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10살. 지금까지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었다. 간혹 같은 반 친구가 산타할아버지는 없고 부모님이 선물을 주는 거라고 하면 그에 반론을 제기했다고 한다.
"아빠는 내가 어떤 선물이 받고 싶은지 알지 못해. 그리고 우리 아빠는 10시만 되면 잠들기 때문에 밤늦게 선물을 놓고 갈 수가 없어!"
뭐지? 의문의 1패를 한듯한 기분은???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 내가 첫째에게 직접 무엇을 받고 싶은지 물은 적이 없고(보통 아이가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쓰거나 아내님에게 슬쩍 말하면 내 귀에까지 들어오기 때문에 물을 필요가 없었다! 절대 무관심이 아니다!) 최대한 비밀을 지켜야 아이의 동심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기를 한 것뿐인데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는 늦게 자도록 하마! 어쨌든 이번 크리스마스도 아이들을 완벽하게(?) 속였고, 아이들은 잠들기 전까지 산타할아버지한테 간절히 기도를 하며 잠들 정도로 진심으로 산타를 믿었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아내님과 작업에 들어갔다. 몰래 숨겨둔 선물을 정성껏 포장하고, 내 글씨를 알아보는 아이들을 속이기 위해(나는 글을 자주 쓰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 필체를 쉽게 알아본다) 아내님이 편지를 썼다. 8년째 재활용하고 있는 인조트리 아래 선물을 고이 놓아두고 내일 아침 신나서 소리치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흐뭇해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완전 범죄를 한 범인처럼 뒤처리도 완벽했다. 사용했던 테이프와 가위를 아이 필통에 넣어두고, 포장지 조각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쓰레기통 깊숙이 쑤셔 넣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예상대로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아내님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이 아직 순수하고 밝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째 아이들은 드론 날리기에 정신이 없다. 모처럼 큰맘 먹고 사준 드론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학교만 다녀오면 드론 타령이니 말 다했다. 드론 자체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점점 운전 실력이 느는 걸 보는 것 또한 기쁨이었다. 실컷 드론을 날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첫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다. 슬쩍 뒤를 돌아보곤 동생들이랑 거리가 있는 걸 확인하더니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바로 아빠와 엄마였어."
뭐냐. 깜빡이 없이 쑥 들어오는 너님은...... 순간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아빠는 절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고 매일 너희들보다 일찍 잠드는 걸 모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첫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드론이 없는 셋째가 자신도 운전을 해보고 싶어 해서 몇 번 시켜주다가 불쑥 RC카가 생각났다고 했다. 셋째에게 RC카를 물려주려고 집을 뒤지다가 창고 안에서 익숙한 '포장지'를 찾았다고 한다. 선물 받은 포장지와 대조해 보니 100% 일치... 그것으로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실토할 수 없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끝까지 아빠는 모르겠다고 잡아 땠다. 그러자 첫째는 "엄마 혼자만의 소행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님에게 슬며시 물었더니, 첫째가 아내님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아내님은 순순히 실토했고 동생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자 첫째는 "왜? 동생들 동심 지켜주려고?"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사악한 녀석...
눈치를 보니 아직까지 동생들에겐 말하지 않은 거 같다. 그 대신 어제 일기장에 그 내용을 그대로 적었다. 둘째가 첫째의 일기장을 볼 일이 없고, 셋째는 아직 글자를 읽을 줄 모르니 그나마 안심이다. 둘째와 셋째의 동심은 당분간 지켜줄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첫째는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많이 아쉽다. 더 오랫동안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소홀한 내 뒤처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내 마음과는 달리 첫째는 여전히 밝고 명량하다. 단지 산타의 존재가 부모라는 사실만 변했을 뿐 나빠진 것도 더 나아진 것도 없었다. 다만 내 생각만 어지러워졌을 뿐이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순수함이 사라지는 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아이가 순수함을 유지하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존재로 나아간다. 내 좁은 생각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그리고
내년 크리스마스 때는 첫째 선물을 빼도 될 거 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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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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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산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만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더 커졌을듯!! 'ㅡ' ㅎㅎ
10살이면, 이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할 나이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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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치 부모님께 용돈 드릴 나이지
주머니 쌈지돈 좀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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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조금 빨랐을 뿐 입니다. ㅋㅋ
비밀유지 !!
큰 아이가 대견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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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잘 유지해줄지 모르겠어요.
이걸 빌미로 무언가 원하지는 않을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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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완전범죄는 없군요.. ㅎㅎ
큰아이의 추리력 또한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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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숨겨놨어야 했는데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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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에서 빵 터졌습니다.
그리고 순수함은 나이가 들어도 있지 않나요? 산타가 있다고 믿던 아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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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누구나 순수함을 가지고 있죠.
아이들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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