 움직임으로 그의 무의식적 욕망을 암시한다. 일렁대는 물의 수면과 바닷가 파도가 치는 물결들은 그 자체로 방황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만한 영희의 마음을 보여준다. 해변가와 일상의 장소들에서 영희는 꿈과 현실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욕망를 나타내 보인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그가 잠시만 머물다가 떠나 버리는 연속적인 장소들 – 마을 장터, 카페, 한적한 공원, 다리, 레스토랑, 서점, 지인의 아파트 –은 단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공간들이지만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보이는 공간들이 된다. 이 공간들에서 영희는 자신의 무의식적 심리를 드러내는 말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지영과 산책하러 들른 공원에서 영희는 문을 닫은 레스토랑 건물을 보고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예쁘다 감탄한다.아름다움을 강조해 지은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에 그의 말은 단지 인상이 되는데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패닝을 해서 그 건물을 보여준다. 특별한 건물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건물일 뿐이다. 운치 없는, 심지어 살풍경해 보이기조차 한 이 건물을 두고 그가 동화속 집처럼 예쁘다고 말을 한 것은 어째서인가?
단순히 그녀의 히스테리적인 반응으로 보아야 할까? 이처럼 정상적 궤도를 벗어인 심리적 상태는 첫번째 에피소드 결말에서 그녀가 모래를 도화지 삼아 연인의 얼굴을 그릴 때에도 암시된다. 그림을 그리던 그는 해변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일어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죽음 충동이 강하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이 장면은 첫 에피소드의 결말 부분에서 바다의 유혹에 끌어 당겨지듯 걸어 가는 모습을 상기하는 것이다. 한가지 이상하다 생각되는 점은 카메라는 빠른 패닝 쇼트로 영희의 전후 상황을 단숨에 보여줄 때다. 오른쪽으로 패닝해서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지영을 자그마하게 보여주고 나서 카메라는 그녀가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다시 왼쪽으로 패닝을 하더니 시선을 해변가로 돌린다. 조금 전 관객이 보았던 바다를 향해서 망연히 걸어가던 영희는 사라지고 없는데 그가 갑자기 보이지 않음에 당혹한 카메라는 한번 더 왼쪽으로 패닝을 해서 검은 옷의 남자등에 업힌 영희를 비춘다. 이 연속적인 패닝들은 급작스러워 당황스럽기까지하다.
첫 에피소드 결말에서 현실속 일로는 보이지는 않았던 기이한 사건이 기이한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 결말은 꿈속 장면인 것만같다. 해변가는 일상의 공간으로서 인물의 무의식적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에피소드들의 구조상의 기이함
이와 같이 두 에피소드들이 병렬된 이야기 구조는 전작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과 유사성을 공유하지만 사건의 배치가 완전히 동일한 순서와 내용을 나타내는 전작과 다른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전작 에서 같은 사건이 반복됨을 통해서 미소한 차이가 의미를 생성하는 것과 달리 <밤의 해변...>은 유사한 사건들의 반복이 아닌 듯 변주하는 방식으로 결국 앞선 에피소드를 두번째 에피소드가 반복을 하고 있다. 이 서사구조는 각각 동일한 사건들을 다른 거울위에 비추면서 사건이 굴곡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 에피소드에서 영희가 함부르크에서 지영과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귀국한 후 강릉에서 명수, 준희와 지인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내용은 상이한 듯 보이지만 대부분 반복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영희는 유부남과의 스캔들로 외국에 머물고 싶어했으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귀국한 상태라서 첫 에피소드 속 상황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주해서 반복한다. 이 두 에피소드들은 확실히 연속성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세 차례에 걸쳐서 반복해서 나오는 해변가의 잠든 영희 장면들의 변주처럼 서사적으로 동일한 장면은 대치와 대조로 반복된다. 