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없는 자식

in ko-kr •  6 years ago 

부담스럽다. 보이지 않은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게 ‘운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목사의 아들이다. 나에게 목회자의 자녀라는 사실 자체는 굉장히 큰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수식어로 내 이름 앞에 붙을때마다 나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는 모두 목회자의 언어가 아니다. 단정함과 젠틀함을 상징하는 턱시도와 정장은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아니다. 내 이어폰에는 잔잔한 복음성가 대신 킥 스네어 사운드가 강하게 들린다. 술도 이따금씩 먹고 담배도 끊었지만 자주 피곤 했다.”

그러나 이런 ‘나’는 부각 되어선 안되기에 내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남들이 보기에 거룩하게 행동하거나 살아가는 ‘척’ 했다. 물론 목회자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아니 그건 분명히 모범적인 삶이다.

마치 동전의 양 면 처럼 살아왔다. 자유롭게 나는 학 한마리가 내 진짜 모습이라는 사실을,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있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심플하게 적힌 500이라는 숫자만 보고 나를 훌륭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그니까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요구되는 ‘관례’라는 것들을 싫어한다. 예를들어, 사장님이 트레이닝 복을 입고 출근했을 때 나는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통상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개인적인 불이익이나 사회에 얽혀있는 다양한 관계들 따위 신경쓰지 않는듯한 멋을 느꼈다. 또 청바지에 반팔티를 입은 목사님을 봤을때도 같은 감탄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조사나 중요한 자리에서 가볍게 입는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 때문에,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입어야 하는 복장을 싫어한다. 비단 옷 뿐만이 아니다. 말의 뉘양스나 작은 제스처 하나까지 항상 품위있게 보이고 싶지 않다. 가끔 대형교회 장로님들이 목소리를 깔고 굉장히 무게잡은듯한 소리로 대표 기도를 하실 때가 있는데 인간적으로 그런 목소리를 들을때면 집중하기가 힘들어지고 왜 저렇게 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때도 있다. 그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는 참 철이 없는 인간이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와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그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분노케 한 자들은 율법을 지킨다면서 간음한 여성을 돌로 때려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을 지킨다면서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인 노동자들을 탄압한 바리새인들이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다면서 장사를 하던 율법학자들과 유대교 사제들이었다. 그들이 율법과 경건이란 이름으로 약자들을 억압할때 예수는 그들에게 분노하며 이 사악한체제를 온 몸으로 저항했다. 본질을 잊고 허울에 빠져사는 종교정치권력이 그토록 중요시 여기던 껍데기 뿐인 ‘관례’들을 모두 깨부신 것이다. 예수가 말씀하시고 삶으로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 말씀의 본질은 결국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이 없는 제도와 관례는 빛 좋은 개살구다.

라고 나는 합리화를 하면서 내 자유로움도 만끽하면서 사랑이 필요한 자리에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ㅎㅎ 맞다. 아마 나는 평생 철 없이 살아 갈 것이다. 노숙인들과 커피 마시면서 대화하고 해고 노동자들과 술 한 잔 주고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김치 부침개를 해먹고 철거민들과 함께 노숙하며 미혼모와 가출청소년들에게 국밥 한 그릇씩 사주는 그런 삶.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품위 따위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는 그런 철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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