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기반 - 아이템, 상권, 경제 - 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각각의 핵심이 무엇인지 깔끔히 서술한 책
아이템 만능주의의 오해와 유행 아이템 창업의 맹점 / 상권이 형성해 온 역사와 신촌, 강남, 홍대, 성수 등 몇몇 핵심상권의 특징 / 자영업과 관련된 경제 수치 - 폐업률, 고용률 등 - 의 의미를 짚어냄.
평소에 주변 상가의 위치나 상권에 관심을 가진 적은 있지만 지식이 없던 사람들에게 좋은 교양서가 될 수 있는 책.
2014년 무렵이었나, 청년 창업으로 꽤 성공한 형이 있었다. 금전적으로 크게 성공해서 사업가가 된 사람이라기보다는, 길바닥에서부터 장사하며 어떻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지 철저하게 배워서 알고 있는 형이다. 그 형에게서 배울 점 중 하나가 바로 상권의 형태와 유동인구의 구매력을 파악하는 눈이었다. 이 건물에 왜 이 상점이 들어가 있을지, 그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어떠한지 면밀히 관찰하고 생각하다 보면 도움이 될 거라 했다.
문제는 관찰과 질문 수준을 넘어 해답을 찾으려면 지식을 알아야 한다. 관찰에서 얻는 사실들을 연결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해당 분야의 지식을 알고 있으면 사실의 연결이 한결 쉬워진다. 이 책 ‘골목의 전쟁’은 경제 중에서도 자영업자, 상권, 창업 아이템이라는 세 분야의 상황과 특징, 지식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시장이 어떠한지, 그들이 있는 상권은 지역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다룬다. 아울러 자영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 중 하나인 아이템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을 바로잡는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자영업자와 소비자가 오해하는 시장의 진실이 첫 번째, 자영업의 생존 환경인 상권의 특징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자영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경제의 흐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장의 오해와 진실 부분의 중심축은 크게 두 가지다. 자영업의 성공신화는 성공한 본인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창업 아이템이 자영업 성공의 만능열쇠는 절대 아니라는 것. 자영업이 성공한다는 건 시장의 간택을 받았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어떤 사업과 아이템에 열광하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 성공한 자영업자는 ‘좋은 재료를 써서’, ‘품질이 좋아서’, ‘노력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자신의 성공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실패한 사람이 좋은 재료를 쓰지 않아서, 품질이 좋지 않아서 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성공을 도운 여러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결과에 가깝다.
자영업이 성공한다는 건 생산 - 판매 -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졌다는 걸 말한다. 즉 ‘잘 팔려서’ 성공하고, 성공하니 다시 잘 팔리는 식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잘 팔려서 회전율이 높기 때문에 신선한 재료를 계속 수급할 수 있는 식이다.
선순환 구조가 발생하려면 1. 사업주 본인의 영향력이나 주변 인맥으로 초기 순환을 발생시키거나 2. 선순환이 발생할 때까지 손실을 감수하며 자본을 투입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 방법도 시행하면 100%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초기 순환이 SNS에서의 파급력으로 더 커질 수도 있고, 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이 말인즉슨, 자영업의 성공은 우연과 행운의 상호작용에 가깝다. 차라리 우연과 행운을 조장할 수 있는 인맥과 자본, 창업자의 영향력이 성공의 원인에 가깝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창업 아이템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좋은 아이템이 자영업 성공에 부분적으로 기여할 수는 있지만, 아이템이 성공에 높은 지분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먼저, 한 때 반짝 유행을 타는 아이템은 현실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대개 한 아이템이 유행을 타기 시작할 때 사업에 뛰어든다 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시기는 길어야 1년 반 안팎이다. 1년 정도면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회수하는 시점이다. 즉 사업이 서서히 자리잡아야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이때쯤에 유행이 거의 시들해져 제대로 매출이 나지 않는다.
설령 유행을 타지 않을 만큼 좋은 품질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소비자가 제대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저자는 한때 ‘문재인 구두’로 이슈가 되었던 ‘아지오’ 브랜드를 예시로 언급했다. 대통령이 신고 다닐 정도로 품질이 우수한 브랜드지만, 한창 생산할 당시에는 대다수 소비자가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아 폐업했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마주할 소비시장의 소비자는 거짓말이나 교묘한 설명에 속아 넘어가며, 좋은 상품이라 해도 다양한 이유로 알아보지 못하고 도태시키는 존재다.
이 부분을 읽으며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결국 인생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누구나 노력하면 ‘성장’할 수는 있다. 다만 ‘성장’이라는 개인의 주관적인 발전 말고,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노력보다는 다양한 외적 변수가 좌우한다. 자영업이 성공하려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 자본과 영향력, 인맥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세 가지 다 갖춰져 있어도,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책에서는 이를 ‘행운’이라고 표현했고, 나는 이 행운을 ‘인간의 뇌로는 고려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원인이 있어서 행운이 찾아오긴 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원인 때문에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는.
그렇다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영향력, 인맥을 쌓는 것도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고, 선순환 구조가 생기려면 찾아오는 손님에게 잘해야 한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구하고, 사업 중에도 계속해서 더 나아질 방법을 찾는 것도 다 노력에서 출발한다.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해도, 이런 노력의 자취가 쌓일 때 찾아오는 행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력 없이도 행운이 찾아올 수는 있지만, 그 행운을 활용하는 건 노력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이 상권 분석이다. 한 상권이 형성되려면 수많은 원인과 조건, 외부 충격이 상호작용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상권마다 특징이 제각각이며, 형성 요인도 서로 다르다. 신촌과 홍대가 지리적으로는 인접했어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지녔다. 심지어 ‘성수동 카페거리’라고 통칭하는 성수역 근처와 서울숲 인근은 특징 수준을 넘어 미래의 성장 가능성까지 다르다.
하지만 어느 상권이던 결국 사람이 모이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다. 따라서 사람이 모여 상권이 처음 만들어지는 원칙은 있었다. 바로 ‘걸어다니는 사람’이다. 어떤 상권이 활기를 띠고 사람이 모이려면, 그 거리와 도로를 걷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유동인구와는 비슷한 듯 다른 개념이었다. 사람이 이동하는 수단으로 자동차나 버스도 있지만, 자동차와 버스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일 뿐, 지나치는 목적지에 경제적으로 이윤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대량수송이 가능하고 도보 이용자를 쏟아내는 지하철이 상권 형성에 유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도 언급되었던 ‘대형 쇼핑몰의 플랫폼화’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오프라인 매장은 가격 경쟁으로는 온라인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야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고양시의 스타필드, 코엑스의 별마당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사람들에게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 그 대가로 사람들의 시간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시간을 쓰고 걸어다닐수록 오프라인 매장이 버티는 상권은 활성화된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기업의 최종 목적지가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업종의 경계를 뛰어넘은 경쟁이다.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던 누군가의 주장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나이키 아웃도어나 신발을 입고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을 닌텐도 게임기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는데,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아마존은 온라인 커머스와 넷플릭스라는 콘텐츠, 워싱턴포스트라는 언론까지 흡수하면서 소비자가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소비자의 시간을 온전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의 시간 확보 전쟁에 대형 오프라인 매장도 뛰어들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저장했다가 나중에 쓸 수도 없는 형태의 자산이다. 온라인 -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이 치열한 전쟁터의 한 세력으로서 자영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볼 만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책이었다.