이 장면들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변이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건들도 변주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의 변화에서 홍상수는 단지 시간의 불연속성을 상기시키면서 영희의 잠 들었다 깨어나는 장면이 여러 시간대에 걸쳐 상이한 현실들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독은 하나의 연속적 이야기 세계들을 여러 층위의 시간들이 공존하는 시간성을 띤 것으로 묘사한다. 그를 통해 불연속적 시간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단서가 되는 것은 언급한 바와 같이 잠든 영희의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시작에서 영희는 강릉의 영화관 내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봉봉 카페에서 막연히 시간을 죽이고 있다. 영화관이 꿈의 공간이라면 봉봉 카페는 현실적 공간이다. 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후 첫번째 에피소드 결말에서 죽음의 충동이 나타났던 것과 달리 바닷가에서 잠들었다 깨어나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영희를 보여준다. 그는 해변가 모래위에 죽은 듯이 몸을 모로 세워 누워있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낯선 남자 목소리가 그녀를 깨우기 전까지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있던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잠든 영희가 꾼 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에피소드들은 서로 이어져서 영희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들의 미정아빔 구조가 드러내는 심연이 무의식적 층위를 이야기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의 두 에피소드들은 검은 바탕의 흰 글씨 자막으로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경계가 분명히 나뉘어진 구조는 현실과 꿈을 대비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경계를 통해 구성된 이야기들의 분할구조는 홍상수가 전작 <다른 나라에서>의 세 에피소드들에서 보여준 바 있는 평행세계들의 구조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안느(이자벨 위빼르)의 세계는 서로 다른 가능한 세계들로 각각 세번 변형되면서 반복되어 보여진다. 또, 앞서 말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두 에피소드들이 완전할 정도로 동일한 사건들을 반복하는 양상 또한 경계를 통해 나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밤의 해변...>에서 경계로 나뉜 에피소드들의 관계는 그러한 경계들로 나뉜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계와는 다른 묘미를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두번째 에피소드 초반에 프로그래머 선배와의 대화에서 영희가 한동안 외국에 머물러 있다가 들어왔다는 말이 언급된 것은 이 두번째 에피소드가 앞의 에피소드와 하나의 세계에 속하면서 연속성을 띤 것임을 예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영희가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하는 말또한 그러한 인상을 강화한다. 영희는 “서울에서 못 느끼던 것 거기서 하나씩 하나씩 다 느끼더라구요. 공원이 하나 있는데 공원이 진짜 좋아요, 거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영희의 말은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들의 세계들이 연속성을 띤 것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보다는 두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면서도 이중적으로 나뉘어 있는 듯한 오묘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자막으로 나뉜 데 더해 음악이 에피소드 1과 2사이에 걸쳐있음은 두 에피소드들의 연결은 나뉘어졌으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단서가 되는 것은 첫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두번째 에피소드의 시작까지 이어지는 배경음악이다. 음악 때문에 두 에피소드들은 확실히 연결된 것으로 인지된다. 다소 엉뚱한 결론이기는 하다. 하지만 두 에피소드들이 상호 연결된 동시에 분할된 구조 즉 꿈과 현실이 중첩되는 구조를 통해 영희의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알 수 없는 어쨌든 겹쳐지는 시간을 표현하는 것은 이 영화의 서사구조가 주는 신비로움이다. 홍상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신비로움을 탐색하고 있다.
