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부재에 관한 생각

in ko •  4 years ago  (edited)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50대 여성이 교내 휴게실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 서울대 학생처장이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게 역겹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인 것에 대해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 (2021. 7. 11. 자) >


교내에서 청소일을 하는 근로자가 업무현장에서 사망했다.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것만큼 비극이 있을까. 당사자에겐 지금까지 이어온 인생의 허무한 마침표이고, 가족들에겐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는 복구될 수 없는 슬픔이다. 사망원인을 따지는 것은 두번째 일이어야 한다. 그 아픔을 공감하는 행위가 설사 거짓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묵인해줘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처장의 관점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한 생명의 죽음보다 가해자 프레임으로 비난받을지도 모르는 학교 관계자가 더 걱정되었나 보다. 삶과 죽음이라는 프레임에 앞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프레임을 얘기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편에서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을 '역겹다'고 표현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책임을 따지는 관점이다. 책임을 묻는 것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끝난 이후라도 늦지 않다. 죽은 자가 적어도 악인은 아니니까 말이다. 피해자를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이 역겹다고 얘기한 그이지만 적어도 애도할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설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속성으로 끝낸 듯 하다. 혼자서 강렬하게 애도하고 끝낸 모양이다.

인용한 기사를 읽어보면 그는 끝까지 잘못이 없다는 변명의 입장이다. 왜 자신이 그리고 서울대가 욕을 먹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억울한 만도 하겠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애도를 안한 것이 아니라, 계산 문제 풀듯 빨리 끝냈을 뿐인데 말이다. 아니다. 똑똑한 분이니 애도와 책임공방이 병렬처리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혹시 긴 애도가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거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공감력도 능력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행동은 분명 공감의 부재가 엿보인다. 실제 어떤 걸출한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생처장이라는 보직이 요구하는 역량은 많이 부족한 분이다.

공생 사회에서는 공감이 필수 능력이다. 언제든지 상대의 입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원래 누구나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개인 사욕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감추곤 한다. 이 건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 우리에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고인과 날마다 함께 출근하던 남편이 아침마다 운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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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능력주의'로 보입니다.
마이클 셀던이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고학력일수록, 그리고 성공할수록 자신들은 죽도록 노력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고 청소하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아서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문제는 저분만 그런 게 아니라 젊은 세대, 특히 명문대를 나온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네요. 미국이든, 유럽이든요.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맞습니다. '선택적 정의'의 문제도 그런 인식에서 나오는 거지요. 우월감,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잣대로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자칭 타칭 엘리트들..

특히 법조계에 우글우글 하지요. 써글.... ㅎㅎㅋㅋ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명복을 빕니다.

어제 '물에 빠진 세 아이를 목숨걸고 모두 구한 아저씨' 기사를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걸어봅니다.

상식의 벽이 무너진지 오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