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감정의 전달은, 대개 숙련된 기술자를 통해서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술자의 솜씨는 기술이라기보다는 기예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정도로 삶을 통해 꾸준히 벼려진 날카로움을 담는다. 감상자가 받는 감동은 메시지의 호소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전달방식을 갈고 닦아온 세월이 풍기는 아우라에도 의존한다.
존 버거의 단편 산문과 소설, 평론 등을 고루 담은 책 <풍경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장의 성숙도, 그 숙성을 위해 작가가 고군분투해온 오랜 세월의 풍미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내보이는 기록이다.
공산주의자로서의 존 버거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느끼는 부조리함, 불평등은 일견 당연한 반응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공산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기 이전에, 휴머니스트로서 사회의 구조와 불합리, 삶의 슬픔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우선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자신의 본업인 미술평론가의 위치에서 던지는 비평은 산업화된 현대예술산업의 구조에 불편하지만, 합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술관과 소수의 예술 애호가, 미술품으로 연명하는 미술계의 세태를 조목조목 짚어나가는 논리적 의문들은 마냥 낭만적으로만 비치는 루브르와 오르세를 흔들거리게 만든다. 이러한 날카로움은 예술의 목적과 순기능, 예술을 향유하는 주인으로서의 일반 대중도 놓치지 않아서, 공산주의자로서의 그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고양하는 데 있어 어떠한 방식을 추구하는지도 잠시 엿보게 한다.
다양한 문학적 장르에 대한 도전과 기성 예술에 대한 재고, 신진예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에도 불구하고 버거의 글에는 전체적으로 ‘슬픔’이라고 얼버무려 얘기할 수 있을 일종의 ‘비감(悲感)’이 흐르는데, 그것은 그가 비평가, 평론가이기 전에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도 온갖 작은 비극을 읽어낼 수 있는 예술가여서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