잠들기 – 꿈을 통해 자신을 보기
이러한 구조 아래에 에피소드들 속의 사건들은 서로 닮아있는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중첩된 구조이자 미정아빔의 구조로 보이는 것이다. 미정아빔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의 첫장면에서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영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영화를 보는 영희의 시선은 프레임밖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때의 시선은 단순히 스크린을 ‘보는(view)’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응시(gaze)’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이 미정아빔 구도와 관련해 중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이 응시는 영희의 주체가 ‘나’라는 주체 속에 바라봄과 바라보여짐이라는 두 가지 주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을 꾸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꿈속에서 보여지는 영희의 이 응시는 그래서 영희가 보고 있는 대상인 스크린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영희가 꿈을 꾸고 있는 내용이 곧 영희가 보는 영화속 내용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리버스 쇼트가 나타나지 않는 것, 그것은 영희가 지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정도로 몰입해 보고 있는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영희가 스크린을 보는 것에 대해 관객인 우리는 자유롭게 해석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장아빔 구조로 두 에피소드들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이 때 각 사건들은 어떻게 영희의 무의식적 욕구를 암시하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영화에 나타내는 두 에피소드들 속 사건들은 서로 유사성과 차이점을 띠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전반부에는 강릉의 영화관-봉봉카페– 영수선배 집 –호텔식 콘도로 이어지는 여러 장소들이 나타나면서 각 공간들은 앞서 첫 번째 에피소드의 굴곡된 반복처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영화관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선배는 겨울 바다를 보러 왔다는 영희에게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도시를 꼽는다면 아마 일등할걸?’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앞서 지영이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살고싶은 도시로 뽑혔다는 설문조사에 대해 이야기했던 내용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또 선배는 영희에게 얼마전 영희에게 외국에 너무 오래 있다 와서 배우 경력이 단절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말을 한다. 그런데 선배의 말에는 앞서 지영이 영희를 걱정해 한 말과 비슷한 뉘앙스가 나타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배는 영희에게 자신은 비록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동해서 일하고 있더라도 영희 만큼은 계속 서울에서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이 말은 영어공부에 대해 자신은 영어를 못하더라도 영희만큼은 영어를 잘 하라는 지영의 말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에피소드들에서 사건드릉ㄴ 말의 무의식적인 차원의 상징성을 통해서 반복되고 있고 이는 두 에피소드들이 중첩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희의 정신적 상태를 나타내는 무의식적 상징 또한 두 에피소드들에서 중첩되는데 영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그러한 상징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영희는 명수선배의 봉봉 까페로 찾아가고 그 곳에서 준희를 기다리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속 사건에 대해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기시감을 주는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카페에 명수가 도착하고 영희는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친밀해 보이는 모습은 명수 여자친구인 카페주인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게 된다. 카페주인여자는 명수에게 설거지와 콩고르는 일을 좀 거들라고 강요하다시피 한다. 이에 카페 밖으로 나간 영희는 화분의 양배추를 감탄하듯 바라보는데 영희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무척이나 고귀한 것을 보았을 때 경탄하는 듯한 태도로 나타난다. 영희가 이처럼 감동해서 두 손을 내밀어 쓰다 듬는 식물은 흔한 양배추식물이다. 이처럼 기이하게 과장되 보이는 영희의 행동은 앞서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희가 휴일날 텅 빈 공원의 레스토랑 건물을 보고 ‘동화에 나오는 집’같이 예쁘다고 감탄을 했던 것과 유사성을 띠는 행위인 것이다. 이와 같이 두 에피소드들에서 영희는 무의식적으로 감탄하는 행동과 대사를 나타나고 있다. 두 에피소드들에서 영희의 무의식은 평범한 대상에 대한 지나친 감탄이나 기원같은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꿈속에서 같은 욕망이 중첩되어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과장스러운 영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녀가 심리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대상에 대해 무척 강렬한 감동을 느낄 만큼 예민한 상태임을 말하기 위해 그녀의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희는 이 영화에서 내내 무척 소소한 것들에 감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예로 영희가 독일의 함부르크의 장터카페에서 보이는 풍경에 대해 감탄 (“나는 이런 길거리 시장이 정말 좋아!”, “난 내일도 올 것 같아.”)