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e: 의학은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단순한 시각도 있다. 물론 그것이 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그러나 죽음이 적이라고 한다면, 그 적은 우리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결국은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는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커스터가 아니라 로버트 리가 필요한 것이다.(커스터 장군의 제7기병대는 리틀 빅혼 전투에서 인디언 원주민 연합군에게 몰살당했다. 한편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 당시 승패가 이미 결정됐다고 느끼자 남부 병사들에게 투항하라고 권고했다.—옮긴이) 점령할 수 있는 영토를 위해서는 싸우고 그럴 수 없을 때는 항복할 줄 아는 장군 말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쓰디쓴 최후를 맞을 때까지 싸우는 것일 뿐이라면 결국 최악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사실 요즘 의학계에서는 커스터 장군도 리 장군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의사들은 병사들을 진군시키면서 계속 “멈추고 싶으면 알려 줘.”라고 말하는 장군이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의사들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전면적인 치료 과정을 두고 언제라도 하차할 수 있는 기차라고 말한다. 언제든 멈추고 싶을 때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너무 큰 요구 사항이다. 그들은 의혹과 두려움과 절박함에 휩싸인 상태고, 일부는 의학이 해낼 수 있는 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의료인들의 책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생이 끝나 가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창고’ 같은 시설에서 잊혀 갈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