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재난 이미지

in korea •  7 years ago  (edited)

여러 이유로 언급을 유보했지만, 나는 세월호 침몰 순간 선내영상을 공개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는 사람들의 애통함이 고조되었기에 심정에 공감한다는 취지로 말을 아꼈다. 그런 영상을 보고서라도 '잊지 않겠다'는 결의는 수긍이 갔다. 무엇보다 이 난감한 문제의 허와 실을 명료하게 가려낼 만큼 생각이 정리 되지 않았다. 나는 직관적으로 그 아비규환의 이미지를 공개하는데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렇게라도 알리려 한 것이 무엇인지도 존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얼마간 시간적 거리감을 두게 된 지금, 몇 가지 쟁점을 뽑아서 간신히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영상은 유가족이 공개를 청원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선정적 재난보도가 일으킬 수 있는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인의 인권침해 문제는 1차적으로 조각되었다 봐야한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일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숙고할 거리가 있다. 첫째, 침몰 당시 선내 상황을 알기위해 꼭 그 영상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어와 그래픽, 정지 화면을 통해 상황을 재구성하여 정보값을 유지한 채 얼마든지 ‘진실’을 알릴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재난 이미지에 해당되는 논리다.

둘째. ‘세월호의 이미지’는 이렇듯 사실관계로서의 보도가치를 초월한다. 그럼에도 영상공개를 감행하겠다면 그 효과는 전적으로 감정적 파급이 된다. 즉, 세월호 영상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터트리는 것 말고 기여하는 바가 흐릿하다. 이런 정서적 몰입은 여론이 냉정함을 잃게 하여 사건의 프레임을 부지불식간에 치우치게 할 수 있다.

셋째. 여러 매체가 세월호 영상을 공개하고 사람들이 기꺼이 관람한 것은 ‘그들’의 비극을 ‘나’의 오감으로 최대한 아프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이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신적 결의를 불태워도, 육지에 발을 딛고 그 영상을 보는 ‘우리’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그들’이 될 수 없다. 그 영상을 보며 내가 그들의 자리에 가있다고 믿음을 강화할수록 오히려 ‘나’는 ‘그들’과 멀어진다. 이때 타자와의 메울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자각은 흐려진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타자의 비극과 관계를 맺는다기 보다, 그 영상을 통해 증폭된 ‘나’의 감정 속에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종류의 재난 이미지, 고통스러운 이미지는 소비적 속성이 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고통-이미지의 무한한 역치 갱신능력이다. 아픔과 공포, 비명을 내장한 고통-이미지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어 각성을 일으킨다. 그 각성효과는 분명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은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역사적 이미지들이 증명하는 바다. 그러나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 차후에 똑같은 세기의 각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를 능가하는 더 큰 충격과 더 큰 자극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적 감흥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빠르게 무뎌진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고통-이미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명제는 진실과 멀다. 타인의 고통을 실감하고 고통의 의미를 유추하기 위해 감각적 매개가 필요한 사람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인간에겐 나의 것이 아닌 고통도 내가 느끼는 고통과 다를 바 없다고, 겪지 않고 보지 않아도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 어떤 감각적 자극에 기대지 않아도 폭넓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말하자면, 세월호의 이미지를 그렇게 감춤없이 목격하는 순간, 우리는 세월호 이후의 비극을 보면서 세월호 보다 큰 감각적 충격을 주지 않는 사건이라면, 세월호 만큼의 비극으로 실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고통-이미지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공감능력을 사수하는 적극적 결단이다. 정의로운 여론을 끌어내는데 기여한 소수의 고통-이미지가 있지만, 더 많은 고통-이미지가 한 순간의 볼거리로 전락해버린다. 뉴스와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간편하지만 위험한 ‘공감의 장치’에 의존하기보다, 지적 상상력을 끌어내는 대안적 재현방식을 모색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공감능력을 소진하지 않고 계발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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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역치가 올라갈 것 같다는 우려에 동감합니다.

글 쓰실 때, kr 태그를 사용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kr-politics 태그도 쓰실 수 있겠네요.
@easysteemit 계정을 확인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아 그런 태그를 다는 방법이 있었군요. 이제 막 시작해서 사실 잘 파악이 안 됩니다.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