하고 다음 씬에서도 언니의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같이 살자고 조르는 등의 행위는 그러한 욕망의 억누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희는 헤어진 연인이 이메일을 보내 이곳에 오겠다고 했다면서 그를 기다리지 않는 듯 말하지만 사실 그가 와 주길 무척 욕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은 막연히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억눌려지도록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영희는 지영에게 자신은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영희의 마음과 말은 반대로 표현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영희는 다리를 건너기전에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갑작스런 행동이 말해주는 것은 그녀가 마음속에서 욕구를 다스리고자하는 뜻을 간절히 내비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면에 이어서 카메라는 잔잔하지만 다소 일렁이는 호수의 수면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수면의 물의 이미지는 영희의 그런 심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영희는 아까 절하면서 뭐한거냐고 묻는 지영에게 그냥 다리를 건너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해 보고 싶었다 말한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그냥 나답게 사는 거,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사는 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사가 의미하는 것은 영희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지내기를 힘들어 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이처럼 영화 초반에 지영이 영희에게 자신에게는 욕구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나 영희가 지영의 지나치게 욕구없음이 자기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여기는 태도는 그녀에게 아직도 많은 욕구가 남아있다. 이를 억누르려는 그녀는 해변가에서 죽은 듯 잠에 빠져들기도 하고 사소한 것들에 크게 감탄하는 기이한 행위를 나타내 보이게 된다. 이처럼 홍상수는 영희가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들에서 여러 장소들을 배회하고 해변가에 머물며 잠들기까지 과정들을 보여주면서 영희가 풍경이나 사물을 대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무의식적인 층위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욕망의 실제에서 현실로; 잠에서 깨어나기
<밤의 해변...>의 두 에피소드들간의 관계는 이처럼 중첩되고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서 영희라는 인물의 무의식적 심리 상태를 드러내 보이게 된다. 영희의 욕망의 실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현실인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는 꿈속의 일인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희가 해변에서 잠이 든 모습으로 암시되는 꿈속의 일들은 현실의 모호함을 넘어 더 구체적으로 영희의 실재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에피소드가 억압된 영희의 욕망의 실재를 간과하는 환영으로서의 현실이라 할 때 두 번째 에피소드는 영희가 그러한 현실로부터 깨어난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희가 해변에서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들이 두 번이나 삽입됨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이 반복은 자꾸만 관심을 끈다.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 중간에 조감독이 큰 소리로 깨워서 영희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에피소드 결말에서 화면 밖 운동화를 신은 남자(얼굴이 보이지 않음) 목소리를 듣고 그 깨어나는 장면과 유사한 상황이기에 중첩된 효과를 준다. 두 번째 에피소드 중간에서 영희의 깨어남은 해변가에서 잠든 그가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잠든 채 검은 옷의 남자에게 이동되던 장면과 겹쳐진다. 그러나 후자에서 영희는 영화감독을 만나러 가고 포킹 패쓰 영화처럼 이야기는 다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된다. 다른 방식으로 이 장면의 배열을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우리가 본 일들을 모두 영희가 꾼 꿈이라고 정리한다 해도 이야기는 그대로 진행이 가능하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번째로 영희가 깨어나는 장면 때문에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 결말에서 영희가 해변가에서 잠든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이 진행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 결말에서 사실은 해변가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의해 이동된 것이 그녀의 꿈이 되고 원래 혼자 해변가에서 잠이 든 상황이 현실이라면 이 경우도 이야기는 아무 탈없이 진행된다.
영희가 잠에서 깨어난 후 조감독과 스텝들, 영화감독을 만난 것은 앞서 깨어남 이전 명수와 지인들과 술을 마신 것과 동일한 구조다. 같은 구조가 나란해 배치된 것이다. 즉 한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사건이 두 번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 두번째 에피소드 속에도 미정아빔 구조는 신비로운 꿈의 시간을 환기한다. 즉, 두 번째 에피소드속 영희의 첫 번째 깨어남 이전의 이야기들을 그가 꾼 ‘꿈속의 꿈(dream in dream)’으로 간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실제의’ 깨어남이 두 번 일어나는 것은 이와 같이 복잡해 보이면서도 단순하게 해석되는 것이다. 이러한 꿈의 겹쳐짐은 영희가 일종의 림보(rimbo) 상태에 들어갔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와 같은 특수한 수면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꿈속에 일어난 일들과 관련해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두 번의 깨어남들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은 다시 한번 천천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두 에피소드들 초반 영희는 봉봉카페를 거쳐서 명수와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그런 다음 다음 날 낮 영희는 준희, 프로그래머 선배와 어떤 장소로 이동한다. 호텔식 콘도에 도착한 그는 그들과 편의점에 들러 장을 보고 낮동안 캔맥주를 마신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주차장에서 준희를 배웅한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 이후 영희가 해변에 잠든 채 누워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이 배치는 영희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껏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와 유사한 일들에 대한 꿈을 꾸어왔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두 번째 에피소드 중간에 영희가 해변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첫 번째 에피소드와 유사해 보이는 사건들이 나오는 두 번째 에피소드 전반부 장면들 다음에 나온다. 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전반부의 일들은 현실에 대한 꿈의 굴곡된 이미지들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희는 지영의 집을 거쳐서 폴의 집에 방문해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다. 이 일은 두 번째 에피소드 전반부에 나오는 영희의 꿈속 내용의 반복 변주다. 지영에서 준희로, 폴의 집에서 명수의 집으로 기억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앞서 현실속 사건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 사건은 두 번째로 나오는 영희가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에 이르기 직전까지 일어나는 일들, 즉 영희가 해변에서 조감독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불을 쐬고 스텝들과 이야기하는 장면들과 영화감독과 만나는 술집 장면은 모두 꿈속의 일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영희가 꿈속의 꿈을 꾸고 나서 다시 꿈을 꾸고 자신의 욕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나타나는 것은 중요하다. 영화에서 독일에서의 영희의 억눌린 욕망의 해소 대신 연속성을 띤 현실의 일처럼 나타나는 꿈은 현실과 경계지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꿈의 모호한 경계는 영희가 결말에서 꿈에서 최종적으로 깨어난 것으로 보일 때까지 반복하기를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꿈속에서 영화감독과의 재회가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와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책속의 문장들은 영화의 심연구조가 굴곡된 시간성을 띠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두 번째 에피소드 중반에서 영희는 해변가에서 조감독의 목소리에 깨어나고 두 번째 에피소드 후반에서 영희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기다렸던 영화감독을 만난게 되지만 현실의 바램이 꿈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모두 꿈속의 꿈, 혹은 다른 꿈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에피소드들은 연결되지만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영희가 소주를 마시면서 영화감독에게 마음속에 담아둔 울분을 토로하고 영화감독이 주위사람의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거라 답한다. 영희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당연하다. 꿈 속 사건들로 보이는 사건들은 영희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욕망한 것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꿈속에서 굴곡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듯 보이며 서사는 시종일관 모호하다. 이처럼 이 영화의 전체에 걸쳐서 영희의 억눌린 욕망은 꿈과 현실의 교차를 통해 나타나고 죽음의 공간 해변에서 그녀가 깨어나는 것은 잃어버렸던 삶에 대한 원기를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밤의 해변...>에서 홍상수는 일상의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반복적 사건들로써 이루어진 두 에피소드들의 구조를 통해서 의미를 나타낸다. 또 이 두 에피소드들 속 사건들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를 분간하기 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반복되는 사건들을 통해 과거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굴곡된 사건들을 허구화한 것이다. 이처럼 인물의 무의식은 욕망의 진실을 절합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사건들은 결국 허구처럼 구성된 진리다. 결국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사건들의 반복들, 그리고 잠듦과 현실에서 깨어남들의 연결을 통해서 우리가 진리라고 여겼던 것을 꿈이라는 무의식적 시간을 끌어들여 허구처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 구조를 통해서 홍상수는 욕망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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